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 개방 - 농업체제의 개혁


2007.01.11

주간 기획 '중국의 개혁.개방' 이 시간에는 농업체제의 개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1978년 12월 앞으로 경제 개혁을 최우선시 할 것임을 결정한 이후 가장 먼저 칼을 댄 곳이 농업부문이었습니다. 중국은 농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농업 생산 환경이 낙후돼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늘 먹는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경제 개혁의 성공여부는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3억이라는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오쩌둥도 언제나 '식량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구호를 내걸고 식량생산 증대를 위해서 가파른 산에 비탈 밭을 만들거나 무리하게 간척지를 개간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60년대에는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중국이 외화가 많아서 식량을 외부로부터 수입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방법은 무조건 자급자족하는 길밖엔 없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당시 랴오닝성 지역에서 가족이 농사를 지었다는 미국계 중국인 통(Tong)씨는 농촌 개혁 이전의 집단노동체제 아래서는 생산력을 향상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적극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다고 말했습니다.

Tong: (Before, everything belongs to Government. Government decided what kind of plant you should farm.)

"농촌 개혁 이전에는 농사와 관련된 모든 것이 중국 정부에 귀속되어 있었습니다. 올해는 어떤 농작물을 생산해야 할지, 얼마나 생산해야 할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고 농부들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북한의 집단 농업 체제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산된 농작물은 모두 정부가 수매해 갔죠. 따라서 농부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면 아무 이득이 없었으니까요.

따라서 중국은 경제 개혁의 기초가 되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독려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와 비슷한 시기인 1978년 12월, 중국 농촌 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곳으로 알려졌던 안후이성 봉양현에서 18개 농가가 처음으로 정부 몰래 정부 소유의 공유지를 가정별로 나누어 경작하기로 비밀협약을 체결합니다. 이와 관련해 남한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박정동 교수는 안후이성에서 농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 비밀협약은 이후 중국 전역의 농촌 개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정동: 제일 처음에 농촌개혁을 시작한 것은 중국에서 가장 못사는 곳, 안휘성 봉양현, 그곳의 일부 농민들이 정부 모르게 비밀 협약을 해서 주어진 농작물을 경작해서 여기서 나오는 경작물의 국가 세금 부분만 제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나누어 갖자. 그런 식으로 비밀 협약을 하고, 누구라도 이 비밀 협약을 들켜서 정부에 붙잡혀 들어가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가족들을 책임진다는 그런 내부 협약을 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농민들의 자발적인 비밀 협약에서 시작. 그것이 입소문을 타서 전국적으로 불화산처럼 터진 것입니다. 따라서 농촌 개혁은 중국당국이 시작한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농민들 스스로 시작한 것입니다. 농민들 스스로 시작했는데 성과가 커지니까 나중에 당국이 이를 인정한 것입니다.

사실 개혁의 초기만 해도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중국 지도부는 기존의 집단노동제도를 완전히 철폐하고 농촌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후이성을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실시한 농가 책임제가 생산량을 늘리는데 큰 성과를 거두자 마침내 중국 정부는 1982년 '농업생산책임제' 라고 불리는 새로운 농촌체제를 공식적으로 도입하고 중국 전역에서 전격적으로 시행하게 됩니다.

일명 '책임제' 또는 '청부제' 라고도 불리는 '농업생산책임제'는 한마디로 농민들이 국가로부터 빌린 땅에서 책임을 지고 농사를 짓고 자유롭게 경영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생산되는 농산물 가운데 일정량은 세금으로 국가에 바치되, 잉여 농산물은 팔아서 개인적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제도입니다.

결과적으로 '농업생산책임제'는 1978년 경제 개혁을 시작할 무렵 3억 톤에 불과했던 식량 생산량을 1984년에는 4억 톤으로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1999년에는 5억 톤 가까이 생산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생산량이 과거 개혁 이전보다 훨씬 적은 경작지와 노동력으로 달성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인들은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먹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게 됐습니다. 덩샤오핑이 인민들에게 90년대 말까지는 '원바오,' 즉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옷 입는 생활수준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중국인들은 '샤오캉,' 즉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 생활에 여유가 있어 즐기며 사는 수준에 들어섰습니다.

특히 도시에 사는 중국인들의 경우 개혁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다이어트, 즉 먹는 것을 제한하거나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일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경작지의 7%를 가지고 세계 인구의 22%를 먹여 살릴 정도로 농산물을 많이 수출하는, 세계 농산물 시장의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워싱턴-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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