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이야기: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손지언씨
2007.10.09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이번 주 '이산가족 이야기' 시간에는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손지언씨의 사연을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 고향은 아주 아름다운 곳이에요. 산골인데 시내가 흘러요. 굉장히 맑아요. 약산에 진달래가 굉장히 많았어요. 우리 어머니가 산나물 하러 가셨다가 진달래를 보면 진달래에 홀려서 산꼭대기 까지 올라가셨다고."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손지언씨. 올해 76살인 손씨는 미국 워싱턴 디씨 인근의 노인아파트에서 혼자 삽니다.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에 하얀색 구두를 신고 기자에게 준다며 장미까지 한 아름 들고 나타난 손씨는 고향 얘기를 묻는 질문에 대뜸 진달래꽃 얘기부터 풀어놓았습니다.
손지언: 이제 진달래는 완전히 볼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변에는 또 밤이 많이 나요. 우리 할아버지가 밤이 많은 산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 밤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나고. 그리고 영변이 명주로 유명해요. 고모들이 명주 공장에 다녔거든요. 우리 고향이 핵 공장이 생기고 폐허가 되었으니까 지금 거기 사시는 분이 계시겠어요? 금지 구역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친척들은 남아 있는 분이 안 계실 겁니다. "
60년 전에 떠난 고향 이제는 잊을 때도 되었건만 외로워서 그런지 기억은 더 생생해 집니다. 그래서 손씨는 요즘 부쩍 고향에 대한 시를 자주 씁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쓰던 시들이 모여 벌써 시집을 두 권이나 냈습니다.
손: 고향 생각이야 항상 나죠. 괴로울 때나, 이북 도민회 모일 때나, 그래서 그때는 나가서 사향의 시를 읊고 그랬죠. (시는 언제부터 쓰셨나요?) 쓰기는 10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인이 된 것은 70살이 돼서입니다. (고향에 대한 시 중에서는 어떤 작품 오늘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망향에 그림자
망향 짙은 하얀 그림자 가슴깊이 뿌리 내리면 불기둥 물기둥으로 솟구치고
옥피리 홀로 부는 서글픈 인생 북녘 가는 흰구름아 인정 남아 잇거든 불타는 이내 가슴 실어다 주려무나
손: 나이가 드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요. 옛날에는 대가족 제도니까. 사촌들 다 같이 살았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어요. 인정도 있고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손지언씨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아마도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척들이 생각나나 봅니다.)
손씨가 고향을 떠난 것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한 것이 화가 되어 짐을 싸야만 했다고 합니다.
손: 삼촌이 서울에서 대학 교수라고 자랑을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너 민청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네가 늘 남쪽 얘기를 해서 네 이름이 올랐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한테 얘기를 해서 우리가 여기서 더 살 수가 없다고 해서 남하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손: (그 당시에 민청이 그렇게 무서웠나요?) 그럼요. 왜냐면 그때 신의주 학생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 소요가 일어나니까 김일성 장군이 오셨어요. 우리 학교에 와서 우리를 모아놓고 연설을 했어요. 저도 들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그 얘기를 듣고 홀딱 반했어요. 말씀도 좋고 인물도 좋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 후에 20개 정강을 제정하고 민청을 조직해서 각 학교에 민청 인원을 배치해서 우리들의 동태를 보고한 것 이예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하나 있던 남동생은 병으로 죽고. 그동안 의지해 오던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떠나 어머니와 단둘이 남쪽에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부산. 생활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모전 여전이라는 말이 있던가요? 어머니가 딸 하나 잘 키우기 위해 평생을 혼자 사셨듯이, 손씨도 3남 1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아들 셋은 유명한 회사의 엔지니어 기술자로 딸은 화학약품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며 자식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손: 만족해요. 손주들도 머리가 좋아서 다 잘되고..
영변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미국으로 사는 곳은 달라졌지만. 손지언씨의 소망은 여전히 하나입니다. 죽기 전에 고향땅에 한번 가보는 것 그 소망이 하루하루 강해집니다.
손: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어려운 일도 많지만 사필귀정이니까 마음 굳게 잡수시고 언젠가는 평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50-60년 전에 생명을 내놓고 38선을 넘어 왔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미국 땅에 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땅에 돌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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