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팔아 친구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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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혹시 이 속담 기억하십니까? '부모 팔아 친구 산다.' 저도 오랜만에 되새겨 보는 말이라 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드네요. '진짜 부모를 팔아 친구를 산다고? 친구가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보다 더 귀중할까?'

답은 당연히 '아니'죠. 그러나 이런 비유로 가장 가까운 친구를 한사람 얻는 것이 일생 얼마나 큰 의미가 있고 또 영향을 미치는지 그 소중함을 일깨워준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가 중, 고등학교시기에 접어들어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이 행동할 때 이 말을 자주 도용합니다.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담배 몇 개비를 훔쳐 친구들과 함께 나눌 때, 그리고 친구들과 험한 장난을 하다 들켰지만 절대로 동료들을 이르지 않는 담을 발휘할 때 제격이라 하겠습니다.

좀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우리가 한창 클 때는 패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깍구 패', '미산 패' 등 유명한 깡패집단도 평양시 곳곳에 있었죠. 싸움할 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삽을 들고 돌격하고, 군대 전투가방에 돌을 채워 달려가고. 패싸움 전술, 조직도 다양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 형님들은 군 자녀들이어서인지 군처럼 조직을 만들었죠. 대장에 참모장, 후방부장, 작전부장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한번 된 통으로 혼이 났습니다. 김일성 지시에 의해서죠. 전국적으로 깡패, 패싸움 검거선풍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사회와 격리된 호위총국 소속 학교라 사상투쟁, 인민재판도 주석궁 앞에 있는 군부대 회관에서 진행되었죠.

패싸움에서 주모자로 활약했던 학생들의 부모들이 토론에 참가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위대한 수령님께 수십 차례 꽃다발을 드린' 접견자로서, 어떤 어머니는 '수령님의 명함시계와 표창을 수차례 받는 영광을 지닌' 사람으로서 가정혁명화를 잘 하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토론하더라고요.

모두들 호위총국 가족들이어선지 경력이나 배경이 정말 화려했습니다. 아버지들은 현직에서 모두 일하고 있고 또 본신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해서인지 토론을 시키지 않더라고요.

결과는 험악했습니다. 인민재판식으로 회의가 끝나자 호위총국 경무 군관들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수갑을 학생들에게 모두 채웠죠. 그리고 감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번 장성택 숙청에서 보여준 모습과 꼭 같습니다.

당시 잡혀갔던 사람들은 몇 년 복역하고 모두 사면되었습니다. '김일성의 배려'로 수감기간이 군 복무기간으로 바뀌었고, 또 제 기일 내에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마치도 수감기간이 훈장처럼 뒤 바뀌어 배치도 잘 받았습니다.

북한에서 혁명화가 간부징표처럼 인정받는 것과 유사하죠.

요즘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 전역에서 대대적인 깡패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깡패들의 행패와 활극도 심하다고 하네요. 조직 간 패싸움은 물론 상인들로부터 매대 설치비,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보안원들과 결탁해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마약 거래까지 한다죠.

또 이들로부터 압수한 수십 톤의 마약을 북한당국은 해외에 팔아 자금을 마련한다는 얘기도 있죠.

'부모 팔아 친구 산다.'의 속담처럼 부모만큼 소중한 인연, 인생의 길동무를 찾아야지 사람을 패고 범죄를 저지르는 깡패를 사귀면 안 되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