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이 된 장자와 곁가지가 된 장자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12-1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는 유난히 추웠죠. 이 추운 겨울날 김정일 사망 3주기 행사를 치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충성심도 다 사라진 와중에 또 3년 상이라고 달달 볶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민심을 아는지 이번에는 그나마 제 생각보다는 간단히 끝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사람들을 계속 볶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7일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진행됐던 중앙추모대회 주석단을 보면서 저는 썰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과 3년 전에 저기서 김정일 추모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영구차를 호송했던 실세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장성택은 조카의 손에 비참하게 반동으로 매장돼 처형됐고 고모인 김경희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김경희가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뇌출혈로 죽었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또 이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보위부장도 사라졌고 김정각은 김일성군사대학 총장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났습니다. 김기남, 최태복 둘만 3년 뒤에도 주석단에 섰지만 이들은 지금 86세와 85세로 앞으로 다 사라질 것 같고, 그렇다면 주석단은 어떤 사람들로 채워질지 궁금합니다.

추모행사에서 황병서가 “우리 총대는 영원히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김일성·김정일총대, 김정은총대”라며 “김정은 백두산강국을 일떠세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김정은 총대, 김정은 백두산강국이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운명의 여신이 김정은의 손을 들어주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저 자리엔 장성택이 서서 “김정남의 총대, 김정남의 백두산강국”을 외치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고용희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저번 시간에 제가 고용희가 다카다 히메로 그냥 일본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고용희는 북으로 건너갔고, 일본 재포 출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왕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건 김성애도 못한 일입니다.

가만히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역사가 어떻게 같은 듯 다른 장면을 만들었는지. 1970년대 김일성 후계를 정할 때 구도를 보면 김정일은 장자였지만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는 자기 아들을 수령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그에겐 김평일, 김영일이란 두 아들과 김경진이란 딸이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김정은이 왕위를 물려받기 전 구도와 똑같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장자 김정남, 그리고 아버지 후처인 고용희에겐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이란 두 아들과 딸이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구도에서 김정일은 권력을 움켜쥐었고, 그의 장자인 김정남은 권력을 잡지 못했습니다. 둘 다 똑같이 장자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아버지 후처와 후계자 선정 싸움을 벌였는데 한명은 성공했고, 한명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걸 보면 개인의 권력 야심과 주변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눈도장과 항일투사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엄청 노력했습니다. 빨치산 시절을 미화 하고 영웅으로 만드는 혁명가극, 혁명연극 부지런히 만들어서 “아무래도 우리 늘그막을 책임져줄 사람은 정일이가 낫겠다”는 여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정남은 그걸 못했죠. 아버지에게 살점이라도 도려내는 효심을 보여주던가, 자신을 지지해줄 장성택이나 김경희에게 미친 듯이 아부했으면 결과는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대신 김정남은 외국에 놀러 다니다 잡혀서 아버지 눈 밖에 났습니다. 아마 정남에겐 권력을 꼭 물려받아야겠다는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더 강했고 돈의 맛에도 빠져버린 것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고용희는 아들을 위해 김정일에겐 죽도록 헌신했던 것 같습니다. 전국에서 5과를 거쳐 예쁜 여자들을 수없이 뽑아 여자 갈기를 양말짝 갈기처럼 했던 김정일이 고용희를 죽을 때까지 옆에 둔 것을 보면 그의 헌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첩의 자식이라 남들이 쉬쉬할까봐 정은이 형제를 다 스위스에 보냈으면서도 고용희는 옆에 두었습니다.

고용희는 김정은의 눈에 들기 위해서만 노력한 것이 아닙니다. 공식직함조차 없는 김정일의 그림자 아내로 살면서도 이제강, 조연준, 황병서처럼 한때는 막강한 위세를 가졌다가 선군정치 때문에 군부에 밀려 이를 갈던 조직지도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아마 김정남이 일본에 갔다가 체포돼 추방된 사건도 일본에 연줄이 있는 고용희가 김정남을 아버지 눈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고의로 일본 정부쪽에 정보를 흘려주어 체포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 고용희가 이겼고, 그의 둘째 아들 정은이가 북한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곁가지로 낙인돼 해외를 떠돕니다. 김성애 자식인 김평일과 김영진, 김경진 모두 해외에서 떠돌았습니다. 김성애는 김정은을 보면서 나는 왜 고용희처럼 저렇게 못했나 통탄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김성애도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확히 알긴 어렵습니다. 김성애는 죽어도 발표 한줄 나오지 않겠죠.

이제 곁가지의 낙인찍혀 해외에 추방되는 운명은 김정남에게 돌아갔습니다. 사실 그가 어떻게 곁가지입니까. 원가지가 아닙니까. 그걸 보면 백두혈통이란 것도 별 것 아니죠. 백두혈통이란 결국 피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투쟁에서 이긴 자에게 돌아가는 허울뿐인 감투일 뿐입니다. 김정은이 떳떳치 못한 혈통 자랑이나 하지 말고, 앞으로 인민들을 잘 살게 만들 후계자로는 내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그런 명분을 내세울 수 있도록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