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다른 듯 같은 남북한의 추석
2023.10.0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십니까. 이순희입니다.
기자: 지난주 한국에 추석 연휴가 있었죠?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순희: 직장 생활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훌쩍 추석이 다가왔더라고요. 오랜만에 맞는 긴 연휴라서 추석 한참 전부터 마음이 들뜨고 기다려지기도 했어요.
기자: 맞아요. 이번 추석 연휴에는 10월 3일 개천절까지 겹쳐서 6일이나 됐는데요. 모처럼 만의 휴식이었겠어요.
이순희: 북한에서는 추석 당일만 쉴 수 있었는데 남한은 29일 추석 당일뿐 아니라 전후로 9월 28일, 10월 2일까지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쉴 수 있었는데요. 이 같은 연휴는 1989년부터 법으로 지정됐어요. 그런데 올해는 10월 3일(개천절)까지 겹쳐서 무려 6일간이나 쉬었어요. 북한 고향 분들은 아마 놀라실 거예요. 그런데 저는 29일 추석 당일 당직을 섰어요. 그래도 나머지 5일 동안은 정말 즐겁게 지냈어요.
기자: 연휴 기간 근무라니 쉽지 않으셨겠어요. 그런데 올해 추석 연휴도 주말이 겹치는데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돼 더 오래 쉴 수 있었죠. 남한에서 이 같은 대체공휴일이 제정된 지 불과 10년도 안됐는데요. 그럼 처음 남한에 정착하셨을 땐 이런 제도가 없었겠네요?
이순희: 맞아요. 주말에 공휴일이 겹치면 평일에도 쉬게 하는 법이 2014년부터 생겼거든요. 그 전보다 노는 날을 더 많이 생긴 좋은 법이죠. 핑계 생긴 김에 잘 논답니다.
기자: 남한과 북한이 추석을 지내는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순희: 북한에서는 내일 당장 먹을 끼니가 없어서 하루하루 벌어 사는데, 특히 어머니들은 (추석이 다가올 때면) ‘어떻게 차례 음식을 마련할까’하는 걱정을 한 달 전부터 해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반대로 ‘차릴 음식이 너무 많아서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데 힘들까 봐’ 걱정이에요. 어떤 주부들은 차례 음식을 차리기 싫어서 일부러 직장 근무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제 입장에서 보면 정말 행복한 고민이죠. 지금은 그것도 싫어서 간소하게 지내는 풍습이 점점 생기고 있어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요즘 현대인들은 추석 연휴에 꼭 가족끼리 모여서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여행을 가는 등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차례 문화도 세대가 흐르면서 많이 바뀌었는데요. 남북한의 차례상 차리는 방식은 비슷한가요?
이순희: 제가 보니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이라서 제사상 차림이나 차례 지내는 모습이 (남북한이) 똑같아요. 제가 처음에 남한에 왔을 때가 12월이라서 그 해 음력설을 어떻게 지내나 하고 호기심으로 텔레비전을 자세히 봤어요. 남한에서는 차례상 지내는 것도 텔레비전으로 방영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차례 지내는 방식이 북한과 똑같아요. 제사상 첫 줄에다가 밥이나 떡을 놓고 다음 줄에는 전, 그다음 줄에는 고기와 물고기를 놓아요. 물고기를 놓을 때 꼬리를 자르지 않고 머리를 동쪽으로, 꼬리를 서쪽으로 놓는 것까지 똑같았어요. 너무 신기했고요. 그걸 보면서 ‘아, 역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북과 남의 미풍양속이 똑같으니 우리는 역시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어요.
기자: 그럼 차례상을 차리는 것 외에도 추석 기간 남북한의 다르면서도 같은 미풍양속에는 어떤 게 있던가요?
이순희: 벌초하는 모습이 달라요. 남한도 조상 묘에 풀이 난 걸 깎고, 북한도 조상 묘에 1년 동안 많이 자란 풀을 베는 풍습은 똑같은데요. 북한은 추석 당일 부모, 형제들이 모여서 조상님 모신 산에 가서 낫으로 풀을 베요. 그리고 그 앞에다가 가져간 음식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요. 그런데 남한은 북한처럼 낫으로 베는 게 아니라 제초기라는 기계가 있어서 그거 가지고 순식간에 해치우는 거예요. 그리고 남한은 벌초하고 집 안에서 제사를 지내더라고요. 북한은 조상 묘에 찾아가서 묘 앞에다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데 남한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게 좀 다르더라고요.
기자: 그런데 ‘추석’이라고 하면 저는 고향 내려갈 때 길이 막히는 장면부터 떠오르더라고요. 어렸을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고향에 가려고 꼭두새벽에 출발하면 자정이 다 돼서야 도착하곤 했던 기억이 나요.
이순희: 북한에서도 추석이 되면 먼 지방에 사는 친척들도 아버지, 어머니 묘에 찾아와요. 북한은 추석이나 음력설이 되면 임시 열차를 편성해요. 정기 열차가 아니라 임시 열차를 편성해서 1시간에 한 번씩 다니게 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통상적으로 여행증이 있어야 하잖아요. 추석 명절과 음력설에는 여행증 필요 없이 1시간에 한 번씩 운행하는 기차표만 발권하면 조상 묘에 찾아갈 수 있어요. 남한에는 대중교통이 잘 돼 있잖아요. 그런데 국민 소득이 높고 자동차도 마음대로 개인 소유로 구매할 수 있으니까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477km거든요. 북한으로 말하자면, 평양에서 청진까지(727km)와 비슷한 거리예요. 그 거리를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면 4시간 내지 5시간 가는 거리인데, 추석이 되면 10시간이 걸려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거리에 차가 꽉 찬다는 소리거든요. 그만큼 남한은 차가 많다는 소리죠.
기자: 올해 추석 연휴 첫날에도 전국에서 자동차만 569만 대가 이동했다고 해요.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죠.
이순희: 그렇죠. 그래서 텔레비전에서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계속 방송으로 알려주는데요. “지금 떠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시간 걸립니다” 하다가 4시간 지나면 “지금은 교통체증이 조금 풀려서 7시간 내지 8시간이면 도착하게 됩니다”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북한 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기자: 추석에 가족끼리 모이면 다 같이 모여 윷놀이, 고스톱 같은 다양한 놀이를 즐기기도 하잖아요. 어떤 놀이를 해보셨나요?
이순희: 남한에서는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다 같이 차를 타고 명승지에 놀러 가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나이 든 어르신들은 윷놀이도 하고 고스톱도 치는데요. 북한하고 조금 다른 게 고스톱이 좀 달라요. 북한에는 ‘주패놀이’를 하는데 남한으로 치면 카드놀이와 같아요. 북한은 고스톱을 잘 안 치거든요. 그 대신 주패놀이를 많이 해요.
기자: 그럼 이번 추석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저는 추석 당일에는 당직 섰어요. 고향이 생각날까 봐 제가 오히려 근무를 서겠다고 자진해 나섰어요. 그래서 직장에 나가서 어르신들과 어울리고, 면회 오는 보호자들과 시간을 보내니까 쓸쓸할 새가 없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부터 나흘 동안 놀았거든요. 집에서 맛있는 거 해놓고 놀다가 친구를 불러내서 청도에 문화 유적을 찾아가서 마음껏 놀다 왔어요. 남한에는 근로자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명승지마다 잘 꾸려놨거든요. 사람들이 경치와 문화 유적을 구경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푹 쉬다 올 수 있게 조건이 잘 구비되어 있어요.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북한의 추석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