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일성이 만들어낸 단군왕검
2024.10.04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들어 남쪽에서 쉬는 명절이 두 개 연이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국군의 날인 10월 1일, 다른 하루는 3일 개천절입니다. 모두 국가 공휴일이라 이날엔 일을 하지 않고 쉽니다. 3일 개천절은 꽤 오래전인 1949년부터 남쪽의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의미로서 단군왕검이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날입니다. 그런데 단군왕검이란 특정인의 이름은 아닙니다. 단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왕검은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즉 단군왕검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합쳐진 말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고조선의 왕을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단군 신화에 따르면 단군왕검은 천제 환인의 서자 환웅과 곰에서 변한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사달을 도읍으로 하여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합니다. 곰이 여자로 변했다거나, 단군이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만 봐도 이것이 신화라는 것이 명백하죠.
그리고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도 마찬가지로 전혀 역사적으로 증명된 날은 아닙니다. 단군조선이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에 개국해, 올해가 4357년째 되는 해라는 것인데, 4000년 전의 일을 누가 날짜까지 정확히 알겠습니까. 지금의 개천절은 대종교라고 하는 단군을 숭상하는 종교 단체의 지도자 나철이란 사람이 1909년에 이날을 개천절이라고 하자고 해서 나온 것입니다. 북한이 그토록 싫어하는 종교 지도자가 만든 날인데 북한도 그대로 갖다가 쓰는 것을 보면 많이 어색하죠. 아무튼, 지금까지 개천절 이야기를 쭉 해온 것은 단군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에 북한은 불쑥 단군릉을 만들고, 단군이 존재했다면서 뼈도 꺼내놓았습니다. 그때 역사를 좀 아는 사람들은 실소를 했습니다.
물론 북한에선 김일성 역사만 가르치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기에 이게 실소할 일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도 극히 드뭅니다. 역사학자나 돼야 좀 이런데 관심을 갖지, 그게 아니면 노동신문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면 그런가보다 그러는 겁니다. 대다수가 먹고살기 힘든데, 그게 단군 뼈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는 생각일 겁니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70년대 북한과 중국은 치열한 고조선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만주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게 과학적으로도 맞고, 중국도 부인할 수 없는데다, 나중에 후손들이 고조선 땅도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도 되고 하니 그랬죠.
1991년 출판된 조선전사에도 “단군신화는 의심할 바 없이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반영한 신화”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군을 발굴하라’는 김일성의 1993년 1월 8일 교시란 것이 나오며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만들어내란 말이죠.
역사학자들은 누구나 “이건 무슨 황당한 얘기냐”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은 양심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안 된다고 하면 수령님의 지시에 토를 단다고 가족까지 죽거나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하니 역사학자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조작입니다. 그래서 5000년 역사에서 누구도 찾지 못했던 단군과 부인의 뼈라는 것이 김일성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튀어나오게 됩니다.
북한은 전자스핀공명법을 이용해 뼈가 5011년 전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전자스핀공명법은 오차가 천 년 이상씩 나오기 때문에 10만년 정도의 단위를 재는 데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만약 북한이 5000년 전 유골의 연도까지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찾았다면 노벨상 10개를 줘도 아깝지 않죠.
북한은 또 단군릉에서 나무관을 고정하는 데 쓰인 쇠못 6개도 찾았다고 했습니다. 한반도와 만주의 철기문화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시작됐습니다. 심지어 기원전 3000년 시대의 청동기 유물조차 발굴된 것이 없는데, 그때 사람들이 철을 만들었다면 세계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일이죠. 이건 고고학자들에겐 가장 초보적인 상식인데 북한은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북한 학자들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조작한 것이니 이걸 듣고 거짓말인걸 알아달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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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김일성은 단군뼈를 찾았다고 좋아서 단군릉도 만들라고 했는데, 만들어진 릉은 전형적인 고구려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조선 때 무덤 모양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으니 그런 겁니다.
이렇게 단군릉을 조작하고 북한은 또 대동강 유역이 세계 문명의 중심지이며, 세계 제5대 문명의 하나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더 웃긴 일입니다. 대동강문명은 오직 북한만 주장하지 누구도 인정하지 않죠. 통일이 되면 다 사라질 허구에 불과합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는 중국 남방계 사람들과 북방계 사람들이 섞였다는 것이 유전학적인 결론입니다. 단군이 있었다는 5000년 전은 동북아 지역이 갑자기 추워져서 요동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농경에 좀 더 적합한 기후를 찾아 한반도로 꾸준히 내려왔고 그중 일부는 일본으로까지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그나마 과학적인 설명입니다.
역사는 과학으로 풀어야지, 김일성이 말 한마디에 갑자기 단군 뼈가 나오고, 대동강이 5대 문명 발상지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개천절을 계기로 민족의 역사까지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북한 체제의 실상,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 김 씨 일가가 말을 사슴이라고 하면 “정말 탁월하십니다”라고 박수를 쳐야 하는 북한 학자들의 불쌍한 실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끝나면 말을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 꼭 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