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한의 대학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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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교육, 그 중에서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웬만한 학생들은 다 대학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통계를 보니 일반 고등학교 졸업생의 88%가 대학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 대학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감탄스럽다 이런 것보다는 저렇게 너도 나도 다 대학을 나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북에선 열에 한두 명이 대학을 나옵니다만 여기선 반대로 열에 한두 명을 빼곤 다 대학을 나옵니다. 사실 한국은 고등학교까지 배우는 것만 따져도 북한에서 2년제 전문학교 하나 나온 것과 맞먹습니다. 여기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다닙니다. 그러니 모두 합쳐 12년으로 소학교와 중학교를 합쳐서 10년인 북조선보단 2년이 더 깁니다.

물론 여기도 탁아소와 유치원도 다 있지만 다만 여기선 탁아소라고 하지 않고 어린이집이라고 합니다. 유치원에서는 공부도 다 배워줍니다. 이렇게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거의 13년 동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또 10명에 9명은 대학에 갑니다. 고등학교를 스무 살에 졸업해 대학까지 졸업하면 24살입니다. 여기에 남학생은 군대에 갔다 오면 최소한 26살이 돼야 일자리를 잡게 됩니다. 군 복무가 비록 2년제이기는 하지만 대신 배우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27살에 제대돼서 사회에 취직하는 북조선이랑 비교해보면 일하는 나이는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그런데 사회라는 것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만 필요한 것은 아니죠. 청소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하고, 노동자들도, 농민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력의 대다수가 대학을 나왔으니 어떻겠습니까. 여기선 청소하는 사람을 환경미화원이라고 하는데, 취직하기 힘드니깐 대학에서 박사를 딴 사람도 이 자리에 취직하려 합니다.

상당수 대학 졸업생들은 굳이 대학을 안 다녀도 될 또는 대학 전공과는 무관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씩 비싼 돈과 시간, 정열을 허비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도 됩니다. 너도 나도 다 대학을 나오는 풍토에서 나만 안 나오면 바보가 되는 듯한 심정일 것입니다. 북에서야 대학 안나온 사람 많으니 대학을 안 갔다 왔다고 크게 부끄럽지 않지만 여기선 대학을 안나오면 노동자로 취직하기도 하기 힘들죠. 다 대학 졸업생이니 기업들에선 결국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따집니다.

한국엔 대학이 400개 가까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서울대학교를 가장 좋은 대학으로 치고 연세대학교나 고려대학교를 두 번째로 꼽습니다. 대학에 가도 등록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좋은 대학은 1년에 7~8천 달러 정도 받습니다. 큰 돈을 내고 열심히 배웠는데, 졸업하고 나면 좋은 일자리도 많지 않습니다. 여기 대학 입학제도 중에 좋은 점이 있다면 자기가 목표로 한 대학이 있는데, 거기를 목표로 했다가 떨어지면 몇 년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시험을 칠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한번 떨어져 다시 공부하는 사람은 재수생이라고 하고, 3년 공부하면 삼수, 4년 공부하면 4수하는 식으로 부릅니다. 또 좋은 점이 있다면 자기가 시험을 친 성적에 기초해서 전국의 대학 중에서 자기가 가고픈 곳에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 뽄트가 학교마다 딱 제정돼서 떨어지는 북조선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한국에서는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들은 의과대학에 많이 갑니다. 의과대학은 6년제인데, 자본주의 나라에선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 보니 의과대학이 인기가 좋습니다. 또 법학과도 인기가 있습니다. 판사, 변호사도 아주 훌륭한 직업으로 봅니다. 하지만 의학대학을 나오면 바로 의사가 될 수 있지만 법학과는 졸업해도 모두 판검사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국가시험을 쳐서 아주 제한적인 사람만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기 때문에 졸업해도 미래는 좀 불확실합니다.

북에 이런 말이 있죠. 젊어서 고생은 금주고 못산다고요. 여기선 모두 대학 가서 공부하다보니 고생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젊어서 다양한 체험을 많이 해야 하는데 글 뒤주만 되면 그것도 문제이긴 합니다. 북에선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10년씩 청춘을 바칩니다. 지식은 한국보다 없는 것이 확실하지만 대신 어디다 내놔도 버틸 수 있는 생활력이나 사회성은 확실히 기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자본주의 청년들이 생활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진 마십시오. 여기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기 때문에 모두들 이를 악물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제도는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개개인을 채찍질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니 발전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채찍질당하면서 사는 삶이 무한정 행복하기도 힘들겠죠. 자본주의 너무 환상만 갖고 바라보진 마십시오. 여기에서 사는 삶들도 정도의 차이이긴 하지만 힘들고 고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그런 힘든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희망은 하루 빨리 고향에 돌아가 낚시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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