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김일성 사망 29년…과장·왜곡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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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7월 8일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2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 주민들께서 알고 계신 것과는 달리 김일성 주석의 신화나 평가 등은 사실이 아니거나 상당히 과장, 왜곡된 부분이 많은데요. 오늘은 고영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이 김일성 주석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 잡아드리겠습니다.

목용재: 이제 날이 밝으면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29주년이 됩니다. 먼저 김일성 주석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영환: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국 광복의 위업을 실현한 장군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입니다. 1945년 8월에 북한 지역으로 진출하여 북한을 일제로부터 해방한 소련군 25군 정치위원 '레베데프' 소장은 1945년 9월 김일성이 소련군 수송선 '뿌가쵸브'호를 타고 비밀리에 입북했으며 해방 당시 조선인들의 항일영웅 '김일성'에 대한 기대감을 이용해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둔갑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소련군 25군 정치부는 해방 초기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의 지도자로 조선건국준비위원장이었던 조만식 선생을 선택했으나 그가 신탁통치를 반대하자 다른 인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의 기록들과 역사적 증언들에 의하면 스탈린은 1945년 9월에 모스크바로 김일성을 불러들여 면담한 후 그를 북한 지도자로 지명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의 영도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끝나고 독립 국가 건설 위업이 실현됐다고 주장하는데요. 그러나 북한 지역은 소련군 25군이 해방시켰고 김일성의 권력은 소련 군의 괴뢰 정권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토지개혁법령 등 개혁 법령들과 헌법 초안들도 소련군 군사정치 고문들이 작성했습니다. 김일성 자신도 1945년 10월 '서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 회의'에서 "소련이 조선을 해방시켜 주었다"고 연설한 바 있습니다.

목용재: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서도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하던데, 이 내용도 말씀해 주시죠.

고영환: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혁명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조국을 광복한 영웅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항일운동은 '대해일적', 다시 말하면 큰 바다 한가운데 물 한방울과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만주지역에는 항일운동의 가장 큰 줄기로 동북항일연군과 대한독립군이 있었고 조선의용군, 조선인 의병부대 등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항일투쟁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주체사상 담당 비서는 김일성 빨치산 부대가 일제 관동군이나 만주국 괴뢰군에 맞서 싸운 정규 전투는 전무하였다며 "김일성은 만주에서 총질을 좀 하기는 했지만 크게 한 일은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에 더해 북한은 김일성이 1926년 10월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고 동 조직의 과업을 일제 타도 및 조선의 해방으로 밝혔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다릅니다. 김일성의 화성의숙 선배인, 김일성과 같은 학교를 다닌 이종락이 1930년 경에 조직한 반제국주의 운동 단체인 '길흑농민동맹'을 김일성은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김일성의 중학교 동창이며 해방 후 김일성의 비서를 지낸 김종항은 김일성은 당시 나이 15세로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북한은 1932년 4월 김일성이 중국 안도현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였다고 하고 있으나 중국의 동북항일연군사 등 중국과 구소련의 공식기록에는 이런 기록이 전혀 없으며 일본의 문헌과 자료에도 이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인솔한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일제의 전략적 요충지인 보천보를 1937년 6월 4일 습격하여 승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보천보는 일본 경찰 주재원 5명이 상주하고 있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중국 공산당 문헌에는 보천보 습격 사건을 동북항일연군이 주도하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유명한 일간지였던 동아일보는 보천보 전투에서 순사 2명이 사망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보천보 전투가 김일성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동명이인의 공적을 가로채기 위해 그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목용재: 김일성 주석의 부친 김형직에 대해서도 과장된 부분이 있죠? 김형직과 관련해 발견된 사료들이 있다는데, 이 내용도 소개해 주시죠.

고영환: 북한은 김형직이 1917년 3월에 반일 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고 '3.1인민봉기'를 주도한 반일 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김형직은 만주지역에서 무면허 동의사(한의사) 활동과 아편 장사를 병행하던 인물에 불과합니다. 한 때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낸 바 있는 강진건은 "김형직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모욕이며, 만주에 가서 무허가 의술과 아편장사를 통해 먹고 살았던 자"라고 증언했습니다. 일제 순사에게 잡힌 이유도 아편장사를 하다 잡혔다는 역사적 기록들이 중국과 일본 등에 현재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김형직이 만들었다는 '조선국민회'도 숭실학교 출신의 장일환이 조직한 반일운동단체라는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목용재: 김형직 외에 김일성 주석의 모친 강반석 등 외가에 대한 기록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기록도 다수 존재하는데, 위원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고영환: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친가와 외가의 선조들이 혁명가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의 외가는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김일성의 외증조부이자 조선그리스도연맹 초대 위원장을 지낸 강량욱, 외조부 강돈욱과 외삼촌 강진석 등 모두가 기독교 목사들이었습니다. 김일성의 모친 이름이 강반석이라는 이름도 예수의 한 제자였던 베드로를 한국말로 할 때 반석으로 부르는 데서 나온 이름입니다. 김일성의 외가가 북한이 그토록 증오하며 탄압하는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사실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1941년 2월 16 하바롭스크주 소련군 병영 내에서 출생하였다는 중국과 구소련의 공식 문서, 기록들이 무수하게 존재합니다. 2001년 7월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시 그를 동행한 러시아 극동 연방지구 대표 '콘스탄틴 코브스키'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름이 '유라'였으며 태어났던 동네가 보로쉴로브 근처 조그만 기차역이 있는 마을이었다고 기억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공산당 만주위원회 명의의 항일 운동사에는 김일성이 1940년 1월 21일 소련으로 넘어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전 동북항일연군 3로군 출신 이재덕 항일투사는 '김정일의 백두산 밀영 출생' 선전이 새까만 거짓이라고 하면서 "김정숙이 한 해 동안 하바로프스크에서 나와 함께 보냈는데 어떻게 백두산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습니다. 김정일은 생전에 가짜 고향집을 단 한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소련에서 태어난 것을 아는 김정일이 차마 백두 밀영을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목용재: 마지막으로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였다는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1930년 만주 길림성 장춘현 카륜에서 열린 '카륜회의'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한 사상 이론가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장대로라면 김일성이 18세 때 주체사상을 창시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중앙당 비서를 지냈던 황장엽 선생은 "1930년 18살이었던 김일성은 중학교 공부도 하지 못하였고 투쟁 경험도 없었다"며 "김일성이 주체사상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들어와서 이므로 1930년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창시하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사실 주체사상은 황장엽 전 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 재직 시절 당시 이론적으로 정식화한 것입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을 김일성이 창시한 것처럼 발표하였다고 자책했습니다.

목용재: 위원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김일성 주석과 관련한 북한의 선전 대부분이 거짓이었군요. 항일 무장 투쟁부터 시작해서 주체사상 창시까지 과연 실제 김일성 본인의 업적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탈북민들은 한국에서 북한 지도자들과 관련한 진실을 접한 뒤 충격에 빠진다고 하는데요. 북한 주민들도 하루빨리 이 같은 진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오늘도 고영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과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