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북송과 일본 방문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1.08
sinjuku_station-620.jpg 사진은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 신주쿠역 모습.
사진-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열차방송원의 남한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오늘은 일본 방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정진화 씨 일본에 다녀오셨다고요?

정진화: 네, 얼마전,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재일북송, 북한에서는 째포라고 하는데 일본에 살다가 북한으로 간 분들이 니카다항에서 출발한지 60주년 추모제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기자: 서울과 일본이 그리 멀지 않죠?

정진화 : 시차도 없고요. 인천공항에서 일본 나리타 공항까지는 2시간 40분 정도의 거리. 그러고보니 한반도 주변국가는 다 돌아본 셈이 됐습니다.

기자: 보통 그나라 땅에 도착한 입국장에서부터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데 어땠습니까?

정진화: 네,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는 입국심사 시간이 너무 길어서 거의 1시간을 줄을 서서 지루했는데 일본은 한국처럼 입국심사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인천공항이나 블라디보스톡 공항의 근무자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일본은 고령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세계에서 장수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일본이고 그래서 고령자들의 취업이 특별히 잘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습니다.

기자: 서울과 동경이 뭔가 좀 다르던가요.

정진화: 네, 있습니다.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는데요. 저희가 서울에 살다보면 다른 지방보다 자동차, 버스, 택시, 거기다 트럭까지 매일 교통혼잡을 경험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에 가서 동경시내로 가기위해 기차를 타고 또 숙소로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거리가 너무 한산한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동경에 온 것이 아니고 시골에 왔나 해서 동행한 일본인에게 물어보니 일본사람들은 출퇴근시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지하철이 대중화 되어있고 지하철만 이용해도 회사나 기타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겁니다.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일행도 계속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그야말로 거미줄 같은 지하철 노선 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몇개 역을 지나쳐 두세 개 노선이 교차하는 서울 지하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 역마다 수십개의 출구와 여러 개의 노선이 교차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기자: 인구는 많은데 이분들이 지하철로 이동을 하고 지상에는 보행자만 보이고 차들은 별로 없었단 말이죠?

정진화: 네, 지하에 들어가보면 서울은 여의나루 역이 좀 깊고 거의 내려가지 않는데 일본은 평양 지하철 처럼 굉장히 깊었어요.

기자: 생활은 지상에서 하고 이동은 지하로 하고 그렇네요.

정진화: 네, 정말 신기했습니다.

기자: 이번에 일본방문이 북송교포 60주년 추모제 때문에 갔다고 했잖습니까?

정진화: 일본에 살다가 북한으로 북송 된 재일교포 1세분들 여러 명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동경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장장 7시간을 달려 니카다항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바로 1959년 첫 북송선이 떠난 곳이라고 합니다. 당시 일본정부와 북한당국의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아 두 나라의 적십자가 이 일을 주선했다고 하는데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던 북한의 현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서 고국을 그리다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추모제를 위해 일본에 갔었습니다.

기자: 탈북자 중 한국에 정착한 분도 있지만 일본으로 돌아가 사시는 분이 얼마나 되나요?

정진화: 200여명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탈북자 입국 수는 집계를 하는데 재일교포는 따로 집계를 안하고 있는데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 분들은 단체도 있고 일본정부도 집계를 하고 있는가 봅니다.

기자: 그분들에게는 한국정부처럼 정착금을 준다든지 하는 제도적 정부지원을 받고 있습니까?

정진화: 전혀 없습니다. 사회보장 제도로 돈이 좀 나오는데 그것으로 월세를 내고 사는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령자도 원하면 취업이 잘되니까 이번에 저희 행사에 참여한 분도 70세가 넘은 분이었는데 전혀 사는데 불편함이 없고 북한보다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기자: 많은 분들이 어떻게 북송사업이 진행됐는지 잘 모르시거든요.

정진화: 일본하고 한국의 제주도가 가깝잖아요. 북한 역사를 봐도 김정은의 엄마 고영희도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고영희도 재일북송 교포고요. 제주도에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1945년에 일제가 패망을 했는데 경상도나 제주도 일본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분들이 강제징용이나 일이 있어서 일본에 갔던 분들이 해방이 되고는 일본정부에 강력히 뭔가 요구하고 집회도 하고 단체결성도 하고 해서 일본 정부의 골치꺼리가 됐었나 봐요. 그래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게 광복이 됐으니 송환을 요구했지만 당시 한국이 전쟁도 금방 끝나고 모든 것이 자리가 안잡히고 해서 들은척만척 외면을 했다나 봐요. 그런데 김일성이 수용을 했다는 거죠. 당시 북한과 일본이 수교가 안돼있어서 정부차원에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어서 두나라 적십자에서 주도해서 1959년 시작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북한에 굉장히 좋다. 이랬는데 대부분 북한에 끌려간 재일북송 교포들의 고향이 제주도 경상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분들이 가고 싶어했던 곳은 한국이었는데 한국정부에서 외면을 해서 북한을 통해 고향까지 갈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으로 갔는데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한 분도 많고 이번에 저희가 함께간 분들은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한 분들이 동행을 했습니다.

기자: 청취자 여러분에게 인사말 하면서 마무리를 해주시죠.

정진화: 지난번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만주에서 이주해서 러시아에 자리잡았다가 시베리아로 강제추방 된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를 들었는데 이번 일본에서는 재일북송 교포들의 한 맺힌 절규를 들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고 일본과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우리민족, 지금도 그 어디선가 고향을 그릴 사람들에게 새해엔 즐겁고 행복한 소식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북열차 방송원의 남한이야기. 오늘은 최근 다녀온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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