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자실체: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장악 과정 중에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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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아무리 김일성의 후계자로 하더라도 김일성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군을 통솔하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벅찬 상대였습니다. 남한 Daily NK의 김영환 논설위원은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 오진우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영환: 오진우는 김일성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였으니까 오진우를 쳐낼 수는 없고, 쳐내기가 어렵다면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김정일한테는 중요했던 것입니다. 항일 빨치산 출신인 오진우 입장에서는 김정일이 정통 공산주의자 같아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오진우를 얻기 위해서 당근과 채찍, 즉 회유와 협박을 병행했습니다. 한번은 오진우의 집무실에서 도청기가 발견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오진우는 은밀히 진행된 색출 과정에서 도청기를 설치한 사람이 인민무력부 부부장 박중국이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박중국이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과 매일 저녁 술판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입수했습니다. 오진우는 바로 김일성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박중국은 직위해제 됐습니다. 그러나 박중국은 지방으로 유배돼 가지 않고 오히려 쿠바대사로 발령이 납니다. 박중국이 쿠바 대사로 간 것은 당시 김정일의 영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였습니다. 김정일이 오진우의 일거수 일투족을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도청기 사건 이후 1979년 군부에 오극렬 참모총장이 등장합니다. 오극렬은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인물로 48세의 젊은 나이에 인민무력부 총참모장이 된 것입니다. 그는 빨치산 시절 김일성과 가까웠던 오중성의 아들로 소련 공군대학에서 유학한 군부 엘리트 출신입니다. 오극렬은 참모총장이 된 후 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김정일에게 보고하고 그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일부 군부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일에게 모든 것을 고해 바치는 오극렬과 이를 못마땅해 하는 오진우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김정일은 오진우를 견제하는 동시에 회유 작전도 폈습니다. 김정일이 1980년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무렵 그는 오진우에게 포드 승용차와 벤츠, 그리고 사냥용 승용차등 최고급 자동차 6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또한 사회안전부 공병 1개 여단을 동원해 호화 단독 주택도 지어줬습니다. 이와 관련해 남한 Daily NK의 김영환 논설위원은 과감한 당근과 채찍을 이용한 용인술은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영환: 김정일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면서 쓰는데 굉장히 많은 선물을 준다든지 기념일 같은 날, 생일을 기억해서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귀한 물건을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과오를 저질렀을 때 과감하게 내치는 일도 서슴없이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당신을 내 손아귀 안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것을 각인 시킵니다.

이러한 가운데 1987년 오진우가 교통사고를 당해 거의 초죽음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진우는 완전히 김정일의 사람이 됩니다. 오진우의 교통사고 얘기는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워싱턴-이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