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가는 길] 매년 어머님 생신날 옷 한 벌씩 산게 벌써 한 트렁크

안녕하세요. 고향가는 길에 정아름 입니다. 청각과 지체 장애, 가난이라는 3중고의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3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워싱턴-정아름 junga@rfa.org
2008.07.09
"제가 신체장애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학업을 마치고 사업을 해 돈을 번 것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모은 재산은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바로 자신의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일구어낸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기로 한 건설 회사 한맥도시개발의 회장인 류시문 인데요.

류 씨는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써 달라"며 지난 달 모금회에 2억원을 기탁했습니다. 또 류회장은 장애인 시설과 무의탁 노인시설을 추진하기 위해서 사재 27억1400만원을 무상으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특히 류 회장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보호하는 사회복지사들을 격려하고 싶었다며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한번더 돌아 봐야 한다는 점을 우리 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30억원이 넘는 거금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로 한 류 씨는 요즘도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외식은 라면같은 싼 음식만 먹는 등 검소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서 또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류 씨는 "아내와 아들을 설득해 앞으로 모든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은 탈북자 장진숙 씨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소개해 드립니다.

어머님!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뵈온지도 20여년 세월이 다 되어 옵니다. 앞머리에 흰서리가 내리시고 눈가에는 잔주름이 곱게 피웠던 아련한 그 모습은 지금도 저의 가슴 속 깊은 곳에 고이 간직돼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속에 새겨지는 연륜과 더불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몇배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얼마 안되는 아버지의 월급으로서는 온 가족의 생활비도 겨우 되는데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저희 5남매를 일류대학에 보내시고 가정의 큰 부담을 억척같이 지고 살아오시면서 언제나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어머님, 어머님의 큰 수고를 철없는 그 시절에 우리는 다 몰랐습니다.

제가 커서 어른이 되고 학부형이 되면서 그 은혜를 알게 되었고, 쭉 보답하리라 굳게 결심햇는데 변변한 효도 한 번 못하고 오늘은 또 이렇게 제 나라 제 땅에서 조차 어머님을 찾아 뵙지 못하게 됐습니다.

외국 유학길에서 전 세계를 알고 더 큰 포부를 실현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자기탯줄이 묻힌 북한이 아닌 한국행을 택한 저의 큰 아들 때문에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던 해 마지막 날 혈육한점 없는 이 나라로 떠나 오던 날. 저는 지금도 악몽 처럼 떠올라 몸서리 합니다.

언제나 조용하시고 인자하시던 어머님께서 자신이 오랜 노동당원임도 망각한채 야밤에 우리들을 짐짝 처럼 자동차 안에 몰아넣는 보위원들을 향해 ‘여보시오 우리 딸애 한테 무슨 잘못이 있소? 우리는 손주를 노동당 앞에 맡기었소. 당신들이 어떻게 관리 했기에 그 애를 놓치고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애들에게 이렇게 엄벌을 내리오? 밖에서 아우성 치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지 않소.” 하시면서 어머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셨지만 그 기상이 너무나 무서워서 보위원들도 더는 말을 못하였지요?

그러나 자동차는 짐과 사람을 마구 싣고 떠났지요 온 세상이 암흑이었고 앞날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미련도없이 식물인간 마냥 들추는 자동차의 진동수에 몸을 맞기면서 끝없이 달려 00 해 섣달 아침에 목적지에 당도했습니다.

어머니, 여기서는 매년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고 자식들이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립니다. 저도 제 자식들한테서 부모 대접을 받는데 저는 어머님께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불효하고 있으니 참말로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서 매일 천원 이상씩 어머님 앞으로 저축을 하는데 벌써 그 돈이 450 만원이 되어옵니다. 미국 돈으로 말하면 거의 5000달러에 달하는데 아마도 북한에서 생각해 보면 천문학적 숫자에 놀라실겁니다.

그리고 어머님의 생신날인 매해 5월 2일에는 제일 멋있는 옷 1벌씩 장만했는데 벌써 한 트렁크가 차옵니다. 저희 애들이 저보고 어머니 그러다가 할머님을 못 만나면 …하고 말을 흐리면 전 그때 그러면 이 엄마가 하늘나라에 갈때 다 가지고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꼭 입혀볼 것이다 하고 하여 온 가족이 웃음 반 울음 반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어머님은 늙어서도 안되시고 더욱 약해지시면 안됩니다. 저 역시 어머님과의 상봉에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하고 만날수 잇을 것입니다. 부디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서울에서 맏딸 숙이 드립니다.

네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이곳까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족과 생이별을 했어야 하는 슬픔을 안고 있지만, 또 자유와 더 큰 행복을 찾아 남한 땅에 와서 적응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탈북자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렇게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자신의 정착 경험을 통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의 창업과 취업을 돕는 취지의 '자활' 경제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김대성씨를 비롯한 탈북자 40여명이 모여서 탈북자의 창업.취업 지원단체인 '고려북방경제연합회'의를 창립 한 것인데요. 연합회의 김대성 회장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보다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창업.취업을 체계적으로 돕는 컨설팅 활동, 창업 아이템 발굴, 금융권과 연계한 창업자금 지원, 경영 자문과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직접 설립해 운영중인 기업은 40여개로 여행사, 세탁소, 외식업, 피부미용점 등 서비스 업종이 19개로 가장 많앗고 식품, 출판, 수산, 가구, 전자, 건축자재 등의 제조업 14개, 인터넷방송, 대북소식지 등의 문예가 4개, 한의원, 침술원 등 의료원이 3개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고향가는 길 오늘은 여기 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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