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편애’
2017.03.29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도발 편애’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북한이 조만간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것이란 전망이 점점 기정사실화 돼 가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광범위한 자료를 토대로 북한의 한달 내 도발 가능성을 50%로 점쳤습니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북한이 3월 18일에 이어 24일에도 탄도미사일 엔진 시험을 추가로 했다고 CNN방송에 말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4월엔 미 중 정상회담, 최고인민회의, 김일성 주석 생일, 인민군 창건일 등 굵직한 행사들이 포진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 북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도발’ 쪽에 힘을 보탰습니다.
도발의 효용 여부에 대해선 북한과 국제사회가 대척 점에 서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도발한다고 강변하지만, 국제사회는 제발 그만하라고 간곡하게 충고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올해 들어서만 세 번의 규탄성명을 내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소련 붕괴로 독립한 타지키스탄은 북한과 전통적 우호관계임에도 사상 처음으로 대북제재 이행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습니다.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법합니다.
미국 의회는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권고하며 인권강화 법안을 상정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김정은은 ‘구제불능, 전쟁광, 테러범’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기업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법 위반으로 제재명단에 올려 북한을 가일층 옥죄고 있습니다.
북한과 남다른 관계를 이어 온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중국 최대 항공사인 중국국제항공은 평양 행 노선을 전면 취소할 방침입니다. 러시아 국영항공사는 북한의 고려항공사와 제휴를 중단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싸늘한 대북 자세도 사실은 북한이 그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도발이 화근이란 지적입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징계는 정권을 겨냥하지만, 힘 없는 일반 주민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북제재는 국제 지원단체의 모금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결국 주민에 대한 지원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 등 취약계층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 열 명 중 네 명꼴로 영양부족 상태라는 유엔 보고서 내용은 김정은 정권의 도발이 촉발한 고통을 또렷하게 알려줍니다.
제재로 돈줄이 차단되고 외화벌이가 어려워지자 북한당국은 돈 되는 건 무엇이든 하려 합니다. 해외에, 주로 중국에 나가는 개인 여행자들에게 귀국 시 헌납할 물품을 강제할당 합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다음엔 아예 여행증을 발급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선량한 주민을 상대로 협박하고 갈취하는 동네 뒷골목 불량배처럼 행동합니다. 물품을 준비하지 못하면 현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돈은 뇌물 사슬을 타고 정권으로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각종 사회적 과제로 북한 주민들을 닦달합니다. 주민들은 거름 생산 등 새해 들어 이어지는 ‘전투’에서 받은 할당량을 채우려면 그렇지 않아도 가벼운 주머니가 더 홀쭉해진다며 적대감까지 드러냅니다. 상황이 이러니 북한 정권은 요즘 민심 결속의 필요성을 절감할 겁니다. 동서고금의 지도자들이 민심 이반을 막고 단합을 유도하는 데 애용한 책략은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적에게 강공책을 구사하는 겁니다. 북한정권은 한국과 미국, 제재에 동참한 국제사회를 적으로 상정하고, 도발을 방책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지적됩니다. 이처럼 북한의 도발은 한 바퀴 돌아 또 다른 도발로 귀결되는 모습입니다.
김정은이 얼마 전 한 주민의 공을 높이 칭찬하면서 그를 자신의 등에 업고 만면에 미소를 짓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그 주민은 농민도 아니고, 공장에서 생필품을 만드는 노동자, 장마당에서 온종일 장사하는 여성도 아닙니다. 미사일 개발을 진두 지휘한 국방과학 기술책임자입니다. 김정은의 ‘도발 편애’를 엿보게 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