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네기 정책’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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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실무협상팀 카운터파트. 리용호-폼페이오, 김명길-비건.
북미 실무협상팀 카운터파트. 리용호-폼페이오, 김명길-비건.
/연합뉴스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을 경질하고 새로운 인물을 인명했죠. 그를 경질하면서 트럼프대통령은 ‘그(볼턴)가 김정은을 향해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언급한 건 매우 큰 잘못, 김정은은 볼턴과 엮이고 싶지 않아 했다’고 밝혔었죠.

또한 ‘볼턴의 언급은 좋지 않았다. 우리가 (협상에서) 차질을 빚게 했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슈퍼 매파로 평가받던 볼턴의 대북 강경정책 노선 때문에 그를 경질했다는 배경을 설명한 것입니다.

볼턴보좌관은 작년 싱가포르 1차 미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언론인터뷰를 통해 북핵에 대한 리비아식 방법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북한의 상황이 리비아와 다르다는 단서는 달면서 말이죠.

리비아식 해법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2003-2005년 사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핵을 포기한 사례를 말합니다. 당시 팬암 여객기 폭파 사건으로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는 큰 군사적 긴장, 적대관계가 조성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제재도 있었고, 또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도 감행됐었죠. 이라크 다음에 리비아가 되겠구나 하는 공포가 카다피정권에 팽배해 있었다고 봐야죠.

미국의 군사적 위협 속에서 안보를 지키고 장기집권을 꾀하던 카다피는 비밀리에 추진하던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포함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겠다고 2003년 12월 선언하게 됩니다. 이를 대가로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제재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즉, 선 핵 포기, 후 제재해제, 보상의 방식입니다.

당시 비밀협상을 통해 리비아의 핵 포기 의사를 확인한 후 관련 시설, 장비의 미국 이전과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거쳐 미국이 절차 완료를 발표할 때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영국 무기 전문가들이 리비아 내 의혹 시설 10개 지역 방문까지 허용이 됐고, 비핵화 당시 리비아는 고농축우라늄 16kg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런 방식에 대해 아주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죠.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해서 리비아가 얻은 게 결국은 뭐냐, 외부의 개입과 간섭에 의한 혁명, 그리고 자국 인민들에 의한 카다피의 비참한 처형이 그 결과가 아니냐 하면서 말이죠.

전문가들도 북한이 리비아상황과 같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리비아는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채 개발 초기단계에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반면 북한은 핵 실험을 6차례나 하고 미 본토까지 사정권에 둔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죠.

또한 리비아는 당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겁을 먹고 핵을 포기했다면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리비아만큼 군사적 위협을 받지 않고, 또 중국 대륙의 후방도 있고, 핵으로 동북아 주변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죠.

북한은 김명길 순회대사를 통해 볼턴경질에 대한 환영의 입장도 표명했습니다. 조만간 비핵화 관련 실무협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북한주민들은 당국의 정책을 ‘다마네기 정책’이라고 하죠. 아무리 까도 구태의연하게 꼭 같은 정책을 편다는 야유입니다. 지금까지 핵 정책, 외교도 그렇게 해왔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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