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나의 미래] 농협 마트 계산원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0.08.10
MC: 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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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동 세이트하이얀빌딩에 문을 연 농산물 가맹점사업 시범점포인 `하나로마트 웰빙하우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에는 농민의 조직으로 공동으로 일하고 그 수확물을 나눠 가지는 협동농장이 있습니다. 남한에도 농업협동조합 즉 농협이라고 부르는 조직체가 있습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남한의 농협은 농업인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율적으로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는 경제활동 조직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협동농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늘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 즉 시장에서 일하는 계산원이란 직업에 대해 알아봅니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도 농업협동조합이 있다고 하면 북한식으로 어느 행정 조직의 하나쯤으로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한 국어사전을 보면 농협이란 농업 생산성의 증진과 농가 소득 증대를 통한 농민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농가 생산업자의 협동 조직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남한의 농업협동조합 즉 농협이 어떤 조직인가를 알기 위해서 농협 홍보팀의 김형관 과장의 말을 들어봅니다.

김형관: 농협은 지역 농협 운영 조직과 경영 활동을 지원하여 조합원에 대한 교육 훈련과 권익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축산 관련 신기술, 신품종 연구개발 및 조합원 생활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둘째 농협은 농업인이 안정적으로 영농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산, 유통, 가공, 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 사업을 진원하고 있습니다. 경제사업은 크게 농업경제 부문과 축산 경제 부문으로 나뉘며 농축산물 판로 확대를 통한 농가 소득 증대 생산비 절감을 위한 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간판이 농협 마트입니다. 이곳은 일반 공산품을 팔기도 하지만 품질 좋은 농산물을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직접 구매해 다른 시장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에 인기가 좋습니다.

또한 농협은 농업금융 즉 농자금을 빌려주는 대출 업무도 하고 저축성 적금을 든다든가 하는 일반 은행 업무와 같은 편의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율적으로 가입된 조합원 수는 242만 명 그리고 지역에 있는 농협 수는 1,177개소에 이르고 있습니다.

함경남도 출신으로 30대 후반인 탈북여성 강유나(가명) 씨는 2004년 탈북해 이제 남한 생활 5년 차가 되고 농협에서 일한 지는 1년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집에 돌아오면 다리도 퉁퉁 붓고, 몸이 파김치가 될 정도로 기운이 없었지만 요즘처럼 직원이 많이 빠질 때면 일은 더 바빠집니다.

강유나: 휴가철이나 음력설, 추석은 사람이 많으니까 보통 9시간 일합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8시간, 7시간 일합니다. 중간에 밥 먹고 잠깐 앉아서 쉬는 시간 40분 빼고는 꼬박 서서 해야 합니다. 교대는 2시간씩 옮겨 가면서 일해야 하니까 다리는 좀 아파요.

일하는 직원 수가 적어 초과 근무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보통 농협 마트는 그 규모가 일반 백화점과 맞먹습니다.

강유나: 계산원만 한 40명 되고 축산, 과일 등 매장 직원만 1천 명이 넘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처럼 농산품은 물론 전자제품인 텔레비전과 밥가마 등 온갖 상품을 취급하는 농협 마트는 보통 커다란 단독 건물이고 층마다 파는 제품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지하 1층에는 식료품을 팔고 지상 1층엔 화장품과 신발류 그리고 2층은 전자제품, 3층은 옷장이나 침대, 가구 등을 파는 식입니다.

강 씨는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가끔은 남한 사람들이 매일 사가는 식품의 양을 보고 과연 몇 식구가 얼마나 먹으려고 저렇게 장을 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강유나: 먹을 것을 많이 사더라고요. 간식 같은 것 먹는 것을 정말 많이 삽니다. 솔직히 우리는 시장 보면 딱 필요한 것만 사죠. 우리 쓰는 것에 비교하면 3배는 더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강 씨가 일하면서 느끼는 또 이상한 점은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혼자 장을 보거나 아내와 함께 찬거리를 사는 모습이 북한 장마당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고 무엇보다 남자가 유난스러우리만큼 물건 값을 꼼꼼히 챙기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은 예쁘게 봐주기 힘든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강유나: 요즘은 마트 비닐 봉지를 50원씩 주고 손님이 사가는데 그걸 절약하려고 장바구니를 집에서 천으로 된 주머니를 하나씩 가져옵니다. 그럼 할인이 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장바구니는 아무리 못살아도 사회주의 사회에 살던 사람은 장바구니 50원은 안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남자들도 와서 장바구니 50원을 꼭 챙기려고 하고 우리 북한 사람은 남자가 쪼잔하게 장바구니 할인받으려고 한다 생각 하는데 여기 아줌마들하고 얘길 해보면 그것이 좋은 거라고 합니다.

농협 계산원의 일은 처음 직장인 선글라스 즉 색안경 회사에서 3년간 일한 뒤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일에 실증을 느낄 즈음해서 사무실 일이 아니고 뭔가 남한 사회를 더 잘 알 수 있고 활기찬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농협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본 겁니다. 강 씨는 면접을 봤고 성실하게 일할 것을 약속하고 계산원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초기엔 월급도 적었습니다.

강유나: 제일 많이 받아 본 것이 밥값까지 해서 126만 원 받아봤습니다. 첫 달은 완전히 제시간을 못 채우고 배우는 시간이 있어서 74만 원인가 받은 것 같습니다. 시간당 4천300원 정도 됩니다.

남한 돈으로 월급이 126만 원이라고 하면 미국 돈으로 환산해서 1,100달러 정도고 시간당 4천 300원이면 약 3달러 70센트가 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쉬고 쉬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을 피해 원하는 날짜에 쉽니다. 하지만 일손이 딸리는 때는 주 6일을 근무하는데 바쁘게 일하다 보니 중학교 2학년인 딸을 잘 챙겨주지 못하는데도 학급에서 우등생이 된 딸을 생각하면 대견하기만 하다며 딸에 대한 사랑은 펼쳐놓습니다.

강유나: 혼자 공부해서 이번에도 학급에서 4등 했습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데 반장도 하고 그럽니다. 여기는 이북에서 살던 것과 달라서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제가 강조합니다. 교육 문제도 학원갈 형편은 못 돼도 북한에서 살 때보단 많이 나으니까 본인이 노력하는 것에 따라 대학도 갈 수 있고 더 좋은 인생을 사니까 노력해야 한다.

정직원이 아닌 2년 계약직으로 일하는 강유나 씨는 앞으로 얼마나 계산원의 일을 할지 모르지만 현재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강유나: 우리 신랑에게도 말하지만 여기 온 것에 지금까지 후회가 없고 잘된 것 같다고. 월급 탈 때는 많든 적든 제일 좋습니다. 여기서는 자기가 일한 만큼 타고 그 월급으로 소비하고 사니까. 신랑 있고, 애 있고 하니까 집이 작아도, 내가 아파도 약을 먹으면서라도 나가 일할 수 있는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더 좋은 날이 있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농협의 계산원이란 직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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