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에서 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가치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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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
사진은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입니다. <삼국사기>가 나온 것은 1145년, 그러니까 고려 17대 왕 인종 때입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때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국보로 지정했다고 하지요? 오늘은 가치 있는 이 두 역사책을 보는 남북한의 관점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지금 국보로 지정됐다고 하셨는데 지정된 것이 아니고 지정되기로 예고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 중 조선시대 판본 2종류는 2003년 그러니까 15년 전에 이미 국보가 됐습니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되는 <삼국유사>는 보물로 돼있는 다른 판본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언제 지정이 되나요?

임채욱 선생: 연내로 확정되겠지요. 어떻든 국보지정은 아주 뜻있는 일입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모를 사람 없겠습니다만 언제 어떻게 편찬됐는지를 말씀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입니다. <삼국사기>가 나온 것은 1145년, 그러니까 고려 17대 왕 인종 때입니다. 김부식이 여러 학자 도움을 받으면서 지은 것이지요. 우리나라 역사책은 <삼국사기> 이전에도 있었지만 다 없어졌다고 하지요. 그래서 <삼국사기>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 인정받고 있지요. 김부식은 이 책을 5년에 걸쳐 편찬하면서 이미 있던 우리나라 고문헌과 중국역사책을 참고로 해서 지었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완성한 뒤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학자나 관리들이 유교경전이나 중국역사는 잘 아는데 정작 우리나라 역사는 모르니 한탄스럽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보다 136년 뒤에 나오는데, 그 때가 고려 충렬왕 때이고 고려도 후기로 접어든 때였습니다. 승려이고 문인이던 일연이 나이 70대 후반부터 84살로 죽기 전까지 집필했다고 합니다. 일연은 몽골이 고려를 지배하던 세월 속에서 고려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려고 이 책을 지었다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이제 편찬경위를 알았으니 이 두 역사책이 가진 가치를 물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삼국사기>는 그 때 일어난 두 차례의 큰 반란사건을 딛고 고려가 안정된 나라로 다시 일어서도록 바라는 마음이 편찬동기를 부여했다면 편찬을 맡은 김부식도 한나라의 흥망성쇠도 왕과 신하가 정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음을 삼국시대 역사를 통해 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가 관청에서 주관해서 편찬된 역사책이지만 사실 중심으로 기록하는 객관성을 띈 역사책이 되었기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 역사를 쓴 <고려사> 편찬에도 모범으로 삼을 수 있었지요.

그럼 <삼국유사>의 가치성도 짚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삼국유사>는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정통역사책이라고 인정되지 못했지요. 야사를 적은 흥미위주의 책이란 평까지 있었지요. 그것은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는 없는 단군이야기도 있고 왕과 귀족들 생활상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삶도 그려내고 있으며 좀 부끄러운 이야기도 싣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일연은 몽골의 징키즈 칸이 중국대륙에서 원나라를 세웠던 1206년에 태어났기에 평생을 몽골 때문에 겪은 고려시대의 혼란과 시름 속에 살았지요. 그래서 민족을 앞세우려는 역사의식이 강렬했다고 보입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서도 객관적인 역사인식이나 자주의식이 있었지만 사대주의적 사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일연은 이런 사대주의 사관을 완전히 벗어나서 우리민족의 우수성이나 자부심을 높이려는 의도로 썼으니 <삼국유사>의 가치는 이런데서 찾아집니다. <삼국사기>가 번듯한 앞에 보이는 모습을 그렸다면 <삼국유사>는 뒤켠 응달에 널린 이야기들도 담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분단 후 남북한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하는 질문을 할 차례군요. 우선 어떤 상태로 전해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삼국사기>는 13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장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습니다. 책장이 떨어져나간 것이 없는 완질본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조선조 중종 왕 때인 1512년에 간행된 것이 있고 또 선조왕 6년 1573년에 찍어낸 것이 있는데 이들 완질 두 종류가 보물에서 이번에 국보로 승격하는 것이지요. <삼국유사>는 조선시대에 나온 판본 2종류가 15년전에 이미 국보로 정해졌는데 이번에 권 1~2권이 추가로 국보가 된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어떻게 전해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우리말로 번역 됐으니 그 저본(번역할 책 원본)이 되는 책을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지요. 1958년 6월 과학원출판사에서 <삼국사기>가 번역돼 나왔는데, 이 번역 책 원본은 1512년, 그러니까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이걸 보통 경주본, 또는 정덕본이라 하는데, 이 경주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상하로 되었는데 하권은 1959년 8월에 발간됐고 번역자는 과학원 고전연구실입니다. 그리고 <삼국유사>도 번역돼서 1960년 1월 과학원출판사에서 발간됐는데 과학원 고전연구실 이상호가 책임자였습니다. <삼국유사>도 경주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한 남북한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정사로서 유교적 명분에 따른 중국 중심의 서술도 있지만 당시 고려의 현실도 반영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북한에서도 <삼국사기>가 체계적으로 서술돼있어 사료적 가치를 충분히 가진다고 봅니다. 하지만 신라중심으로 서술했고 중국사료를 무비판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고구려 사람의 당나라와의 투쟁을 소홀하게 했으며, 단군의 건국신화를 뺐다고 비판합니다. 다음 <삼국유사>는 남북한 다 아주 좋게 평가하고 있지요. <삼국유사>를 보는 남북한의 시각은 우선 역사무대만이 아니라 일반주민의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게 했고 무엇보다 <삼국사기>에 비해서 사대주의 사관이 약해서 우리 민족 진짜 얼과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삼국유사>에 불교관계 기사가 너무 많고 연대가 틀리고 이 역시 신라 중심으로 서술된 점을 결함으로 지적합니다. 어떻든 남북한 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역사자료로서 가치있는 책이라고 평가하는 데는 차이가 없습니다.

북한에서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하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한에서 이른바 국보에는 대개가 건조물이 많습니다. 책은 상대적으로 남쪽이 많으니까 남쪽에서 주로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하고 있지요. 최근 한국에서 한 학자가 <삼국유사> 유사 연구서를 내면서 한국학생들이 그리스 신화는 줄줄 외면서 우리 단군신화는 왜 모르느냐면서 단군신화를 담은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보완하려고 만든 책이 아니라 우리 민족문화를 설명하려고 별개로 만든 책이라고 크게 평가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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