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자실체: 8.15 광복절과 김일성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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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5일은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민족이 해방된 지 62주년째 되는 광복절입니다. 이 날은 특히 1년 중 민속 명절을 제외한 남북한의 유일한 공통된 국경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광복절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은 판이하게 틀립니다.

일제 치하에서의 35년간의 생활은 우리민족에게 너무도 굴욕적이고 비참했습니다.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 노동과 강제 징용에 시달리며 민족의 역사와 문화, 언어, 심지어 이름과 까지도 바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온갖 탄압 속에서도 조국 광복을 위한 항일 운동은 맹렬히 이어졌습니다. 해외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광복군 등이 조직되어 항일 투쟁을 벌였습니다. 한편 한반도 밖에서는 2차 세계 대전의 주범인 독일과 일본에 대항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등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결국 독일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고 일본은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1945년 8월 미국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그달 15일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따라서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이 항복한 날,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날, 그리고 일제 치하에 있던 한국이 독립한 날로 세계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김형직 사범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탈북자 박광일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배웠던 조국 해방의 역사는 남한에서 접한 세계 역사의 기록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박광일: 대한민국에서는 광복절이라고 하면 애국선열들이 업적으로 해서 거기에 미국이나 우방국들의 도움으로 일본이 져서 해방되었다고 광복절의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모든 것이 김일성 중심이니까 광복절도 김일성이 일본을 반대해서 항일무장 투쟁을 선두에서 이끌었기 때문에 우리가 조국을 광복할 수 있었다.

박씨의 말처럼 북한에서는 전적으로 김일성의 은공으로 8.15 광복이 이루어 졌다고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교과서는 조국 광복에 대해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총 공격 명령을 하달했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의해 일제가 패망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남한 원광대학교 이원웅 교수는 김일성이 이끌었던 항일독립운동이 우리 민족의 광복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 이외에 독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다른 세력들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그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원웅: 북한은 8.15를 연합군 특히 미국의 힘에 의한 전쟁의 종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죠. 두 번째 문제는 다른 세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즉 상해 임시 정부나 국내에서 더 힘든 조건에서 투쟁했던 민족 투사들을 북한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역사 왜곡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북한에서 상하이 임시정부를 조직한 김 구 선생은 낭만적인 민족주의자로 볼 뿐 크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일제하에서 무저항 민족주의 운동을 벌였던 조만식 선생도 해방 후 평양 형무소에 감금된 후 어떻게 숨졌는지 조차 불분명합니다. 그 밖에도 안중근, 윤봉길, 김좌진, 안창호등 쟁쟁한 독립투사들도 김일성에 비하면 그 수준이나 성과가 미미할 뿐입니다.

이원웅 교수는 북한이 역사책까지 고쳐 써가며 다른 항일 투사들을 폄하시킨 이유는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원웅: 개인에게 정치의 모든 권력을 집중하는 우상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역사, 특히 민족 해방 투쟁의 공훈을 김일성 개인에게 돌리고 최근에는 그것을 김일성 가계를 미화하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개인 중심 수령 중심 정치 체계와 연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광복절은 무수히 많은 애국선열들이 피 흘린 대가로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