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과 북의 가을걷이 풍경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10.08
nk_load_harvest-305.jpg 평양 대성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이 볏단을 실어 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전국적으로 밥숟가락을 뜨는 사람들은 전부 농촌에 동원돼 나가 가을걷이 전투를 해야 하겠군요. 올해 작황은 좀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외국에서도 식량을 지원하지 않으니 농사라도 잘 됐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올해 남한은 사상 최대의 쌀 풍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기는 쌀이 넘쳐나도 처리할 데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반면에 올 가을 배추 농사는 정말 안됐습니다. 겨울 김장들을 담궈야 하는데 배추 농사가 잘 안됐으니 얼마 전엔 배추 한포기가 10딸라 넘게 팔렸습니다. 배추 한포기가 10딸라라는 것을 상상이나 하십니까. 작년에만 해도 한 2딸라 정도 했는데 말입니다. 하도 가격이 치솟으니 정부가 나서서 수입해온다 어쩐다 하면서 가격이 좀 안정되긴 합니다.

이럴 때는 북에서 배추를 수입해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배추 한포기에 2딸라는 고사하고 열 포기에 2딸라만 준다고 해도 북쪽에선 눈이 동그래질텐데 말입니다. 북쪽에 모자란 쌀은 남쪽에서 가져다주고, 대신 남쪽에 모자란 배추는 중국이 아닌 북에서 실어오고 이렇게 서로서로 돕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안타깝게도 남북관계가 그렇지 못하군요.

저는 북에 있을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농촌동원에 나갔었습니다. 강냉이를 수확하고 야간작업으론 탈곡장에 가서 탈피하고 논농사를 하는 곳에선 하루 종일 낫으로 벼를 벴습니다. 비가 온 뒤 다음날 아침, 살얼음이 진 논에 맨발로 들어가 볏단을 나르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다시 하기 싫은 일입니다.

남쪽에 온 뒤론 농촌 동원은 고사하고 회사와 집을 오가는 도시생활에 빠져버리다 보니 교외에 나가 논을 보는 날도 일 년에 며칠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8년 넘게 살고 있는데 가을걷이 하는 장면은 딱 한번만 실제로 봤습니다. 여기선 북에서처럼 낫을 들고 수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정이 기계로 이뤄집니다. 벼 수확기 하나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 시간 정도 지켜보았는데 순식간에 넓은 논에서 벼를 몽땅 베버리더군요. 예전에 숫돌에 낫을 썩썩 갈면서 벼를 베어냈던 저로선 기계가 벼를 쭉쭉 베어버리는 장면을 직접 보니 그냥 와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저는 북에선 벼 수확기를 기록영화에서만 보았을 뿐 실제로 본 일이 없습니다. 정말 신기하더군요. 예전에 농촌동원을 가서 우리 학급 20명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기계는 한두 시간 만에 다 해치웁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북에선 볏단을 묶어 논에 세워두었다가 다시 뜨락또르나 달구지로 탈곡장에 실어가서 거기서 벼를 털어내는 탈곡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선 수확기가 곧바로 탈곡까지 다 해버립니다.

수확기 안에 벼가 다 차면 한 몇 백 키로가 드는 커다란 자루에 쏟아 옮기고 이 자루를 다시 뜨락또르에 부착된 소형 기중기로 넌떡 들어서 실어갑니다. 수확기가 벼를 털어낸 볏짚을 논에 한 줄로 쭉 눕혀놓으면 다른 기계가 따라와서 이를 둘둘 동그랗게 말아선 비닐로 포장을 딱 합니다.

예전에는 볏단을 실어가서 종이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데 요즘엔 새 기술이 나와서 포장하기 전에 이 볏단 속에 배양균을 집어놓으면 볏단이 비닐 안에서 발효돼 몇 달 뒤엔 훌륭한 소먹이 사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계 둘이 슬슬 돌아가면서 일하니 누렇게 벼가 익었던 그 넓은 논이 순식간에 삭발한 머리처럼 빤빤해집니다. 그걸 보니 북에서 낫질하면서 허리가 끊어지게 벼를 베어냈던 그 시절이 참으로 억울하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농촌동원 나가면 벼 베는 속도가 좋다고 늘 칭찬받았습니다. 그래봤자 하루에 몇 백 평을 베기 힘들죠. 모내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으로 벼를 심어봤자 얼마 못하죠. 그런데 그때 수확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농촌동원 나갈 필요도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수백 만 명이 봄과 가을에 거의 두 달씩 농촌에 나가서 손으로 벼를 심고 낫으로 베어냅니다.

한국에서 한 사람이 두 달을 일하면 월급을 5000딸라는 넘게 받습니다. 북에선 어떻습니까. 남쪽보다 더 열심히 낫을 휘두르며 두 달을 뼈 빠지게 일을 해봤자 기계가 몇 시간 동안 일한 것보다 못한 일을 하고 받는 돈 역시 전혀 없지요. 이것이 얼마나 큰 노동력 낭비입니까. 저처럼 북에서 고급 인력축에 들어가는 사람도 두 달 동안 벼를 심고 베느라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하니 어찌 나라가 발전을 하겠습니까. 문제는 그러고도 식량을 자급자족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농촌에 동원되는 수백 만 명을 모두 해외에 보내 두 달 동안 일을 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수십 억 달러를 벌게 될 것입니다. 농촌에서 원래 일하는 농장원들까지 고려하면 액수는 더욱 많겠죠. 그 돈으로 식량을 사오면 북에서 몇 년은 먹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수백만 명이 해외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해외 국가들처럼 경제 시스템을 바꾸기만 해도 당장 노동력의 가치가 몇 백, 몇 천 딸라로 오를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다 망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의 그 낡은 가치를 고수하는 대가로 여러분들은 오늘도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저처럼 옛일을 돌아보면서 참 억울하게 느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헛되이 흘러가는 북조선의 하루하루가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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