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 최고지도자의 건강 문제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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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모택동 중국 주석을 만나는 모습.
1970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모택동 중국 주석을 만나는 모습.
Photo courtesy of Wikipedia

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교수님, 우리는 지난시간에 후계자 문제 때문에 공산국가들에서 혼란과 갈등이 많았던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는 아플 수도 있는데요. 공산국가에서 최고지도자가 심각한 건강 문제가 생겼거나 장기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란코프 교수: 민주국가이나 옛날 봉건주의 시대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하거나 와병 상태가 된다면, 해결할 방법이 확실히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이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국가에 비슷한 규정이 있습니다. 봉건국가들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임금님이 몸이 아프다면, 세자나 가까운 왕족이 임금님을 대리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공산국가는 어땠을까요? 규칙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사실상 없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몸이 아플 때, 대부분의 경우에 퇴직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논리가 있습니다. 민주국가이든 봉건국가이든 건강상태 때문에 퇴직한 최고지도자들은 매우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공산국가에서 상황이 사뭇 다릅니다.

기자: 왜 그럴까요? 지도자는 몸이 아파서 퇴직했습니다. 그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란코프 교수: 공산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는데, 1990년대 들어와 중국에서 최고지도자들은 10년마다 교체되는 규칙이 생겼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퇴임 이후에 좋은 대우를 받고, 정치 영향력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중국을 보면, 여전히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공산국가로 보기 힘듭니다.

기자: 그렇다면 공산국가에서 지도자가 건강 문제 때문에 사직한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감옥으로 갔을까요?

란코프 교수: 흥미롭게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자발적으로 퇴직한 공산권 지도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권력을 계속 굳게 장악하려는 야욕을 포기하지ㅌ 못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의학 발전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원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짧은 기간 이내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1960-70년대 들어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모택동도, 브레즈네프도 마지막 몇 년 동안 매우 심한 건강문제가 있었습니다.

기자: 모택동도 브레즈네프도 심한 건강 악화에 시달렸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브레즈네프는 1964년에 소련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 비교적 젊고 건강한 5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는 전쟁때에 잘 싸웠고, 기억력도 집중력도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1974년부터 심장병 때문에 빠르게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갈수록 건강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는데요. 1970년대 중엽부터 그는 계속 약품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말도 조금 어눌해지고, 노어 발음도 많이 이상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퇴직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브레즈네프의 측근 대부분도 퇴직을 반대했습니다. 당시에 고급 간부들 가운데 몇 명이 브레즈네프를 대신하여 소련 최고지도자 즉 공산당 총비서가 될 꿈을 꾸었는데, 대부분은 브레즈네프가 퇴직한다면 본인도 퇴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결국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마지막 7-8년동안 소련정치는 조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브레즈네프는 중요한 결정을 여전히 내릴 수 있었는데, 그래도 문제를 잘 분석할 능력도 시간도, 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경우 집단지도체제이기 때문에, 브레즈네프가 할 수 없게 된 일을 정치국의 다른 위원들이 대신 맡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기자: 모택동의 마지막 몇 년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교수: 모주석은 1960년대 말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주석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로 다양한 심장병이 있었고, 둘째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기관지와 폐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1972-73년에 모주석은 신경병 때문에 글을 제대로 쓸 수도 없게 되고, 걷기도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모주석은 나라의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후계자로 임명된 임표가 모주석을 배신한 것은 모택동의 건강에 매우 심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기자: 그런데 교수님, 모주석은 왜 임표라는 사람을 믿고 후계자로 정했고 나중에 배신을 당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임표는 모주석처럼 중국혁명 1세대 출신이며, 1960년대 들어와 중국군대의 사실상 총사령관입니다. 모주석은 임표를 후계자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1969년에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임표는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 무렵부터 건강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던 모주석은 측근들에 대해서도 의심과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그 때문에 임표는 자신이 조만간 후계자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모주석의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에, 그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1971년, 그 음모는 실패로 끝났고, 임표는 소련으로 도망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후에 모주석은 당연히 후계자를 임명할 생각조차 없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의 판단력도, 육체적인 힘도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은 후계자를 임명하는 것은 즉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생겼습니다. 결국 1970년대 중국은 사실상 중앙정부가 지도력을 상실한 것과 거의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고, 특히 고급간부들은 모주석의 분노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고 아무 새로운 정책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급간부들은 자신들이 지나치게 활동한다면, 늙어가고 있는 모주석이 그들을 배신자나 반동분자로 규정하고 숙청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자: 그런데 교수님, 1960-70년대 외국언론들은 중국과 소련의 최고지도자들의 건강상태에 관심이 많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물론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외국 관찰가들은 브레즈네프나 모택동의 얼굴을 보면, 그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의 국내 언론들은 지도자의 건강문제에 대한 암시도 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소련은 최고지도자의 건강이 이상하다는 것을 노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초 브레즈네프는 공식행사에서 걷기도 힘들어했습니다. 소련 관영방송에서 브레즈네프가 이상하게 걷는 모습이 아예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평백성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외국언론의 보도도 많고 이 보도를 본 소련이나 중국사람들도 있어서, 국내에서 소문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소수 고급 간부들을 제외하면 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기자: 네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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