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는 이런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읽었습니다. '평안남도 문덕군 주민들은 요즘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 나가 이삭줍기에 여념이 없다. 농민들이 이삭줍기를 먼저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마음대로 이삭을 줍지 못하지만, 농장 일을 2시간씩 도와주고 이삭줍기를 허락받고 있다.'
기사는 오전 10시까지는 농장 일을 거들고, 10시 후부터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 하루 종일 이삭줍기를 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읍내 주민들은 가을철에 이삭줍기를 놓치면 안 된다며, 이삭줍기에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식구들이 총 동원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곳 남한에는 식량이 너무 넘쳐 미처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수도 시민이든 농민이든 쌀에서 쌀을 골라 먹고 있는데, 하늘밑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내 고향 북한 주민들은 온 식구가 이삭줍기로 총동원돼야 한다니 마음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고향에서 살 때 저도 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가을 추수에 동원되어 나갔습니다. 협동 농장에는 운반 수단이 부족해 12월이 되도록 벌판에 볏단 무지들이 그냥 눈을 맞고 있기에 가두 여성들도 아이들을 맡기고 총 동원됩니다.
볏단을 등짐으로 지고 나르다 보니 땅에 벼 이삭들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있는 쉬는 시간만을 고대합니다.
그리고는 쉬는 시간이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동사무장 이하 남자이든 여자이든 땅에 떨어진 벼 이삭과 논두렁 위에 떨어진 콩알들을 한 알 두 알 주워 모으는데 힘든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주어온 콩알들을 한줌 두줌 모았다가 콩비지를 하고, 벼 알들을 절구에 찧고 또 찧어 쌀밥을 짓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오랜만에 콩비지에 흰 쌀밥 한 술을 먹으며, 우리 엄마 매일 농촌 동원 다니면 좋겠다고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11월 이면 협동 농장의 채소밭에 다니며 무와 배추 시래기를 주워 모읍니다. 이렇게 모은 무시래기와 배추 잎들을 모아 국도 끓이고 반찬도 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농촌 동원을 다니며 봐둔 옥수수 밭에 이삭줍기를 하러 갔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밤10시까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옥수수 이삭을 한 배낭 남짓이 주었습니다. 좋은 기분에 수다를 떨며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오던 중 갑자기 서라는 구령에 굳어 졌습니다.
한밤중에 누가 길목을 지키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몽땅 배낭을 풀어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배낭 속에는 잘라 먹던 무 몇 개도 들어 있었고 쥐구멍에서 얻은 강냉이 알이 꽤 들었고 옥수수 이삭도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삭줍기를 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무작정 단속원은 모두 쏟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 영문을 모른 채 가진 것을 모두 뺏기고 단속 초소로 끌려갔습니다.
조서를 쓰면서 알게 된 즉, 채 거두어들이지 않은 옥수수 밭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밭에서 훔치지 않았으니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며 낮에 쥐구멍을 파느라 아프게 된 손가락을 보여 주고 사정에 사정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몽땅 빼앗기고 빈 배낭을 손에 움켜쥐고 집으로 오는 내내 너무 분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이 시각도 하루 생계를 위해 허허 벌판에서 추위에 떨며 이삭줍기를 하고 쥐구멍을 찾고 있을 내 가족, 형제, 고향 사람들 생각에 밥상에 놓은 쌀밥 한 그릇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언제쯤 우리 고향 사람들도 편하게 밥 한 그릇 앉아서 먹을 날이 오려는지, 마음 아픈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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