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늦깎이 영어 공부
김춘애
2009.02.19
2009.02.19
저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이면 영어 공부방에 간답니다.
다람쥐 채 바퀴처럼 뱅글뱅글 도는 나날이지만 저는 즐겁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몇 십 년 만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처음 영어 공부방에서 함께 영어를 배우자는 직장 동료들의 말에 솔직히 조금은 부담이 됐습니다. 제 나이에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 특히, 함께 영어를 배우는 동료들에게 괜히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저는 이곳 남한에서 70대, 80대 고령의 노인들이 대학이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종종 보았습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워낙 외국어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배우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 “말 모르는 중국에서도 몇 년을 살고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하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영어로 인사말이라도 배우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이곳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돼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영어를 한마디도 몰랐습니다. ‘굿모닝’, ‘하이’ 하는 인사말도 한번 못했고 여러 가지로 애써준 고마운 분들에게 고맙다는 ‘땡큐’ 라는 말도 한번 못 했습니다.
드디어 첫 수업.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학습 준비를 했고 수업 시간엔 공책에다가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적고 또 적었습니다. 제 딴에는 집에 가서 복습이라도 해 보려고 했는데, 문제는 교실 문밖을 나서자마자 배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
첫 시간에는 ABCD 자모는 그대로 따라 읽고 썼는데, 그 뒤가 더 힘들었습니다. 낯선 영어가 저의 입을 도무지 열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업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출근하면서 회사 동료들에게 ‘굿모닝’하고 서툰 영어로 아침 인사를 하고 즐거워하고 고맙다고 ‘땡큐!’하고 인사도 해봅니다.
공부 시간에 영어 선생님과 한 뜸 한 뜸 어설픈 말투로 대화를 해가는 동료들의 대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날도 꿈꾸어 봅니다.
고향에서 제가 학교 다닐 땐, 영어는 미제의 말이라고 해서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는 중요했습니다. 학교마다 영어반, 노어반, 프랑스어반이 있기는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해 배울 수는 없었고 학교에서 정해놓은 대로 배워야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아버지가 군인이라 자주 전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1학년에는 영어를 배웠고 중학교 2학년부터는 노어를 배우다 보니 헷갈리기만 하고 외국어에 취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해 온 남편에게 영어로 “유 아 마이 에브리띵” 했더니 남편이 저를 덥석 않아 주더군요. ‘당신은 내 모든 것입니다’라는 뜻의 말로 수업 시간에 배웠던 말을 남편에게 써먹으려고 외워 놓았습니다.
남편에게 저도 영어를 배운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고 또 남편은 영어를 잘 알지 못하리라 생각해서 조금은 놀려 주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남편은 그 정도는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영어로 당신을 욕을 한 것이라고 잡아떼 봤지만, 남편은 아니라고 하면서 저에게 “당신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하고 말을 되돌려주더군요.
옆에 있던 아들도 웃으면서 “그렇게 쉬운 말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에 있어” 하기에 “이 엄마가 있잖니” 대꾸해줬습니다. 셋이 쳐다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늦게나마 배우는 영어 공부, 열심히 하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 였습니다.
처음 영어 공부방에서 함께 영어를 배우자는 직장 동료들의 말에 솔직히 조금은 부담이 됐습니다. 제 나이에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 특히, 함께 영어를 배우는 동료들에게 괜히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저는 이곳 남한에서 70대, 80대 고령의 노인들이 대학이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종종 보았습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워낙 외국어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배우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 “말 모르는 중국에서도 몇 년을 살고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하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영어로 인사말이라도 배우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이곳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돼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영어를 한마디도 몰랐습니다. ‘굿모닝’, ‘하이’ 하는 인사말도 한번 못했고 여러 가지로 애써준 고마운 분들에게 고맙다는 ‘땡큐’ 라는 말도 한번 못 했습니다.
드디어 첫 수업.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학습 준비를 했고 수업 시간엔 공책에다가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적고 또 적었습니다. 제 딴에는 집에 가서 복습이라도 해 보려고 했는데, 문제는 교실 문밖을 나서자마자 배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
첫 시간에는 ABCD 자모는 그대로 따라 읽고 썼는데, 그 뒤가 더 힘들었습니다. 낯선 영어가 저의 입을 도무지 열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업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출근하면서 회사 동료들에게 ‘굿모닝’하고 서툰 영어로 아침 인사를 하고 즐거워하고 고맙다고 ‘땡큐!’하고 인사도 해봅니다.
공부 시간에 영어 선생님과 한 뜸 한 뜸 어설픈 말투로 대화를 해가는 동료들의 대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날도 꿈꾸어 봅니다.
고향에서 제가 학교 다닐 땐, 영어는 미제의 말이라고 해서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는 중요했습니다. 학교마다 영어반, 노어반, 프랑스어반이 있기는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해 배울 수는 없었고 학교에서 정해놓은 대로 배워야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아버지가 군인이라 자주 전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1학년에는 영어를 배웠고 중학교 2학년부터는 노어를 배우다 보니 헷갈리기만 하고 외국어에 취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해 온 남편에게 영어로 “유 아 마이 에브리띵” 했더니 남편이 저를 덥석 않아 주더군요. ‘당신은 내 모든 것입니다’라는 뜻의 말로 수업 시간에 배웠던 말을 남편에게 써먹으려고 외워 놓았습니다.
남편에게 저도 영어를 배운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고 또 남편은 영어를 잘 알지 못하리라 생각해서 조금은 놀려 주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남편은 그 정도는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영어로 당신을 욕을 한 것이라고 잡아떼 봤지만, 남편은 아니라고 하면서 저에게 “당신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하고 말을 되돌려주더군요.
옆에 있던 아들도 웃으면서 “그렇게 쉬운 말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에 있어” 하기에 “이 엄마가 있잖니” 대꾸해줬습니다. 셋이 쳐다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늦게나마 배우는 영어 공부, 열심히 하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