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돼지해 설날을 잘 보내셨습니까? 조상님께 차례 드리고, 어르신께 세배 드리고, 성묘 가고. 하얀 떡국을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뒤, 배가 든든히 찼다면, 신나는 놀이순서를 가지셨겠죠? 온갖 놀이판이 벌어졌겠지만, 가장 많은 가정들이 즐긴 놀이는 아무래도 화투가 아닐까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북한의 화투놀이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몇 년 전, 남한의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성인 남자들에게 “여가시간에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가 뭐냐?”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압도적인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한 것이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였습니다. ‘고스톱’은 영어의 ‘go'와 ’stop'이 결합된 합성어인데요, 여기서 ‘go'는 ’진행되다‘는 뜻이구요, ’stop'은 ‘멈추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놀이를 끝낼 수 있는 최소한의 점수, 보통 3점인데요, 이것을 먼저 딴 사람이 화투를 계속 진행시킬 것인지, 그만 멈출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남한사람 셋이 모이면 응당 ‘고스톱’ 한판이 벌어지는 국민놀이가 바로 화투입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 각종 친목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다 보니, 집집마다 화투 하나씩은 생활필수품처럼 상비하고 있습니다. 황해도가 고향인 올해 70살의 이성재씨는 지난 몇 십년간 여가생활의 하나로 화투를 즐겨온 화투 예찬론자입니다.
이성재: 대개 직장의 동료라든가 또 친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 술을 안 먹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 돼요. 그래서 그게 또 건강에 좋고. 부부동반으로 치게 되는 일이 많죠. 왜 그러냐하면 사람들이 모이면 술을 먹게 되니까, 술을 안 먹는 대신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건을 만들어서 빌미를 만드는 거죠. 치매를 예방할 수 있고, 또 조직력과 암기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가 즐기는 화투.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판돈을 걸고 화투를 해, 돈을 날리는 사람들도 있어 사회문제화 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례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오락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문제가 없다는 게 실향민 이씨의 생각입니다.
이성재: 내기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금액은 뭐 요새 한국의 노인정에 가보면 일 점당 10원짜리도 치고, 100원짜리도 치고 그래서, 그게 따는 사람은 한 2000원, 한 2달러 정도 따게 되고, 또 잃는 사람은 1, 2달러 잃고 해서, 돈내기하는 데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화투는 사실은 한민족 고유의 놀이는 아닙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세기말에 남한의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뱃사람들에 의해 한반도에 유입됐다고 합니다. 월별로 각각 4장씩 모두 48장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그 그림과 문양이 일본의 풍속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왜색’, 즉 일본 색깔이 짙다는 비난도 받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민족의 미풍양속을 소재로 한 모두 52장의 한국형 화투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 화투놀이는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멀리하다가, 6.25전쟁 이후 김일성의 지시로 화투를 금지했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도 화투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보따리장수나 재일 북송교포 등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남한에 정착한 지 2년여 되는 탈북자 이금룡씨도,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친구들끼리 모이면 화투를 쳤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말했습니다.
이금룡: 고스톱은 모르구요, 북한에서 하는 화투는 중국식 화투하고, 일본식 화투하고, 그 다음에 우리 고전적 화투, 이 세 가지밖에 모릅니다. 일본식은요, 한판에 600끗이라고 해서, 일본식 화투를 치죠. 뭐 이노시따조, 사슴, 멧돼지 이렇게 해서 새 세 개가 붙으면 이노시카조가 돼서, 120끗 뭐 이런 식으로 600끗짜리 가지고 놀죠. 이건 재일 북송교포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 중심으로, 이 사람들끼리 마주앉으면 일본식 화투를 하구요. 북한사람들하고 할 때는 북한식 화투를 합니다. 일반 청단, 홍단, 그 다음에 사광, 오광, 이런 식으로 하면서 화투를 하는데요, 대체적으로 지금 화폐가 올라갔잖아요? 그래서 한판에 한끗당 10원, 5원, 그렇게 계산하고, 조금 큰 놀음판에서는 한 끗에 100원, 1000원 이렇게 걸고 하는데요..
소위 ‘국민오락’이라고 할 수 있는 화투.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돼 함께 칠 수는 없지만, 통일된 그날에는 새로 개발된 한국형 화투의 매력에 남북한 주민들이 푹 빠져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워싱턴-장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