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열흘 동안 남쪽은 깊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신문에서 접했겠지만 16일에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해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포함해 302명이 사망 실종됐습니다. 만경봉호보다 길이가 10미터 정도 작은 큰 대형여객선이 476명을 태우고 가다가 물살이 센 지역에서 뒤집어졌는데 174명만 빠져 나오고 302명이 못 빠져 나왔습니다.
이중 260여 명이 나이가 17, 18살 되는 새파란 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도 이제는 12년째이고 여러 큰 재난들을 겪었지만 이번만큼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배가 물에 잠기는 것을 온 국민이 TV로 다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는데, 그 안에 아이들이 260여명이나 있었다는 게 아닙니까. 망망대해도 아닌 육지에서 불과 1500m 떨어진 곳에서 구조선박들이 다 갔지만 뒤집혀진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배가 갑자기 뒤집혔어도 이렇게 억울하지 않겠습니다. 배가 워낙 크다보니 빠져나올 시간이 최소 40분은 있었는데 이 배의 선장, 선원이란 작자들은 기다리란 방송만 하다가 위험해지니 탈출하란 말도 남기지 않고 저들만 먼저 도망쳐 나왔습니다. 기다리란 말을 착하게 지킨 아이들이 다 죽었으니 얼마나 더 원통합니까.
열흘 내내 남쪽의 신문 방송은 관련 속보를 보도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무섭습니다. 자식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숨이 꺽꺽 막혀 우는 부모들의 모습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국민이 지켜보는데 함께 애간장이 끊어집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습니다.
차라리 여기가 북한이라면 이렇게 슬프지 않았겠죠. 고난의 행군 때에 100만 명 가까이가 굶어죽어도 북한 사람들이 덤덤했던 것은 동네서 누가 죽었다는 것만 알지 전국의 실정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봅니다. 여기처럼 어디서 얼마나 죽어가고 있는지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도했다면 북한은 벌써 다 울다 지쳐서 죽었거나 폭동이 났거나 했을 겁니다.
하루종일 아이들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 남쪽 사람들의 슬픔은 북한에서 김일성 사망 때 사람들이 밖에서 엉엉 울던 그런 슬픔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땐 저도 울지 않았는데 솔직히 머리 속에는 여든셋이면 살만큼 다 살았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일반 사람들은 일흔셋만 살아도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김일성은 여든셋이었으니 말입니다. 밖에 나와서 우는 척 하지만 사실 남보지 않는 집에서 혼자 통곡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김정일 때에는 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데 이번 여객선 침몰 사고는 사람들이 누구나 혼자 있어도 울었다가 분노했다가 또 울었다가 이럽니다. 아이들이 수백 명이나 얼마든지 살 수 있었는데도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말입니다. 선장만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거나 또는 선원들이 선실에 대고 바다에 뛰어들라 소리치고 도망쳤다면 대다수 아이들이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자기만 살겠다고 선원들과 함께 도망치고 구조된 뒤엔 일반인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태연하게 있었으니 외국 신문도 이번 여객선의 선장을 악마라고 합니다. 남쪽 사람들이 제일 분노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지는 대형 여객선 선장에 오를 수 있었을까고 말입니다.
북한은 어려서부터 자기 희생정신을 계속 주입하고 있어 저런 상황이라면 선장과 선원이 먼저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김일성 회고록을 보면 심지어 자기 딸과 남의 딸이 바다에 빠졌는데, 남의 딸부터 구하고 자기 딸은 목숨을 잃게 된 어떤 간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솔직히 그것까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딸부터 구하는 것은 인간이면 당연한 본능인데 자식까지 양보할 정도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긴 불가능합니다. 그냥 자기 자신만 집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겁니다.
자본주의는 경쟁사회라 늘 일등만 강조해와서인지 꼴등으로 나와야 할 순간에도 일등으로 도망치는 이기적인 인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특히 평소 일등으로 잘 나가던 인간들일수록 도망치는 것도 일등인 경우가 적잖았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존엄성을 지닌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구하다 구명복도 양보하고 목숨을 잃은 처녀도, 아이들을 구하려 다시 배안에 들어가 희생된 선생님도,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고 아이들을 구하다 숨진 해운회사 직원도 있습니다. 북한이라면 영웅칭호를 받을 사람들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총살감이죠.
이번 참사현장에서 악마와 인간의 존엄을 지킨 영웅을 다 같이 보았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위기의 한 순간에 비겁을 누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영웅이라 봅니다. 하지만 영웅들의 노력에도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결국 가장 큰 책임을 진 선장의 배신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선장들이 있습니다. 교장은 학교의 선장이고, 사장은 회사의 선장이며 대통령은 나라의 선장입니다. 선장이 배신하면 이번처럼 엄청난 재앙이 생깁니다.
북한도 그렇습니다. 2,300만 명의 목숨을 책임진 김정일이 저 혼자 살겠다고 개혁개방을 거부하면서 고난의 행군 때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북한이란 배는 지금 선장이 핵실험이다 뭐다 하면서 태풍 속으로 배를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뒤집혔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도 않고 배에 탄 사람만 멀미가 나 죽을 맛입니다. 그냥 빨리 뒤집혀져서 남쪽 여객선 사고와는 반대로 북한호 침몰 때에는 선장과 선원들만 죽고 인민들은 다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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