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이민의 역사와 탈북자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4.15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에 남과 북의 인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거기서 하나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입니다.

해외동포 숫자는 지금 700만 명에 이릅니다. 남과 북의 인구가 7400만 명 정도 되는데 해외동포까지 다 합치면 8000만 명이 넘습니다. 700만 명이면 북조선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큰 규모입니다. 해외동포는 미국과 중국에 각각 200만 명 정도 살고 일본에도 70만 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동포들이 언제 해외에 나갔는지 궁금하시죠. 이제 북조선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영화 ‘민족과 운명’의 서막을 보면 눈보라 휩쓰는 언덕에 괴나리봇짐을 멘 한 가족이 엎어지고 뒹굴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제에게 빼앗긴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서 간도로 가는 사람들이죠. 중국에 살고 있는 200만 동포의 대다수는 그렇게 일제 때 건너간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입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로 떠난 사람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지, 이민을 떠난 백성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첫 이민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전인 1902년에 시작됐습니다. 이민이 시작된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1901년과 1902년에 함경도 지방에서 가뭄과 홍수로 극심한 흉년이 닥쳐서 사람들이 굶어죽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름엔 콜레라나 장티푸스와 같은 전염병까지 돌아 매일 3~400명의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거기에 탐관오리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습니다. 저는 그때 정황을 책으로 읽으면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이 굶어죽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은 “이렇게 국내서 굶어죽기보단 차라리 해외에 이민이라도 가서 먹고 살아라”하고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이민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우리가 고종황제를 나라를 빼앗긴 무능한 황제로 배우지만 그래도 백성들이 굶어죽으니 외면하진 않았습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외국에 건너가면 변절자라고 감옥에 걷어 넣고, 국경에 3중 4중의 봉쇄망을 쳤던 적은 우리 민족사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 외국이라도 내보내서 먹고 살게 하면 그 고마움을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내보낸 첫 이민은 제물포항, 지금의 인천에서 첫 배로 104명이 떠났습니다. 어디로 갔느냐 하니 바로 하와이로 갔습니다. 당시 하와이에는 사탕수수 재배농장이 많았는데 이곳에서 일할 인부가 모자라니 우리나라에 와서 모집했던 것입니다. 을사보호조약체결로 외교권을 일제에게 빼앗겼던 1905년까지 모두 7000여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에 건너갔습니다.

이민자들 대다수는 국내에서 먹고 살기 힘든 막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문맹자가 65%나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볕더위 속에 하루 종일 채찍을 맞으며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자녀들만큼은 열심히 공부시켜 1930년대엔 문맹률을 0.1%로 끌어내렸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원래 이렇게 억척스럽고 강인한 민족입니다. 하와이에 정착한 사람들 중 일부는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미국 본토로도 넘어갔습니다. 이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200만 동포의 시조입니다.

고종 황제가 해외에 이민을 내보냈던 것이 나라를 위해서도 참 잘한 결심이었다는 것은 훗날 증명됩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해외에 나간 우리 동포들은 누구보다도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중국과 소련에 건너간 동포들이 목숨을 걸고 항일운동을 벌인 사실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건너간 동포들도 태평양이 가로막힌 탓에 직접 총은 안 들었지만 조국광복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습니다.

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모든 미국 동포 단체들이 조국광복운동 후원을 그 행동강령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국 목사들이 “교회활동과 독립운동을 구분해달라”고 요청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동포들이 해방 전까지 상해 임정과 만주에 보냈던 독립자금이 300만 달러에 이릅니다. 당시 하루 일해서 버는 돈이 1달러 조금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여인들은 밥 짓기 전에 쌀 한 숟가락씩 따로 퍼서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냈는데 이 돈만 2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애국의 뜻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남이든 북이던 해외 동포들의 도움을 크게 받아왔습니다.

100년 전에 시작된 우리 민족의 이민사는 지금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북조선만 봐도 고난의 행군시기에 무려 30만 명이 중국으로 탈북했고, 이중 2만 명 가까이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이 탈북자 2만 명 중 지금까지 해외로 다시 나간 사람만 또 2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멀리 지구 반대쪽 영국에만 불과 몇 년 전까지 북에서 살던 사람들이 1000명 가까이 건너가 살고 있다 합니다. 우리 민족의 이민 1세대가 7000여명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적지 않은 수입니다.

해외에 나간 탈북자 수 만 명이 몇 십 년 뒤에는 가족을 이뤄 번창해서 수십 만 명으로 늘어나 북조선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 언젠가는 꼭 고향에 다시 돌아가 후대들에게 부강한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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