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북한 남성들의 우울한 미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1.03
plant_rice_b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북한 농민들이 손으로 모심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 덧 벌써 11월이군요. 두 달 뒤면 올해도 다 지나가고, 세월 참 빠릅니다. 11월. 11이란 숫자를 말하고 보니 얼마 전에 한국의 다문화 학생이 11만 명이 됐다는 보도가 생각납니다. 다문화가족이라는 건 쉽게 외국인과 사는 가정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북에서 조선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단일민족이라고 배웠습니다. 조선민족을 여기선 한민족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단일민족이 과연 자랑스러운 것일까요. 뭐, 21세기에도 백두혈통을 운운하는 북한에서야 혈통이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세상을 둘러보니 그거 별거 아닙니다. 민족주의, 순혈주의를 너무 내세우면 반드시 나라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하고 세계의 흐름에서 뒤쳐집니다.

불과 100여 년 전 우리의 역사만 봐도, 19세기 중반 영국과 미국의 철제 군함이 한반도에 나타나자 ‘위정척사’ 사상이 나라를 휩쓸었습니다. 이는 유교적 윤리에 기초해 바른 것을 지키고 옳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사상인데, 사실상 수구적 논리죠. 이런 논리를 앞세워 1860년대엔 통상개화반대 운동, 1870년대엔 개항반대운동, 1880년대는 개화정책 반대 운동이 차례로 벌어졌습니다. 외국과 무역도 안하고, 항구도 안 열고, 선진 문물도 안받겠다는 거죠. 딱 지금의 망해가는 북한을 연상케 하지 않습니까. 외세가 오면 모조리 쫓아내기에 급급하다보니 병인양요니 신미양요니 하는 사건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정반대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철군함이 강력한 포탄을 멀리, 정확히 꽝꽝 쏴대는 것을 보고, 저걸 배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서방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지, 귀족의 부인들까지 서양인들에게 애첩으로 붙여줄 정도였습니다. 일본은 결국 재빠르게 나라를 근대화했지만 폐쇄에 급급했던 조선은 19세기에도 300년 전 임진왜란 때 쓰던 화포나 닦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양육강식의 시대에 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개혁과 개방의 시대정신을 읽어내지 못한 대가는 민족 공동체의 파멸이었고, 36년간의 식민지 수모였습니다. 반면에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 다문화국가인 미국은 전 세계의 장점을 빨아들여 지구의 초강대국이 됐습니다. 아픈 역사 때문인지 한국은 이후 많이 개방적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민족주의적 배타성이 강해 오랫동안 외국인과 살아 태어난 아이들은 혼혈아라며 깔보는 경향이 있었죠. 북에선 혼혈아도 아닌, 아예 아이노크라는 비속어로 부르죠.

20세기말에 세계화의 거센 흐름이 닥쳐오자 한국에도 외국인 유입이 증가했고, 국제결혼도 급증했습니다. 외국인과 사는 가정은 이제 흔해지게 됐고, 2003년 시민단체들이 국제결혼으로 생겨난 가정을 다문화가정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다문화 학생이라 부릅니다.

요즘엔 농촌에 시집가려는 여성이 없어 농촌의 노총각들은 해외에서 아내를 맞아 데려 옵니다. 가난한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엔 부자 나라 한국에 시집오고 싶어 하는 여성이 줄을 섰습니다. 그런 가정이 급증하면서 올해 학교에 다니는 다문화학생은 무려 11만 명이나 됐습니다.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 비중도 1.9%까지 올랐습니다. 학생 50명 중 한 명은 부모가 외국인이란 것입니다.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청취자분들 중에선 “아니, 제 민족이 좋지 왜 외국인하고 사냐”고 혀를 차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진짜 걱정됩니다.

여러분이 내일이라도 김정은 체제가 붕괴됐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중국에 갔다고 처벌하는 권력이 사라지면 북한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중국만 해도 성비 불균형으로 장가 못간 총각만 30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북한 여성이 중국 한족과 결혼해 살며 돈을 북에 보내주면 당장 집안의 생활수준이 확 뜁니다.

지금은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오고 싶어 하지만, 예전 한국도 가난하던 1960년대엔 필리핀이 더 잘아서 한국 여성이 필리핀에 시집가면 부자 나라 시집갔다 부러워하고 그랬습니다. 그즈음 한국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수상했던 미인이 필리핀 대사관 2등 서기관과 결혼한 일도 있어 화제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대표 미인이 부자 나라에 살고 싶다고 필리핀의 하급 외교관에게 시집간 것입니다. 북한이라고 안 그럴 것 같습니까.

더구나 한족은 남자가 빨래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아이까지 키웁니다. 북한 남성들이 갖다 대지 못할 정도로 여성들에게 잘해줍니다. 세계에서 가부장적인 국가 중 하나인 북한에서 살다가 이런 살뜰한 남성들을 만나면 북한 여성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까요. 그때도 민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10년 뒤쯤엔 귀에 뭐 하나 끼면 말도 자동 통역되는 세상이 와서 언어장벽도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면 북한 여성들이 외국의 부자 나라로, 여성을 매우 존중하는 선진국으로 우르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가서 장가가는 북한 남성은 영웅 취급을 받아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빠져 나간 여성들이 한족과 살며 아이를 낳으면 북한 땅엔 한 세대 만에 한족 혈통의 아이들이 가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 끔찍한데, 오늘은 더 나가지 않고 여기에서 그치려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김정은이 사라지면, 우리 동네 아름다운 아무개 처녀가 잘 사는 선진국에 시집가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이 계속 핵미사일에 집착하면서 북한을 세계 최고 거지국가로 만들수록 북한 남성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 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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