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민간단체인 '프리미에 위장스'가 북한의 딱한 식량사정을 알고는 토끼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프리미에 위장스 측은 토끼가 북한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이 비슷한 중국에서 토끼를 사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프리미에 위장스 측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년 말까지 토끼의 번식력을 높이도록 선진 사육기술을 전수하고 필요한 장비도 보내기로 했습니다. 또 점진적으로 북한의 토끼사육사들이 중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도 제공할 계획입니다.
토끼와 북한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7년 2월 독일의 농부 카를 스즈몰린스키 씨가 기아에 허덕이던 북한 주민들의 소식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이 기르던 왕 토끼 12마리를 보내주었습니다. 독일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이 북한에 왕 토끼 농장을 짓고 싶다는 청을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독일 회색 자이언트'로 불리는 이 왕토끼는 길이 74cm, 무게가 10kg이나 됩니다. 귀길이만 25cm입니다. 보통 토끼의 세배나 되고 일반 개보다도 몸집이 큽니다. 47년간 농사 짓고 동물을 기른 스즈몰린스키 씨는 이 왕 토끼를 마리당 80유로(한화 약 9만 7천원)에 팔았습니다. 당시 시장가격이 250유로(약 30만 원)임을 고려하면 밑지는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스즈몰린스키 씨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돕겠다는 일념에서 이렇게 싼 값에 흔쾌히 토끼를 넘겼습니다. 왕 토끼는 워낙 덩치가 커서 한 마리면 7kg의 고기가 나와 8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번식력이 좋고 질병에도 강해 1년 후면 12마리가 60마리로 불어난다고 합니다.
왕 토끼 덕에 스즈몰린스키 씨는 독일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뉴욕의 줄리어스 오나 감독이 왕 토끼를 소재로 한 영상물을 제작해 2007년 11월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 국제영화제와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왕 토끼로 유명인사가 된 스즈몰린스키 씨는 북한에 토끼를 보내고나서 사육 상황을 돌아보고 조언을 해주려 현지답사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 주재한 북한대사관 측이 특별한 이유 없이 비자 발급을 지연했기 때문입니다. 토끼농장을 세우는 것을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라던 대사관 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스즈몰린스키 씨는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스즈몰린스키 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토끼를 북한에 보낸 후 얼마 안 있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잔치 이후 왕 토끼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스즈몰린스키 씨는 토끼들이 모두 생일 잔치용으로 쓰였다고 펄펄 뛰었습니다. 소중한 왕 토끼들을 고위간부들이 모두 먹어버렸다며 가슴을 쳤습니다.
북한과 토끼의 관계는 독일서 온 왕토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한정부는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가중되자 군부대, 공장, 학교, 기업은 물론 가정에서도 토끼를 기르도록 권장했습니다. 일명 '풀과 고기를 맞바꾸자'라는 운동이었습니다. 토끼에 풀을 먹여 고기를 얻자는 것이었습니다.
생산단위별 토끼사육에 관한 자료를 보면, 학교는 2천 마리, 리는 1만 마리, 군은 최대 6만 마리를 사육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권장이라기보다 의무사항이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토끼 사육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토끼는 북한에서 단고기로 불리는 개고기 요리에 이어 '제2의 단고기'로 대접받습니다. 토끼요리는 몸에 좋아 '토끼 보신탕'이라고도 합니다. 토끼는 북한에서 그저 먹을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학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기억하는 동시가 있습니다. 그 제목은 '엿듣는 토끼'입니다.
<엿듣는 토끼><br/> <br/>철이야 저기 봐<br/>두 귀 쫑긋 세우고<br/>토끼들이 엿듣는다 얘<br/> <br/>맛난 먹이 배합사료<br/>콩 콩 찧어서<br/>얼른얼른 자래우자<br/>너랑나랑 하는 얘기<br/> <br/>털옷 입은 토끼형제<br/>삼복더위 타지 않게<br/>공기창도 달아주자<br/>우리우리 하는 약속<br/> <br/>그래그래 우리 맘<br/>모두 알고서<br/>어서 훌쩍 빨리 크렴<br/>왕토끼가 어서 되렴. <br/>
2006년 7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아동문학’에 실린 이 동시엔 북한 주민들의 토끼사랑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귀를 쫑긋하고 뛰어노는 귀여운 토끼를 보면서 동심을 키워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토끼와 더불어 지내며 자연을 배우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산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 동시에서는 토끼에 의존해야만 하는 북한의 식량 사정도 묻어납니다. 빨리 왕토끼로 커 주길 바란다는 ‘엿듣는 토끼’의 시구에서 ‘배고픈 북한’이 드러납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시에까지 어두운 현실이 배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