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한국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0.29
2010.10.29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장전투가 이제부터 막 시작되겠는데, 지난 화요일부터 갑작스럽게 영하의 한파가 들이닥쳐 배추가 다 얼진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뜩이나 차례지는 배추양도 적고, 양념재료도 없는데 배추까지 얼어버리면 큰일입니다. 아무튼 제가 서울에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지금쯤 북에서 뭘 할 텐데, 사람들이 힘들지 말아야 할 텐데”하고 걱정하는 것밖에 없네요.
서울에서 드는 이러저런 생각을 담아서 얼마 전에 제가 책을 하나 냈습니다. 제목은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입니다. 북쪽 같으면 작가처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책 한권 나오려면 얼마나 검열을 많이 거쳐야 합니까. 그러다보니 선전 관련 책을 제외하면 소설이나 기술서적 같은 것은 1년에 100종이나 나오는지 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소설 같은 것은 전국적으로 한 달에 한권도 출판되지 않죠.
그런데 한국은 누구나 마음대로 책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 많은 책들이 출판됩니다. 작년에는 약 4만8000종의 서적이 출판됐는데 이는 인구 100명 당 한 종의 책이 출판된 셈입니다. 이 비율을 북쪽에 대입시켜 보면 북조선 인구가 2300만 명 정도니깐 작년에 못해도 20만 종 이상은 출판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쪽에서 얼마나 새 책이 많이 나오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 북에서 해마다 출판되는 것보다 100배 정도 신간서적이 더 많이 출판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올해는 출판계가 불황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속도라면 올해에 한 4만3000종정도 출판될 것 같은데 이중 두개가 제가 쓴 책입니다. 다음 달쯤에 제가 쓴 책 한권이 또 출판될 예정입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제 이름으로 책을 두 개씩이나 써내고, 참 출세했습니다. 내년에도 하나 또 출판할 계획인데 그러면 일 년 안에 모두 세 권을 출판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자주 책이 나오는 이유는 제가 인터넷에 이틀에 한번 정도 꾸준히 북조선 관련 이야기를 연재하는데 이것이 인기가 좀 있어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겠다고 연락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동아일보에 쓰는 기사는 매일 수백 만 명이 보고, 인터넷에 개인적으로 올리는 글은 매달 100만 명 가까이 봅니다. 이런 글들을 묶어 책이 나갑니다.
요즘 남쪽에선 학생들이 보는 참고서 같은 것들이 제일 잘 팔리고 북조선 관련 서적들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북한 하면 골치 아픈 존재로 생각하고 그런 책은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책은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누구나 다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질적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단점도 있습니다. 또 북에선 책 하나 나오는데 숱한 전문 작가들이 달라붙어서 검열을 통과할 때마다 이곳저곳 손을 정말 많이 봅니다. 그래서 출판물에서 오자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고 효율을 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책 하나 내자고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으면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물론 북에선 1년에 출판되는 책이 많지 않으니까 책 하나가 나오면 최소 수십 만 명이 읽기 때문에 최대한 오류 없이 만들어야 하겠죠.
한국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거의 모두 매우 질 좋은 모조지에 인쇄됩니다. 북에선 열 댓 명만 돌려 읽어도 종이가 보풀이 일어 글씨가 보이지 않는 누런 재생종이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책을 보다가 모조지에 찍힌 책을 보니 처음엔 좋았지만 좀 살아 보니 책을 저렇게 좋은 종이에 찍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기선 책을 여러 사람이 돌려보지도 않고, 교과서는 아래 학년에 대대로 물려가면서 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한번 보면 끝인데, 그런 책을 저렇게 좋은 종이에 찍어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책을 낸다면 재생 종이에 내겠다, 한번 읽으면 되는데 굳이 좋은 종이에 낼 필요가 있냐”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책이 나올 때 출판사에 재생 종이에 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글쎄 여기는 재생종이가 모조지보다 훨씬 비싸다고 거절당했습니다. 누런 재생종이 가격이 하얀 고급 모조지보다 더 비싸다니 여러분들이 듣기엔 참 이상한 일이죠. 저도 잘 이해되진 않는데, 재생 종이를 쓰는 곳이 많지 않아 생산량이 적다보니 정작 구하려면 비싸다고 합니다. 여기선 2~300페이지 정도의 책 한권은 보통 10달러 정도에 팔립니다. 북쪽 기준에선 기막히게 비싸겠지만 미국 같은 덴 한국보다 책값이 2~3배 더 비쌉니다.
요즘엔 전자책이라는 것이 나오면서 종이 책시장이 점점 쇠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전화로 TV도 보고 필요한 책도 찾아서 보는데 아마 이건 따로 자세히 말씀드려야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겁니다. 혹 이 방송을 듣는 분 중에 북조선의 현실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에 연줄만 있다면 익명으로 책을 써서 원고를 중국을 통해 저에게 보내주시면 제가 서울에서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습니다. 북에 사는 사람이 직접 써서 서울에서 출판한 책이라면 역사에 남을 아주 유명한 책이 될 것인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일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으로 오늘 방송을 마칩니다.
서울에서 드는 이러저런 생각을 담아서 얼마 전에 제가 책을 하나 냈습니다. 제목은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입니다. 북쪽 같으면 작가처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책 한권 나오려면 얼마나 검열을 많이 거쳐야 합니까. 그러다보니 선전 관련 책을 제외하면 소설이나 기술서적 같은 것은 1년에 100종이나 나오는지 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소설 같은 것은 전국적으로 한 달에 한권도 출판되지 않죠.
그런데 한국은 누구나 마음대로 책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 많은 책들이 출판됩니다. 작년에는 약 4만8000종의 서적이 출판됐는데 이는 인구 100명 당 한 종의 책이 출판된 셈입니다. 이 비율을 북쪽에 대입시켜 보면 북조선 인구가 2300만 명 정도니깐 작년에 못해도 20만 종 이상은 출판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쪽에서 얼마나 새 책이 많이 나오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 북에서 해마다 출판되는 것보다 100배 정도 신간서적이 더 많이 출판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올해는 출판계가 불황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속도라면 올해에 한 4만3000종정도 출판될 것 같은데 이중 두개가 제가 쓴 책입니다. 다음 달쯤에 제가 쓴 책 한권이 또 출판될 예정입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제 이름으로 책을 두 개씩이나 써내고, 참 출세했습니다. 내년에도 하나 또 출판할 계획인데 그러면 일 년 안에 모두 세 권을 출판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자주 책이 나오는 이유는 제가 인터넷에 이틀에 한번 정도 꾸준히 북조선 관련 이야기를 연재하는데 이것이 인기가 좀 있어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겠다고 연락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동아일보에 쓰는 기사는 매일 수백 만 명이 보고, 인터넷에 개인적으로 올리는 글은 매달 100만 명 가까이 봅니다. 이런 글들을 묶어 책이 나갑니다.
요즘 남쪽에선 학생들이 보는 참고서 같은 것들이 제일 잘 팔리고 북조선 관련 서적들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북한 하면 골치 아픈 존재로 생각하고 그런 책은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책은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누구나 다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질적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단점도 있습니다. 또 북에선 책 하나 나오는데 숱한 전문 작가들이 달라붙어서 검열을 통과할 때마다 이곳저곳 손을 정말 많이 봅니다. 그래서 출판물에서 오자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고 효율을 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책 하나 내자고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으면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물론 북에선 1년에 출판되는 책이 많지 않으니까 책 하나가 나오면 최소 수십 만 명이 읽기 때문에 최대한 오류 없이 만들어야 하겠죠.
한국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거의 모두 매우 질 좋은 모조지에 인쇄됩니다. 북에선 열 댓 명만 돌려 읽어도 종이가 보풀이 일어 글씨가 보이지 않는 누런 재생종이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책을 보다가 모조지에 찍힌 책을 보니 처음엔 좋았지만 좀 살아 보니 책을 저렇게 좋은 종이에 찍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기선 책을 여러 사람이 돌려보지도 않고, 교과서는 아래 학년에 대대로 물려가면서 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한번 보면 끝인데, 그런 책을 저렇게 좋은 종이에 찍어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책을 낸다면 재생 종이에 내겠다, 한번 읽으면 되는데 굳이 좋은 종이에 낼 필요가 있냐”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책이 나올 때 출판사에 재생 종이에 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글쎄 여기는 재생종이가 모조지보다 훨씬 비싸다고 거절당했습니다. 누런 재생종이 가격이 하얀 고급 모조지보다 더 비싸다니 여러분들이 듣기엔 참 이상한 일이죠. 저도 잘 이해되진 않는데, 재생 종이를 쓰는 곳이 많지 않아 생산량이 적다보니 정작 구하려면 비싸다고 합니다. 여기선 2~300페이지 정도의 책 한권은 보통 10달러 정도에 팔립니다. 북쪽 기준에선 기막히게 비싸겠지만 미국 같은 덴 한국보다 책값이 2~3배 더 비쌉니다.
요즘엔 전자책이라는 것이 나오면서 종이 책시장이 점점 쇠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전화로 TV도 보고 필요한 책도 찾아서 보는데 아마 이건 따로 자세히 말씀드려야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겁니다. 혹 이 방송을 듣는 분 중에 북조선의 현실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에 연줄만 있다면 익명으로 책을 써서 원고를 중국을 통해 저에게 보내주시면 제가 서울에서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습니다. 북에 사는 사람이 직접 써서 서울에서 출판한 책이라면 역사에 남을 아주 유명한 책이 될 것인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일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으로 오늘 방송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