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인들의 소비생활 (3)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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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에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지난 1994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에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REUTERS

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지난 시간에 소련시대의 배급제도와 소비품, 그리고 성공의 상징 같은 재화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달러 같은 외국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돈 좀 있는 사람이란 얘기를 듣습니다. 당시 소련 사회에서도 일반인들이 외화 소지를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란코프 교수: 조금 복잡한 질문이십니다. 청취자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지금 북한에서 외화로 살 수 없는 물건은 고양이 뿔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에 비하면 외화에 대한 통제가 매우 약한 국가였습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나 공산국가들은 외화를 아주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련에서 1960년대까지 모든 사람들은 해외로 갔을 때도 외화를 받았을 경우, 귀국하자마자 외화를 국가에 바쳐야 했습니다. 소련에서 외화 판매, 환전행위는 매우 중요한 불법행위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1960년대 초까지 외화 판매는 별 문제가 아니었는데, 1961년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소련경찰은 외화를 많이 거래했던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출장을 갔다 온 소련인들과 외국인들을 상대로 불법적으로 외화 장사를 했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아마 소련에서 돈이 많은 부자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흐루쇼프 서기장은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는 장사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김일성보다 더 싫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부자들을 사형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법을 개정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외화 장사는 소련에서 큰 범법행위가 되었습니다. 일반사람들은 5달러나 10달러를 팔다가 잡힌다면 감옥으로 갈 수도 있고, 감옥으로 가지 않아도 발전 길이 다 막혔습니다.

전: 1961년 사건 이래 외화는 다 국가에 바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란코프: 1961년부터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해외에서 귀국한 소련사람들은 달러나 엔화와 같은 외화를 소련에 도착하자마자 무조건 바꾼돈과 같은 특별화폐로 바꿀 의무가 있었습니다.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은 바꾼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바꾼돈 제도를 처음 실시한 나라는 소련입니다.

전: 바꾼돈을 받으면 어떻게 쓸 수 있나요? 북조선과 비슷했습니까? 적색 바꾼돈, 청색 바꾼돈 처럼 말입니다.

란코프: 1980년대 북한과 유사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소련에서 색깔이 더 많았는데, 너무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배를 타고 해외로 간 사람, 선원들은 바꾼돈을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바꾼돈은 다른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바꾼돈과 종류가 다릅니다. 그리고 선원들이 바꾼 돈으로 특별한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었는데요. 이 상점에서 그냥 돈도, 그냥 바꾼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전: 소련사람들은 이런 종류 다른 바꾼돈을 어떻게 썼을까요?

란코프: 쉽게 말하면 일반돈을 받지 않는 특별상점이 있었는데, 바꾼돈을 합법적으로 얻은 사람이면 이 상점을 찾아가서 일반상점에서 있을 수조차 없는 고급물건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대다수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락원백화점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80년대 북한에 있었던 바꾼돈 백화점하고, 1961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있었던 소련의 바꾼돈 백화점하고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전: 어떤 차이점일까요?

란코프: 첫째로, 소련에서는 바꾼돈 상점에서 진짜 외화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소련 루블도 미국 달러도 안되고 바꾼돈만 받았습니다. 둘째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팔리는 물건 가운데 소련에서 식품이 거의 없었습니다. 바꾼돈 상점에서 팔렸던 것은 고급 옷, 소비품, 녹음기나 라디오 수신기와 같은 고급 수입 전자제품입니다. 식품을 팔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북조선과 다르게 소련은 제일 어려웠을 때도 식량문제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전: 그러나 바꾼 돈 말고 진짜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까요? 간부들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아마 간부들은 평 백성들보다 외화에 대한 공포가 더 심했습니다. 벌써 말씀 드렸지만 60-70년대 소련에서 외화소유 자체는 중대한 불법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간부는 불법적으로 1달라라도 가졌다는 것이 노출된다면, 감옥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도 멀고먼 시골에서 군당지도원도 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에서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외국인들입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소련인들은 예외적인 경우에 합법적으로 쓸 수도 있는데, 거의 모든 돈은 바꾼돈으로 교환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사람들은 외화로 물건을 파는 특별상점이 있었습니다.

전: 바로 공산국가에서 유명했던 외국인 전용 상점 말씀이십니까? 냉전시대 당시에 자유세계 언론들은 공산국가에서 외화를 받고 일제 카메라, 독일제 라디오, 미제 청바지를 팔고 있다고 가끔 조롱했습니다.

란코프: 당시에 이런 주장이 많았는데, 약간 문제가 있는 주장입니다.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70년대 소련에서 외국인 전용 상점에서 일제사진기이든 독일제 라디오이든 다 있기는 했는데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제 사진기이든 미제 청바지이든 소련사람들이 가는 바꾼돈 상점에 많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전용 상점에서는 외국인이 소련사람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고급수입품이 있기는 했지만, 청바지보다는 외국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살 수 있는 게 많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소련사람들이 사기 어려운 고급 소련물건들까지 많이 있었습니다.

전: 소련 고급 상품으로는 어떤 게 있었을까요?

란코프: 예를 들면 고급 목시계, 옛날 전통적인 기술로 만든 옷, 고급 소련 술, 연어와 철갑상어알 즉 캐비아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물건은 주로 외국인 전용 상점에서 팔렸습니다. 흥미롭게도 노어로 나온 책들도 많았는데요. 주로 소련에서 나온 책이기는 하지만, 사상적으로 약간 의심스러운 자료입니다. 금지된 책이 아니지만, 일반 책방에서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전: 왜 외국인 전용 상점에서 사상적으로 문제 있다는 책이 팔렸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인들은 러시아어를 못하지 않습니까?

란코프: 1960,70,80년대 소련을 방문했던 외국사람들 가운데 노어를 아주 잘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로 1917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해외로 망명한 사람들이나 그들의 후손들입니다. 1960년대 들어와 그들 대부분은 외국국적이 있다면 별 문제없이 마음만 먹으면 소련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이러한 책을 많이 샀는데요. 그러나 국가 입장에서 보면 책이든 청바지든 사진기든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다 귀중한 외화벌이 수단입니다.

전: 하지만 바꾼돈으로 승용차나 집을 구매할 수 있었을까요?

란코프: 당연히 가능했습니다. 이것도 외화벌이 방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해외출장에서 돌아오자 해외에서 벌어온 외화를 바꾼돈으로 바꾸고, 이 바꾼 돈으로 일반인들이 3-4년동안 기다려야 하는 승용차, 아니면 10-15년동안 기다려야 했던 새 집을 즉각적으로 구매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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