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제 나이 50이 넘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여자로서, 주부로서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행복과 주부로서의 만족이란 과연 어떤 것을 의미 할까요. 저는 고향에 있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부엌에서 앞치마 입은 주부생활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저는 군복무시절보초 근무를 서면서 이런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 여름철 삼복 더위의 따가운 햇볕에 맹렬한 화력 복무 훈련에 땀으로 군복 입은 저의 잔등에는 흰 소금이 돋고 잔등과 겨드랑이는 땀띠로 쓰리고 아팠습니다. 포진지 흉장에 홀로 자동보총을 메고 보초근무를 서고 있노라면 예성 강 바람이 솔솔 불어와 저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혀 줄 때가 저는 제일 기분이 좋았답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저고리 고름과 치마 폭을 하늘하늘 날리며 서있는 저의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에 담아 보며 빙그레 웃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항상 저는 무거운 군복이 아니라 가벼운 치마 저고리에 행주치마를 입고 남편의 점심밥 곽이 들어있는 삼면 쟈크 가방을 아침저녁 들어 주고 까만 구두를 반들반들하게 닦아 주며 행복한 가정의 가장인 남편의 사랑 속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어 보진 못했습니다.
랭동기. 전자렌지. 전기 밥 가마. 청소기 세탁기 등 부엌 세간이 모두 갖추어진 부엌에서 앞치마를 입고 칼도마 질을 하다가, 주방에 서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며 지나간 추억을 자주 더듬어 본답니다. 밥상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해 놓고 가족이 빙 둘러 앉아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을 보면 저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며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화장품을 쓰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꿈에도 상상 못 하던 생활을 이곳 남한에서의 하면서 저는 자주 북한 여성들도 남한 여성들과 꼭 같은 여자이고 주부인데 왜 이런 행복을 느껴보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북한에서는 세상에서 제일로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자이고 주붑니다. 우선 살기 위한 투쟁이 힘들지, 조금만 색다른 것이 생활에서 나타나면 당 생활 총화에 비판을 받지, 또 조금 생활에서 변화를 가져 보면 남편이 통제 하지, 참 여자로 살고 싶어도 살수가 없는 것이 고향에서의 생활이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구리가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어 남편은 구리로 반지를 하나 해 주었습니다. 그 때 아마 제 나이가 37살쯤이었을 겁니다. 여자 37이면 한창 멋 부릴 때이지만 건강이 조금 안 좋았습니다. 군에서 피 수열한 후가로 자주 어지럼증이 있었습니다. 사실 남편이 그래서 구리 반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결혼 10년 만에 손수 손으로 만들어준 구리 반지를 끼고 친정어머니가 보내준 중국지남석 목걸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서도 그때 구리 반지유행이 한창 이였습니다. 남들이 다 끼는 반지를 저는 건강 때문에 끼었는데 당 생활 총화에서 수정주의 날라리 풍이라고 여러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우울 했습니다.
이곳 남한에 온 저는 목걸이에 반지를 끼고 손톱에는 매일매일 색깔을 바꾸어 빨간색 보라색칠 해봅니다. 참 여자로서 사는 재미가 나고 영광도 느낍니다. 북한의 여성들도 이런 재미와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빌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