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한국의 속담대사전" 펴낸 정종진 교수


2007.04.19

흔히 '속담'은 말 그대로 '저잣거리의 속된말'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속담은 "조상들이 관밖에 남겨놓고 간 맛있는 지혜"이며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순간 상황에 아주 기가 막히게 터져 나오는 추임새'라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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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정종진 교수 - PHOTO courtesy of 청주대학교

RFA 초대석, 오늘 이 시간에는 최근 '한국의 속담대사전'을 펴낸 한국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정종진 교수를 모셨습니다. 정 교수는 지난달부터 미국 서부 UCLA에서 교환교수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속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정종진: 애초에 시작한 것은 문학을 가르치다보니까, 많은 작품을 읽게 되죠. 그 속에 많은 속담들이 나와요. 그런데 기존의 속담사전에 나오지 않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홍명희 소설 < 임꺽정>을 읽으면, "사내의 정은 들물과 같이 여러 갈래로 흐르고, 여편네 정은 폭포같이 왼골로 흐른다"는 속담이 나오는데, 속담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더군요.

또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시, 소설을 보면 그렇습니다. 홍석중이라는 북한의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 중에 < 높새바람>을 보면 "매운 연기조차 단 게 고향이다"라는 속담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북한 속담사전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도 속담사전이 많고, 북한에도 속담사전이 6-7개 정도 되는데, 이것들을 다 뒤져봐도 소설이나 시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속담들이 없더란 말이죠. 그래서 "아하, 사전에 실리지 않은 것이 내 몫이구나"하고 시작해서 많은 속담들을 모으게 됐죠.

네. 그럼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은 속담을 찾느라 현장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겠군요?

정종진: 돌아다닌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가 한 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중심으로 했기 때문이죠. 왜냐면,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누구보다 입담들이 좋습니다. 특히 소설가들이 그렇죠. 따라서 실지로 발품을 팔며 모으는 것보다는 입담 좋은 소설가들에 의해서 모여진 속담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문학작품 속에서 살아있는 속담들을 수집대상으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전 장르로 확대시켰습니다. 예를 들면, 한의학서적, 생물학 서적, 기타 분야에 확대시켜서 수집했는데, 제가 약 20년 동안 책을 읽어서 한 것이 만 이천여권이 됩니다.

만 이 천권이나요?

정종진: 예. 만 이천여권 정도 책을 읽고, 자료수집을 했죠. 그리고 ('한국의 속담대사전'에) 북한, 연변속담이 들어가 있지만, 그것은 거의 다 책과 속담사전을 중심으로, 또는 우리말 사전을 중심으로 했고, 제가 한 것은 한국에서 시장이나 시골동네 등지를 가서 속담을 수집했죠. 일차적으로는 모든 남북한 문학서적, 연변 문학서적, 이들의 국어사전, 속담사전들을 전부 점검하고, 혹시 빠진 것이 없나 전부 조사했습니다.

용례는 어느 작품, 어디서 인용됐다고 하는 것을 200자 원고지 분량 한 장분으로 속담사전을 전부 수록했거든요. 이렇게 하다보니까, 카드 한 7-8만장을 만들어서 거기서 5만여 속담을 추린 겁니다. (웃음) 하도 많다보니까, 컴퓨터작업으로 편집을 하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책은 큰 책으로 2107페이지로 완성이 됐습니다.

속담은 문학이나 언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종진: 예. 속담 속에는 그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있어요. 민족의 역사라든지, 문화, 사회, 풍속 등 모든 것을 속담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교훈 같은 것은, 많이 가진 사람이 걱정 없을 것 같지만,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등의 속담이 많거든요. 우리가 속담을 사용함으로 해서 우리 민족의 가치관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속담은 조상들이 그들의 삶에서 체험한 것을 요약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의 보물창고,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뭐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 등을 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슴속에 갖고 있는 이 언어의 보물창고, 이 속담들이 사실 알고 보면 조상들의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방금 속담을 보면 한 민족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한국인의 가치관이 예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예를 몇 개 들어주시죠.

정종진: 예전에 그렇게 여성비하적 발언을 많이 해오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면, "북어와 여자는 두드려야 된다" 등등이요. 하지만 요즘같이 여성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남자와 멸치는 달달 볶아야한다"이런 속담이 새로 만들어졌거든요.

하하. 그렇습니까? 미국에 있다 보니 그런 속담은 처음 듣네요.

정종진: (웃음) 그러니까 이 속담을 통해서 가치관이 재조정되기도 하죠. 또 대개 노인 공경의 문제, 돈 문제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늙으면 사람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늙으면 자식보다 돈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죠. 이런 속담이 한국사회의 일부를 찌르는 아주 통렬한 속담이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남북한 언어의 이질감으로 정착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속담 같은 경우도 서로 알아듣기 어렵습니까?

정종진: 오히려 속담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죠. 왜냐면 오랜 역사를 두고 민중들이 같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속담으로 통하는 게 더 빠릅니다. 훨씬 더 유쾌하게 통할 수 있죠. 북한과 한국에서 속담 쓰는 것 중에서 90%는 공용입니다. 거의 같습니다. 북한의 과거, 현재 체제가 다르지만, 속담만큼은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것, 사회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게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오히려 속담이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하는 데 훨씬 낫습니다.

북한속담과 남한속담의 차이라면?

정종진: 북한속담에서는 남한보다는 조금 교훈적입니다. 남한속담은 교훈적임과 동시에 오락적인 게 많구요. 북한속담을 보면, "소금 한 종지 아끼려다가, 고기 통마리 썩힌다" "사람이 궁할 때는 대끝에서도 3년을 산다" 이런 게 북한속담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궁하면 어디서든지 버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미국속담은 어떤 것 같습니까?

정종진: 미국의 속담 조금 봤는데요, 우리나라 속담만큼 찌르는 맛이라는지, 통쾌한 맛이 조금 덜하지요. 미국은 아무래도 역사가 짧으니까요. 한국은 역사가 깊으니까, 많은 속담이 만들어졌잖아요. 미국은 명언적인 속담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장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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