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나의 미래]기관사-‘고속철 시대’ 첨단과 미래, 통일의 상징

철마는 달리고 싶다. 남한의 열차는 전쟁의 아픔과 비극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잊고 싶은 상처를 돌이키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08.07.01
train 303 금강산 역으로 가서 북측 기관사들과 함께 북한 열차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왔던 남측 기관사 김동률씨
PHOTO/김동률씨 제공
하지만 이제 남한에서는 고속철도가 전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첨단과 미래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 첨단 교통수단인 열차를 움직이는 기관사라는 직업도 다시 각광 받는 직업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에는 열차 기관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봅니다.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통근 열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열차 대합실에는 열차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승객과 김밥, 삶은 계란을 놓고 물건을 팔려는 장사꾼들로 북적입니다.

이제 보기 힘들어진 기차대합실 풍경입니다. 석탄 열차는 이제 전기나 디젤 열차로 바뀌었고 남한에서 비둘기호나 통일호로 불리면서 시골의 작은 역에까지 모두 서던 완행열차는 시속 200km 이상 달리는 고속 열차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은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가 비행기 조종사만큼이나 인기 있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남한에서도 지난 70년대 산업화를 외치면서 한창 시골 사람들이 서울의 공장들로 몰리던 시절 기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당시 열차 기관사는 최고로 인기가 있었던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 2005년 남한의 정부기관 중 하나였던 철도청은 국가와 민간의 합작회사인 한국철도공사로 개편돼 운영됩니다. 지난해부터는 이름이 코레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 철도공사 이제 코레일로 불러 주세요... 먼길 운전하면 힘들다는 아내의 말에 KTX에 올랐습니다. 좋네요, 덕분에 이렇게 딸아이의 자는 모습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어서...

방금 들려드린 고속열차 KTX 광고처럼 자가 운전자가 많아지면서 열차 이용객이 줄기도 했지만 시속 200km이상으로 달리는 고속열차가 과거에는 자동차로 5시간 달려야 했던 서울과 부산을 2시간 반 정도로 시간을 단축하면서 열차 승객은 다시 늘기 시작했습니다.

고속열차가 나와서 한반도의 끝 부산에 사는 사람도 아침에 부산을 떠나 점심을 서울에서 먹고 저녁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먹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속열차의 등장으로 다시 관심을 끌게 된 기관사가 되려면 각 철도 사무국에서 시행하는 공개채용 모집에 응시해 신체검사와 적성검사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부기관사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짧으면 2년에서 5년 정도 부기관사 생활을 하면서 기관사로 올라갑니다. 철도인재개발원 운전면허 센터 육심관 교수입니다.

육심관: 교육훈련은 정부에서 지정한 전문 기관인 철도인재교육원인데 여기서 소정의 교육을 받고 교통안전공단이라는 제3의 기관에서 면허시험에 합격해야 면허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열차 운전면허 취득 후에도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운전하게 될 열차의 기종을 타고 운전구간을 돌면서 일정기간 견습하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육심관: 딱히 몇 시간이라고 말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신규 응시자의 경우 일반인은 전동차를 운전하려면 84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합니다. 또 디젤차를 운전하려면 1,120시간, 전기 기관차를 운전하려면 1,020시간 이렇게 전부 틀립니다. 대상자나 운전할 차종에 따라서 다 틀립니다.

기관사의 운전면허의 종류는 고속철도 차량 운전면허, 제1종 전기차량, 제2종 전기차량, 디젤차량 운전면허, 철도장비 면허 등 5개 종류가 있습니다.

기관사의 연봉 초임은 면허를 취득해서 취직을 했을때 대략 2,300에서 2,800만원 미국화로는 2만 5천에서 3만 달러입니다.

기관사는 아니지만 서울 지하철에서 차장으로 일하는 한용수씨는 북한을 탈출해 남한 생활이 벌써 12년입니다.

한용수: 앞에서는 기관사가 끌고 가고, 차장이 하는 일은 역에 들어가면 출입문을 담당합니다. 타고 내리고 문 닫고, 차가 빠질 때 위험하니까. 그런 것 감시하고 객실 난방하고 방송 장치들 저희가 만지고 ...

같은 탈북자 출신 최청하씨는 북한 사람들에게 철도는 친근하고 북한에서 철도에 근무했던 탈북자는 60여명 정도로 남한에서 살고 있지만 이들이 북한에서의 경험을 살려 남한의 철도 현장에 취업을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합니다.

최청하: 북한은 철도가 나라의 동맥이라고 해서 나라의 기본 수송으로 돼있기 때문에 철도 근무자가 10만입니다. 철도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여기에서도 철도 있고, 지하철도 있고 하니까...하나로 엮어질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가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지금 들리는 기차 소리는 57년 만에 남북의 철도길이 열리면서 북한 열차가 동해안의 남쪽 제진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당시 현장의 소리입니다.

지난해 5월 경의선 쪽에서는 남쪽의 기차가 올라갔고 동해선 쪽에서는 남쪽 기관사가 올라가서 북측 기차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금강산 역으로 가서 북측 기관사들과 함께 북한 열차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왔던 남측 기관사 김동률씨는 처음에는 긴장을 했었는데 실제 북한 사람을 대하면서 인간적인 것을 많이 느꼈다고 당시 감회를 떠올립니다.

김동률: 전체적으로 반가운 분위기에서 얘기를 했고 제게 정치적인 정세에 대해 물어봤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일절 답변을 안했고요. 주로 우리 기관사 생활하고 북쪽의 기관사 생활하고 번갈아 가면서 물어봤고 대우, 가족관계 굉장히 개인적인 얘기들을 한 1시간 정도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기관사 생활 20년차인 김동률씨는 철도 분야에 있어서는 일단 언어 소통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북한의 기관사들이나 남한의 기관사들이나 몰게 되는 차종에 특성을 알게 되면 바로 현장에 투입돼 서로 업무를 도울 수 있는 분야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김동률: 용어가 대부분 한자에서 오는데 진행이란 것도 한자에서 오는데 북한에도 그런 말을 써요 같은 철도용어라는 것이 아마 왜정 때부터 사용해 오던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같은 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북한 열차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전화 상태가 그리 깨끗하지는 못한데 기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열차운행을 하고 있던 김동률씨는 승객들이 모두 바다를 향해 앉을 수 있도록 개조한 차량으로 동해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관광열차, “바다열차”를 운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이진서의 나의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 열차 기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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