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현의 북한 전망대] 핵에 밀린 식량 문제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탈북시인 장진성 씨의 시집제목입니다.
박봉현• 자유아시아방송 시니어 에디터
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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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인 1999년 어느 날 오후,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만 산다는 평양의 뒷골목에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와 어린 딸이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목에 종이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 종이엔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무리 속에서 지켜보던 인민군이 100원을 어머니에게 쥐여주고는 소녀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 했습니다. 100원을 받아 든 어머니는 황급히 밀가루빵을 사 들고 달려와, 낯선 이의 손에 딸려 가는 딸의 입에 넣어주고는 연거푸 용서를 빌었습니다.

시집에 생생하게 옮겨진 이 광경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먹을 게 없어 팔려간 소녀가 지금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 배를 곯지 않고 잘살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딸을 백 원에 판 사건’ 이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북한의 식량 사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유엔의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가 공동으로 지난해 북한의 8개 도의 53개 시, 군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는 주민 네 가구 중 세 가구에서 식량 섭취가 줄어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세계식량계획은 북한의 올해 곡물 생산량을 520만 톤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2천350만 북한주민의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주민 10명 중 서너 명이 먹을 게 부족해 100만 톤 이상의 식량을 구해와야 합니다. 사실 북한이 핵과 미사일개발에 쏟아부은 3억 달러면 1년간 식량부족분을 거뜬히 메울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 미국, 중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다양한 비정부기관의 지원으로 식량 부족분을 충당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로 대북 식량 지원이 녹록지 않습니다.

그나마 중국이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중국이 줄어드는 외부 지원을 고스란히 떠맡을지 의문입니다. 또 중국이 7월 1일부터 곡물 관세를 폐지해 북한의 식량 수급 사정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조치가 주민들의 쌀독을 가득 채우지는 못합니다.

북한 정부는 작금의 군사도발 행위를 국제사회의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려는 방편이라며 핏대를 세웁니다. 하지만, 진정한 체제위협 요소는 하루 세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주민들의 팽배한 불만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주민의 다수가 아침에 눈만 뜨면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사회가 과연 안정된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북한주민들은 솥에 밥을 짓기 위해 상당 부분 야시장에 의존합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으로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굶어 죽자 북한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야시장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야시장을 통해 북한 주민이 외부세계의 소식에 노출되자 요즘엔 야시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야시장에서 돈을 벌어 식량을 사던 주민들에겐 정부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북한 주민에게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가파른 등산길에서 만나는 옹달샘과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정부는 외부의 식량지원에 까다롭게 대합니다. 유엔의 세계식량계획과 아동기금(UNICEF)의 요원들이 지난 6월 양강도에서 쫓겨났습니다. 북한정부가 그렇게 지시했습니다.

양강도는 북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입니다. 영양실조가 만연해 저체중 어린이와 미숙아가 수두룩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북한정부는 특별한 설명도 없이 이들을 돕는 국제 봉사기구에 발길질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세계식량계획 사무소는 131개에서 57개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유엔기구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때 투명한 배분을 고려해 24시간 전에 감사하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북한이 식량을 다른 목적에 전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사전 통보기간을 1주일로 연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1주일 전에 통보하고 현장에 가면 이미 식량은 온데간데 없어 질 게 뻔합니다. 북한이 유엔기구의 감시를 피해 지원받은 식량을 마음대로 쓰겠다는 심산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북한은 올봄에 수만 톤의 곡물지원을 하겠다는 미국의 호의를 외면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미국에 맞서 자존심을 세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허기는 누가 어떻게 달래주겠습니까?

북한은 6월부터 8월까지 춘궁기입니다. 세계식량계획, 미국 국무부, 식량농업기구가 공동 조사해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이 기간에 식량수급은 적정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부도 배급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식량으로 추수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당 간부나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제 살 궁리를 미리 해놓았겠지만, 일반주민들은 무방비에 무대책입니다.

게다가 요즘 장마가 한반도를 내리치고 있습니다. 남한도 물난리를 겪지만, 민둥산 투성이의 북한이 입을 피해가 무척 염려됩니다. 철저히 대비를 하고 있다지만 장맛비가 소중한 논과 밭을 할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외부의 지원을 규제하고 봉사자들의 발목을 옭아매며 내부 개혁에 냉담한 북한정부의 식량정책이 얄궂기만 합니다. 주민이 배고파하고 굶어 죽는 상황이면 식량정책도 죽은 것입니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더는 이런 비참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코,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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