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에 부는 한류열풍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2.17
korean_wave_discussion-305.jpg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판 한류열풍에 대한 세미나.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저는 ‘북한에 부는 한류 열풍’이라는 제목의 한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갔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번 주 방송은 북에 부는 한류를 주제로 하자”고 생각했었습니다.

한류란 한마디로 한국의 흐름, 다시 말해 한국 대중문화의 바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한류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1990년대 중반 동남아시아 쪽이었습니다만, 이제는 한국보다 경제 선진국이라고 하는 일본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엄청 인기가 좋습니다. 멀리 이란 같은 곳에선 한국 드라마 하는 날엔 거리에 개미 한 마리 없이 한산합니다. 한국 드라마가 너무 인기가 좋다보니 중국이나 베트남에선 자국 드라마 시장을 보호하느라 한국 드라마 상영을 제한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한류 열풍이 2000년대 초반부터 북쪽에 대대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탈북자나 현지 주민들의 말을 들으면 한국 노래는 이미 너무 많이 퍼져서 몇 곡이나 퍼져있는지 셀 수 없나 봅니다. 아마 한국서 인기 있는 노래는 거의 다 들어가지 않았나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 노래 한 두곡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곧 송년회가 많이 열릴 텐데 그때는 ‘바위섬’ ‘친구’ 같은 노래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겠죠. 내년 봄 중학교 졸업생들이 군대에 나갈 때는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가 ‘상등병의 편지’로 가사가 고쳐져서 합창곡이 되겠죠. 요즘엔 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제곡인 ‘기도’라는 노래가 인기 좋다고 하더군요.

한국 드라마도 한두 편쯤은 다 보셨겠죠. 많은 드라마가 밀려들어가고 있는데 보니 어떻습니까.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눈으로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인데 드라마 자체가 남쪽 현실이라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저도 남쪽 오기 전에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서 큰 거실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배경으로 소파가 쭉 있고 온 가족이 거기 모여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오더군요. 그래서 한국에 가면 다 저런 집에서 저렇게 사는가보다 했는데, 웬걸 정작 와보니 그런 집은 대기업 회장이나 살지 일반 사람들은 꿈도 못 꿉니다. 저는 사회에 나와서 20평방미터짜리 임대주택을 받고서야 “아, 이것이 현실이구나”하고 느낌이 오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은 회사와 직장을 오가며 다람쥐 채바퀴 굴리듯 열심히 살고 있는데, 드라마 주인공들은 일은 안하고 사랑이니 여행이니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이렇게 드라마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적인 구석들이 좀 있긴 해도 그럼에도 한국 현실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도 많습니다. 거기 옷차림들은 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들이고, 집안 가전제품 역시 여기서 다 팔리는 것들이지 외계행성에서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닙니다.

남한 드라마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것처럼 따라하고 싶고, 그런 좋은 물건 쓰고 싶고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한국 말투가 요새 참 많이 퍼져있죠. 하긴 1990년대 초반에 벌써 저의 교수 한분은 “이랬던 거죠” “저랬던 거죠”하며 서울말을 쓰기에 “저 분이 어디서 서울말을 배웠을까” “저런 말을 써도 안 잡혀가나” 궁금했었습니다. 아마 그분은 유학파 출신이니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나 봅니다. 벌써 20년 전에 김일성대도 그랬는데 이제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얼마 전 중국 관광객이 평양 가서 찍은 사진 봤는데 사진 속 여대생 20여 명 중에 8명이 ‘거지머리’란 것을 하고 있더군요. 어느 드라마에서 그런 것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선 그런 머리 안합니다. 그런데도 한국식 머리라고 아무리 단속해도 유행이 수그러들지 않으니 한류가 힘이 상당한 거죠.

여기 남쪽에선 북한의 한류가 학자들이나 언론의 인기 관심사입니다. 여기엔 북에 한류가 퍼져 뿌듯하다는 심리도 깔려 있죠. 그런데 한류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선 시각들이 엇갈립니다. 저는 그날 세미나에 가서 “한류가 퍼졌다 해서 주민들이 폭동 같은 것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선택할 기회가 오면 그때는 축적됐던 남쪽에 대한 동경심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그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쪽에선 요 몇 년 사이 북한에 부는 한류가 큰 이슈가 되고 있지만 제가 취재하는 바로는 안타깝게도 그 몇 년 사이, 특히 올해부턴 한류가 급속히 식는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우선 북-중 국경이 급격히 얼어붙어 도강비용이 몇 년 전에 비해 거의 10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밀수꾼이 많아야 알판이든 노래든 많이 북에 들어갈 것인데 비용이 비싸니깐 사람들이 잘 다니지 못하고 또 하나는 보위부 단속이 엄청 심해져서 이제는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유통시키면 무조건 감옥에 가니 과거보다 위험부담이 훨씬 커진 거죠. 세 번째 이유는 처음엔 한국이 궁금해서 드라마를 열심히 봤는데 좀 보다보니 맨날 삼각연애나 하고 내용이 비슷비슷하니 인기가 식었다는 거죠. 몰래 숨어서 봐야 하는데 웬만하면 50부, 60부씩 분량이 엄청나니 그렇게 오래 숨어 볼 바에는 차라리 격술영화나 색정비디오를 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들어가 있는 알판까지 사라질 순 없습니다. 이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돌고 또 돌면서 한류의 명맥을 이어줄 것입니다. 아무리 장벽을 높게 쌓아도 사람들의 궁금증은 항상 그보다 더 높았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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