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혁명의 어머니’ 어떻게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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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일제에게 체포돼 귀순한 김일성의 전처 김혜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오늘은 김정숙과 지갑룡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제가 과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백두혈통이라는 세뇌에서 벗어나 역사의 진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940년은 동북 항일연군에 재앙의 시기였습니다. 일제가 작정하고 토벌을 시작했고, 귀순 공작도 정말 활발하게 진행됐습니다. 귀순한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고위직은 벼슬도 주었고, 일반 빨치산은 집과 땅을 주었고, 장가도 보내주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던 김일성의 상관인 양정우 2군 군장 등은 장열하게 전사합니다. 1940년 중반쯤 되니 만주의 항일연군은 3만 명에서 3천 명으로 줄었습니다.

김일성 부대도 참모장이 귀순했고, 다른 2군의 사장, 정치위원 등이 줄줄이 귀순했습니다. 만주 조선인 가운데 직급이 가장 높았던 황포군관학교 교관 출신의 전광, 즉 오성륜도 투항했습니다.

김일성은 대원이 10여 명 남게 되자 2군 상관들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제일 먼저 소련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2군 간부들이 도주범 김일성을 죽이라고 명령까지 내릴 정도였습니다. 김일성 부대가 사라지니 압력이 남은 부대로 오게 됩니다. 이때는 대부대로 다니면 눈에 띄기 쉬우니 부대를 쪼개서 움직였는데, 이걸 북한에선 소부대 활동이라고 부르죠.

김일성은 자기 경호중대장이었던 지갑룡을 상관인 2군 정치위원 위증민을 찾으라고 보냈습니다. 그때는 연락 수단이 없어 약속된 날에 못 만나면 죽은 것으로 간주할 때였는데, 지갑룡은 제 시간에 오지 못했습니다. 이때 지갑룡의 여자가 김정숙이었습니다.

김정숙이 지갑룡의 여자가 된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중국은 1958년에 살아남은 항일연군을 다 모아서 자세한 회상기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김일성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항일연군도 많아서 자세한 증언이 남겨졌죠.

하지만 중국은 김일성을 우상화한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이 자료를 지금껏 숨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몰래 본 사람들이 한둘이겠습니까.

이 자료들에 김정숙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

김정숙이 10대 초반에 지주의 첩으로 팔려갔다가 도망쳤다고 하는데, 이건 증인이 없습니다. 그가 근거지에서 아동단 지도원을 할 때, 워낙 여자가 귀하니 두 남자가 김정숙을 두고 싸웠습니다. 그들은 지갑룡과 여영준인데, 보다 못한 이들의 상사인 연길현 8도구 당서기 김홍범이 김정숙을 불러 물었습니다.

“누구랑 먼저 잠자리를 했냐?”고 하니 김정숙이 “갑룡이 오빠요”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김홍범이 “먼저 잠자리를 한 사람이 임자다. 오늘부터 정숙이는 갑룡이 여자다” 이렇게 결론 냈고, 김정숙은 지갑룡의 여자가 됐습니다. 쟁탈전에서 패배한 여영준은 해방 후 북에 가지 않고 연변에서 살았는데, 이건 그가 직접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오랫동안 김정숙은 지갑룡의 여인으로 살았는데, 1940년에 지갑룡이 실종됐습니다. 이때 마침 김일성도 자기 여자를 잃었습니다.

김혜순이 부상으로 치료받을 때 김일성은 귀순공작으로 들어온 오중흡 7연대 기관총패장 강홍석의 부인인 지순옥을 석 달 정도 데리고 살았습니다. 지순옥도 얼굴이 예뻤고, 김일성보다 몇 살 어렸다고 합니다. 이것도 중국의 비밀문서고에 있는 빨치산들의 회고록에 다 나옵니다. 이때 항일연군 내에서 지휘관이 부하 처를 데리고 산다고 웅성거렸다고 합니다. 강홍석은 1939년 육과송 전투 때 오증흡과 함께 전사한 사람인데, 김일성은 빨치산도 아닌 여자를 오래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여론도 안 좋으니 집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여성에게 다가갔는데, 이 여인도 해방 후 연길에 남아서 살다가 나중에 증언을 했는데, 이름이 공개되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이 여성과는 잘 되지 않았고, 그러던 중 마침 남편이 실종된 김정숙과 살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망갈 때 김정숙 등 10여 명의 일행과 같이 갔는데, 이중엔 나중에 흑룡강성장을 했던 진뢰의 아내인 조선인 이민이라는 여성대원도 있었습니다. 이민은 1950년대 당시 조사에서 김정숙이 보초 서러 나간 다음, 김일성이 자신을 희롱해 혼이 났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 달 뒤에 지갑룡이 살아서 부대를 찾아오는데, 오는 길에 자기 여자가 김일성의 여자가 돼버리고 임신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지갑룡은 제 정신이 아니었죠. 며칠 동안 한숨만 쉬다가 부하 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 내가 김일성한테 어떻게 가겠냐. 나는 안 간다. 내가 떠나면 너네가 총을 쏠지 모르니 총은 저기 개울가에 걸어놓고 가겠다.”

그리고 지갑룡은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여자를 잃은 허무한 걸음이었겠죠.

그렇다고 지갑룡이 변절한 것도 아닙니다. 지갑룡도 1932년부터 혁명을 10년한 투사였죠. 그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얼마 안 돼 일제 토벌대에게 발각돼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쨌든 변절한 기록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지갑룡은 북한에서 혁명의 신념을 버린 변절자의 대명사로 둔갑합니다.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지갑룡을 회상하면서 혁명의 신념이 없으면 아무리 오래 투쟁해도 변절한다고 사돈 남 말을 하듯 그럴 듯하게 썼습니다. 지갑룡의 변절을 다룬 ‘41년도 바람’이란 영화도 있습니다. 아내를 빼앗기고, 역사에 변절자로 남은 지갑룡은 하늘에서 땅을 치겠죠.

자, 이것이 김정숙이 ‘혁명의 어머니’로 둔갑하게 된 전말입니다. 북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게 거짓과 조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혁명의 어머니니, 백두혈통이니 하는 것은 모두 제일 먼저 도망가 살아남은 김일성이 만든 기록임을 여러분들은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