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인들의 소비생활 (4)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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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키르기스탄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이 고객에게 TV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05년 키르기스탄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이 고객에게 TV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Photo

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 교수님, 우리가 소련의 소비 생활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는데요. 1960-70년대 소련에서 인기 있는 소비품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네 있었습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것은 수만 년 전부터 인간사회의 기본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얻기 어려운 물건을 가지게 되면 이 물건을 다른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태도를 자본주의 사회의 나쁜 경향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을 자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물질 자랑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자신의 성공을 보여줄 수 있는 비싼 물건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전: 지난 시간에 개인적인 성공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재화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요.

란코프: 소련은 70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스탈린시대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지만,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잘 아는 사람들이 경험한 소련, 즉 1950년대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소련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시에 소련에서 개인의 성공을 잘 보여주는 것은 큰 집, 멀지 않은 시골에 있는 별장, 즉 다차와 개인용 자동차입니다. 특히 대형 자동차인 볼가 호는 최고입니다. 그러나 이번 시간에는 이러한 큰 것들보다는 작은 소비품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전: 교수님, 어떤 것들이 개인의 부를 과시하는 소비 제품이었을까요?

란코프: 먼저 가전 제품이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냉장고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와 소련에서 냉장고는 많이 본격화되고,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소련산 냉장고 는 품질이 참 좋았습니다. 아마 당시에 소련에서 세계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가전제품은 냉장고밖에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전: 교수님, 제가 듣기로 1960년대 모스크바에서는 텔레비전 때문에 화재가 참 많이 났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가전 제품 품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냉장고는 예외였던 모양이네요.

란코프: 솔직히 말해서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소련 텔레비전은 가끔 폭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냉장고는 훌륭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1980년대 산 냉장고는 25년동안 잘 썼습니다. 우리 집은 1990년대 말 러시아에서 오스트랄리아로 이사 갔을 때도 옛날 소련산 냉장고를 가지고 갔습니다.

전: 냉장고 이외에는 또 어떤 가전제품이 인기가 있었습니까?

란코프: 무엇보다도 라디오 수신기, 특히 녹음기입니다. 당시에 수입품 녹음기, 특히 소니를 비롯한 일제 녹음기는 최고였습니다. 60년대말부터 소련 사람들에게는 서양 대중음악의 인기가 참 많았습니다. 원래 레코드판을 서양에서 많이 수입했는데, 레코드판은 복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녹음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녹음기가 있는 사람은 당시에 인기가 매우 많았던 서양음악을 쉽게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녹음기는 쓸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싼 수입 녹음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누구든지 쉽게 볼 수 있게 녹음기를 놓아 두고 자랑했습니다. 라디오 수신기는 이 만큼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입 수신기이면 외국방송, 특히 러시아말 방송을 쉽게 청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전: 교수님, 왜 소련 인민들은 외국에서 보내는 러시아말 방송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까요?

란코프: 청취할 가치가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에 소련 사람들이 청취한 외국의 러시아말 방송은 공산당을 선전하는 국내 방송이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주로 영국 bbc나 미국의 소리 방송이었습니다. 지금 자유아시아방송의 자매방송과도 같은 자유방송도 당시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전: 그래도 반공산당 반정부 내용이 많은 외국방송이라면 그런 방송을 수신하는 라디오를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놔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소련은 문제가 많은 나라였지만, 북조선과 비교할 수도 없이 자유로웠고 잘 살았습니다. 누구든지 아무 때나 외국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방해전파가 있기는 했지만, 개인이 외국방송을 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 그랬었군요. 그런데 집에서 자랑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전제품이 있었다면 어떤 것입니까?

란코프: 수입 텔레비전이 있기는 했지만, 수신기나 녹음기만큼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와 확산하기 시작한 기술은 비데오 동영상 록화기입니다. 원래 고급간부나 외교관, 해외로 자주 가는 무역일꾼 집에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녹화기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지만, 1980년대 말까지 즉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극소수만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가전제품입니다. 록화기는 수신기처럼 주로 수입영화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80년을 전후하여 소련에서는 해외에서 나온 영화를 노어로 통역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수입 영화를 불법적으로 많이 복사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녹화기는 당시에 매우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녹화기 가격은 일반 기술자가 1년동안 버는 돈과 비슷했습니다.

전: 가전제품 이외에 다른 상품도 인기 있는 것이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 멋진 옷 같은 것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소련에서 잘 사는 집 여성들은 수입 옷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조금 잘 사는 집이면 체코나 웽그리야와 같은 동구라파 국가에서 나온 옷을 즐겨 입었고, 진짜 극소수 특권층은 프랑스나 영국, 독일에서 나온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제일 잘 알려진 상징물은 청바지였습니다. 흥미롭게도 1970년대 들어와 소련에서도 국산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미국산 청바지가 최고였습니다. 당시에 미국산 청바지 1개의 가격은 노동자가 한 달 동안 번 돈과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웽그리야나 동도이췰란드, 인도 등에서 온 수입 바지는 이 만큼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공식 상점에서는 취급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만 비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전: 소련산 청바지는 왜 인기가 없었나요?

란코프: 품질 문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품질보다도 미국산 청바지의 상징성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전: 교수님, 그렇다면 1970-80년대 교수님 집에서는 이러한 자랑할 수 있는 소비품 가운데 어떤 것이 있었나요?

란코프: 저는 평범한 소시민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라디오 수신기는 3kg 정도나 되는 무겁지만 성능은 괜찮은 국산 수신기였고, 녹음기도 고장이 자주 나는 국산 록음기였습니다. 1984-85년에 제가 북조선으로 유학을 갔다 왔을 때 일제 녹음기를 가져왔습니다. 다른 인기 있는 전자 제품은 아예 없었습니다.

전: 청바지는 있으셨습니까?

란코프: 소련 국산 청바지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품질이 좋지 않아도 편리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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