[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남·북·중 ‘화장실’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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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실 건가요?

이순희: 제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남한에 정착했으니 남한, 북한, 중국 세 나라를 모두 경험해 봤잖아요. 특히 세 곳 화장실의 다른 점이 눈에 띄었거든요. 오늘은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기자: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의 화장실 차이점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럼 어떤 점이 가장 눈에 띄었나요?

이순희: 북한에서는 화장실을 위생실이라고 하는데요. 위생실이나 화장실은 배설 장소니까 보편적으로 냄새나고 깨끗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가 공중화장실이 매우 깨끗했다는 거예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남한의 화장실은 잠을 자도 될 정도로 깨끗하고 청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기자: 지하철이나 공원의 공중화장실에 가면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매일 화장실을 관리해 주시는 분이 따로 있어서 그런지 공중화장실이 제 방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하곤 해요.

이순희: 북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은 말 그대로 냄새가 너무 심하고 화장지를 두기는커녕 아직도 푸세식인 곳이 많아요. 물을 이용해서 배설물을 내리는 현대의 수세식과 달리, 푸세식은 배변한 것을 그대로 두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거든요. 그렇다 보니 화장실에 벌레와 파리가 들끓어서 용변을 보러 가는 것도 고역이었어요.

기자: 그럼 중국 화장실에 대한 인상은 어떠셨나요?

이순희: 북한에 비하면 중국은 그나마 조금 낫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놀랐던 점은 화장실 칸에 문이 없던 거예요. 화장실 칸을 나눠둔 벽은 있는데 문이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어요. 또 칸막이로 설치된 시멘트벽도 허리 높이까지만 설치돼 있어서 볼일을 보려고 앉으면 맞은편 사람을 쳐다보고 있어야 해요. 아주 민망하죠. 또 물 내리는 장치도 없고, 화장지도 없는데, 그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했어요. 제가 탈북할 때 길림역의 화장실 풍경이 딱 이랬어요.

기자: 역사 근처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돈을 받기도 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던 건 아닐까요?

이순희: 그렇긴 하죠. 그런데 제가 살던 랴오닝성의 산골 마을은 더 심했어요. 화장실 자체가 없고 자기 집 뒤꼍 안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통나무 두 개씩 걸쳐놓고 용변을 봐야 했거든요. 솔직히 중국은 도시와 농촌의 생활 수준의 차이가 심해요. 도시 사람들은 발전된 문명 속에 살지만, 중국의 깊은 산골 마을은 아직도 옛날 생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심지어 제가 살던 마을의 어떤 어르신은 은행을 믿지 못하겠다며 돈을 장롱 속 깊이 보관하고 계시더라고요. 이렇게 세 나라를 다니면서 제가 느낀 건 생활 수준이 곧 화장실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어요.

기자: 남북한이 서로 화장실을 지칭하는 단어도 다르다 보니 처음에 접했을 땐 헷갈리시진 않았나요?

이순희: 네, 맞아요. 전 '화장실'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보고 얼굴 화장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남한에 처음 와서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용변을 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함께 온 다른 탈북자분들을 쫓아갔는데 '화장실'이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분을 따라서 화장실로 들어가 보니 '이게 용변을 보는 곳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닥이나 문이 너무 고급스러웠고요. 문을 열고 개별 화장실에 들어가니 예쁜 타일로 꾸며져 있고 변기는 하얗다 못해 눈덩이 같았어요. 그리고 가방을 걸어 놓거나 소지품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이 따로 설치돼 있는 거예요. 그리고 볼일 보고 나오면 바로 손 씻는 세면대가 있는데 비누나 소독제가 마련돼 있고 손을 씻은 다음에는 손 닦는 휴지와 손을 말리는 온풍 장치까지 마련돼 있는 게 가장 인상깊었어요.

기자: 공중화장실이 잘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건물이나 지역구에서 잘 관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이용객들의 화장실 에티켓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화장실 에티켓, 다시 말해 화장실 예절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이순희: 맞아요. 공중화장실이니 많은 사람이 이용할 텐데 서로가 화장실 사용 에티켓을 잘 지키더라고요. 화장실 에티켓은 간단히 말해서 본인이 쓴 자리를 다음 사람이 쓸 수 있게 깨끗하게 치운다는 거예요. 제가 하나원에 도착해서 사용했던 화장실에 쓰여있던 문구가 기억나는데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였어요. 그 문구를 읽으니까 '나도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서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에 확 와닿는 거예요.

기자: 제가 놀랐던 점 중 하나는 공중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돼 있는 거였는데요. 많은 사람이 쓰는 공중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변기마다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물로 세척해주는 기계인 비데를 설치해 둔 곳도 있더라고요.

이순희: 제가 비데에 대해서 처음 들어봤던 건 북한에 있을 때였어요. 북한에서 저랑 한 회사에서 일하시던 분이 "남조선에는 용변 보면 씻어주는 기계가 있다"는 말을 하길래 "아이고 뭔 그런 게 다 있겠어요?" 하면서 웃었거든요. 그런데 웬일이야, 정말 있더라고요. 그게 바로 비데였던 거죠. 저희 집에도 비데를 설치해 놓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비데는 좌석을 따뜻하게 할 수도 있고 용변 후 따뜻한 물이 나와 용변 본 몸을 세척해주기도 하는데요. 북한 고향 분 중에에 비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 계시면 아마 저처럼 미심쩍어하실지도 모르죠.

기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보지 않으면 믿기 힘들긴 하죠. 그런데 남한의 화장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하다고 생각된 이유가 있나요?

이순희: 한국의 화장실 시설과 문화는 세계 다른 나라 관광객, 유학생 등 수많은 외국인도 한결같이 칭찬하더라고요. 다른 선진국에서도 이 같은 시설들을 갖춘 곳은 많지만, 한국처럼 청결하게 유지되는 곳은 보기 드문 것 같아요. 또 화장실은 삶에 있어서 없으면 안 될 장소잖아요? 그러니까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불쾌한 생각이 든다면 삶의 질이 확 낮아지겠죠. 그런데 남한 대부분의 화장실은 때론 감탄하고 때론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어서 이런 환경을 조성해 준 환경미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화장실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