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한의원 개원한 탈북자 김지은 씨 “통일 대비 남북 한의학 접목이 꿈”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나고싶었습니다’ 순서의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은 한국에 오신 탈북자 중에서 동의사, 그러니까 한의사 한 분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분은 북한에서도 한의사로 일하다가 지난 2002년에 한국에 와서 다시 한의대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지난 토요일에 드디어 자신이 운영할 한의원을 개업했는데요. 한국과 북한에서 모두 한의학 정규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의사, 김지은 원장을 경기도 부천에 있는 ‘진한의원’ 원장실에서 만나봤습니다.
서울-박성우 xallsl@rfa.org
2009.06.02
kim ji eun 210
한국과 북한에서 모두 한의학 정규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의사 김지은 씨가 13일 경기도 부천에서 한의원을 개업했다. RFA PHOTO/ 박성우
박성우:
김지은 한의사님, 축하합니다.

김지은: 고맙습니다.

박성우: 여기 와 보니까 한의원이 현대적이고, 굉장히 넓네요. 이거 마련하시느라고 신경 많이 쓰셨을 거 같아요.

김지은: 신경을 좀 많이 썼지요. (웃음)

박성우: 한의원 이름이 ‘진한의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김지은: ‘진’은 ‘참’이라는 뜻이에요. 참말로, 참스러운, 진심 되게, 이런 뜻이고요. 거기다가 또 개인적인 생각을 좀 가미한다면, 제가 살았던 곳이 함경북도 청진이잖아요. 한자로 보자면 의미가 좀 다르긴 하겠지만, 발음 나는 대로 한다면 그런 ‘진’이라는 의미도 있고. 어쩌면 또 ‘김지은’이라는 이름도 빨리 발음하면 ‘진’이 되잖아요.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많이 했고요. 주된 뜻은 ‘참 진’이에요.

박성우: 한의원 개업하신 게 지난 토요일이었어요. 개업식 전에는 준비하신다고 정신이 없었을 테고. 한숨 돌리신 건 아마 손님들 다 가고 나서, 저녁에 이 원장실 의자에 앉아서였을 텐데요.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던가요?

김지은: 개업식 끝나고 다음날이 일요일이었거든요. 그날 출근했어요. 저 혼자. 출근해서 앉아 있었고. 월요일 아침에도 한 4시에 일어나서 6시 조금 넘어서 집에서 나와서 또 출근했어요. 그래서 첫 환자를 보고, 저녁에 집에 가서, 어제 밤에 밤새도록 울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람들이 ‘느낌이 어떻습니까?’ 그러는데요. ‘만감이 교차합니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어요.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예전엔 저에게) 그냥 말 뿐이었는데, 정작 지금 제 심정이 만감이 교차하는 거 같아요. 기뻤다가, 지난 일도 생각났다가, 앞으로 기대에 부풀었다가, 아무튼 온갖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박성우: 선생님, 지금도 말씀하시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하신데요. 아마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요. 선생님은 원래 북한에서도 한의사로 일하셨어요. 2002년에 한국에 오셨는데, 이렇게 한의사 명패를 내 걸고 일하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 청취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을 부탁합니다.

김지은: 제도가 다르니까요. 제가 북한에서 한의대 7년을 다녔고, 한의사 생활을 8년 했고. 어쩌면 한의학 부분에만 바친 기간이 사실 15년이에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그러한 자격이 인정되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데 대한 노여움이나 유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사회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다만, 그때 좀 아쉽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학문의 기초가 같기 때문에 우리 같은 북한에서 온 지식층에 대해서 좀 더 보강을 해 줬으면 하는 부분이 좀 아쉬웠고. 그래서 의견을 제기했는데, 다행히 그것이 잘 받아들여졌고. 정부에서 여러 가지 배려를 해 줬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지금은 잘 돼서 너무 고맙습니다.

박성우: 그럼 예전과 지금의 차이점이 뭐지요? 예전에는 아예 한의사가 될 수 없었던 건가요?

김지은: 네.

박성우: 이젠 한의사 시험을 칠 수 있게 해 준 건가요?

김지은: 네, 이전에는 북한에서 한의사를 하고 와도 한국에서 한의사 국가고시를 칠 수 있는 자격을 안 줬어요.

박성우:
그렇게 제도가 바뀐 게 2007년이라고 들었는데요.

김지은:
맞습니다.

박성우: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시험을 치르려고 다시 대학교에 들어가셨어요. 세명대학교 한의대에서 4년간 대학생활을 다시 하신 건데요. 학생들과는 거의 이모뻘 정도가 될 정도로 나이 차이가 났는데. 학교생활은 힘들지 않으셨나요?

김지은: 사실 처음 들어갈 때 굉장히 많이 걱정했어요. 나이 차이가 크고. 또 한국의 한의대에는 굉장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들어가잖아요. 일반적으로 공부 좀 잘한다, 아니면 인텔리다, 하면 굉장히 자아감이 심하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곁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을 듯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까, 사실은 어린 학생들이 제 생각보다는 굉장히 부드러웠고, 저를 굉장히 많이 이해해 줬어요. 제가 참 잘 내린 결정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성우: 김 선생님은 참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북한에서도 한의학을 배우셨고, 한국에서도 한의학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셨는데요. 학교에서 배우는 남북한 한의학은 뭐가 다르던가요?

김지은: 가장 큰 차이는 교육 체계, 교육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북한은 실기 교육 위주에요. 한국은 이론 교육 위주에요. 아주 많이 외우고, 외운 걸로 시험을 치고요. 물론 의학이 한방이나 양방이나 마찬가지지만, 외우지 않고는 못해요. 당연히 외우는 게 많아야 하는데. 그래도 북한은 외우는 것과 함께 실기에 대한 교육을 굉장히 많이 해요. 아마 몇 년을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실기보다는 이론 위주로 많이 배우기 때문에, 대신 (대학을) 나와서 그걸 보강하기 위해서 인턴이나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거 같아요.
제가 사실 처음에는, 한국은 너무 많이 외우게만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아마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의 차이인 듯해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또 교육 제도 자체가, 한국은 방학이 북한보다 매우 기니까,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짧으니까, 그 기간에 이론만이라도 확실하게 터득하고 가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북한이 훨씬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
교육 내용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과목을 살펴본다면, 한국에서는 고전을 많이 봐요. 원서를 말하는 거죠. 동의보감 같은 고전을 많이 보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한국이 훨씬 잘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한의학이나, 북한의 고려의학이나, 모두 우리 민족의 전통 의학이잖아요. 그런데 전통 의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전통 의학을 처음에 만든 사람이 누구이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모른다면, 사실 우습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그런 교육은 안 시켰어요.

박성우: 김 선생님은 북한에서 임상에 대해 많이 학습을 하셨고, 한국에 와서는 이론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하신 셈인데요. 한의사 고시는 아무나 붙는 건 아니잖아요. 의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다 붙는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선생님께서도 이 시험이 어려웠겠지만, 이 시험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다른 학생들과는 상당히 달랐을 거 같은데요. 어땠습니까?

김지은:
그렇죠. 일단 나이 차이가 크고. 40대면 머리가 굳었잖아요. 제가 자꾸 나이를 구실로 삼는 거 같은데요. (웃음) 아무튼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100퍼센트 붙는 시험이 아니고, 형식적으로 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는 지금 떨어지면, (또 시험을 치는 게) 어렵잖아요. 저는 제 삶에서 사생결단으로 했던 일들이 몇 번 안 되는데, 그중에 이번 시험이 한 번이었던 거 같고. 이 시험에 (온 힘을) 깡그리 쏟았어요. 그래서 시험을 칠 시점이 다가오니까, 내가 이번 시험에서 혹시 떨어진다고 해도 후회가 안 될 것 같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니까, 후회가 없는 거예요.

박성우: 합격증은 언제 받으셨어요?

김지은:
시험은 1월 16일에 치고, 합격증은 1월 30일에 받았는데. 처음에 문자가 왔어요. 물론 사전 채점을 했기 때문에 ‘아, 내가 합격이다’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게 공식적으로 발표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합격 발표될 때까지 계속 긴장하고 불안했거든요. 어떤 건물에서 (전화가 와서) 친구가 ‘너 주민 등록 번호 말해라’고 해서 말을 해 줬는데, ‘합격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학장 선생님에게서 ‘축하합니다, 합격했습니다’라는 문자가 오고, 국시원(국가고시시험원)에서 ‘수험번호 몇 번 몇 번 몇 번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라고 문자가 오는데, 그때 계단 올라가다가 펄썩 주저앉아서 막 울었어요. 아는 친구들 몇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하면서 내가 막 우니까, 친구들은 ‘얘가 떨어졌나보다’라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괜찮아 지은아’ 그러는데, 내가 ‘합격했어’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전화기 저편에서 친구까지 막 우는 거예요. 그만큼 저에게는, 제가 열심히 했고. 아무튼, 제가 너무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웃음)

박성우:
핸드폰 문자로 합격 통지를 받으셨군요.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원장님, 명함에 보니까, ‘남북한의학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도 있는데요. 남북한의학연구소는 어떤 단체이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요?

김지은: 이름이 좀 거창하기는 한데요. 제가 북한에서도 한의대 7년을 다녔고, 한국에서도 한국 한의대 정규 과정을 밟았어요. 현재 대한민국에는 양쪽의 정규 과정을 다 밟은 사람은 저 혼자예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있지만, 정규 과정을 다 밟은 사람은 저 한 명이거든요.
제가 교육을 받으면서 느낀 점은, 북한에서 했던 여러 가지 방법과 한국에서 했던 여러 가지 방법들, 여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다 있을 수 있잖아요. 어디나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양쪽의 장점인 부분들을 살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좀 더 완성된, 한국 사회이든 북한 사회이든, 어디서든 주민들에게 치료가 잘 되고, 좀 더 나아가서 국제무대에 ‘이게 우리 한국 의학입니다’라고 내 놓을 수 있는 걸 좀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첫째로 들었고요.
한국에서는 한의학이지만, 북한에서는 고려의학이에요. 현재 북한의 고려의학에 대한 한국 사람의 인식이나, 이런 쪽의 재정립이 완성된 게 없고, 나와 있는 게 없어요. 물론 한국에서는 이런 걸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통일된다고 생각할 때, 북한에서 고려의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밟아왔고, 교육이 어떻게 발전해 왔다는 걸 우리가 앞으로 정치할, 앞으로 사회에서 큰일을 할 후대가 알고 있다면, 그때 그런 북쪽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 능숙하게 잘 대처할 수 있다면, 서로 화합하고 하나가 되는데 좀 더 빠른 지름길 같은, 그런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일단 시작했고요.
시작이라 이름만 있고, 사실 굉장히 미비하고, 그래서 앞으로 많이 보강해야 하고요. 그렇다고 제가 혼자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과 의료인들과 힘을 합해서 꾸려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만들었습니다.

박성우:
원장님,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는데. 앞으로 갈 길도 매우 크고, 뜻 깊은 계획을 세워 두신 거 같아서 보기가 좋습니다. 앞으로 희망하시는 일들이 모두 잘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만나고싶었습니다’ 오늘은 진한의원의 김지은 한의사님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김지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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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2009-11-22 16:31

부천에있는 통일 한의원 위치를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