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양성원입니다.
양성원: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양성원: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8월 9일자 노동신문에 게재된 "주체의 기치높이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안아오신 절세의 위인" 제하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1945년 8.15해방이 김일성에 의해 이룩된 양 날조했습니다. 이어 "78년전 8월 9일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전체 지휘관, 병사들에게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 명령과 더불어 삼천리강산에 해방만세의 함성이 터져오른 8월 15일이 밝아오지 않았던가"라고 써, 김일성이 대일전쟁에서 지휘관으로 참전이나 한 듯이 조작했습니다. 또 "지금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저 멀리 화전에서 'ㅌㄷ'의 결성을 선포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고 역사적인 카륜회의장에 마음을 세워보면 주체의 넋으로 일관된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히시던, 우리 수령님의 열정에 넘치시던 모습이 선히 어려온다"며 그 의 항일활동을 계속 날조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인 조국광복회도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전하는 한편 "절세위인을 높이 모시여 주체의 기치는 위대한 김정은 시대의 상징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며 독재권력세습을 정당화하고 나섰습니다.
양 성원: 이번 기사는, 김일성이 '8.15해방'에 직접 기여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국해방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의해 이룩된 것처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기사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마련하심으로써 일제에게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자주로 존엄 높은 우리 조국의 역사에 찬연한 빛을 뿌리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리신 총공격명령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일제침략군을 격멸소탕하며 조국으로, 조국으로 진격하였다"고 새빨간 거짓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공격과 적극적인 전민항쟁에 의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일제는 마침내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였다"고 적어, 역사적 사실까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조작했습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추축국인 이탈리아가 1943년 9월 8일 항복한 데 이어 독일이 1945년 5월 7일에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패전이 짙어진 상황에서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차례로 투하됨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김일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양성원: 이번 기사는 김일성이 "1945년 8월 9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에 항일전의 최후승리를 위한 총공격명령"을 하달했다는 점을 두 차례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8.9 총공격'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1945년 8.15일을 전후로 한 김일성의 행적은 구(舊)소련과 당시 중국 공산당, 일본측 자료에 의해 낱낱이 밝혀져 있습니다. 김일성은 1930년대 후반 만주지역에서 중국의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1940년 10월 일본의 소탕작전을 피해 소련으로 도주했습니다. 그후 1942년부터 1945년 9월 19일 조선공작단 일원으로 원산항을 통해 입국하기 전까지 소련 극동지역의 제88국제여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계급은 대위였습니다. 제88국제여단은 전투부대가 아니고 정찰부대였습니다. 따라서 김일성이 1945년 8월 9일에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전체 지휘관, 병사들에게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의 전투명령을 하달했다는 주장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거짓말입니다. 1945년 8월 9일은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한 날입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1934년에 만주에서 만들었다는 '조선인민혁명군'도 실존사실이 없는 날조된 조직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국측에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양성원: 이번 기사는 우리민족 전체의 항일투쟁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 채,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우리민족 항일운동'의 전부인 양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침소봉대하여 선전하는 이유와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김일성은 1950년대와 60년대 권력장악과정에서 정적 제거와 상대정파를 공격할 때마다 '빨치산투쟁' 경력을 '비장의 무기'로 앞세웠습니다. 심지어 그의 빨치산투쟁을 '혁명전통'으로 확립하고 '통치사상'으로 격상시켰으며, '빨치산방식'이라는 '일본새'를 만들어 당과 국가운용, 인민들의 근로와 생활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김정은은 혁명전통을 5대교양의 첫 자리에 놓고 인민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사상교양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일성의 빨치산투쟁은 북한체제의 뿌리이고 기둥이며 존재와 정당성의 핵심 근거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78년 동안 '김일성의 빨치산투쟁' 위에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지금은 김일성의 빨치산투쟁을 언급하지 않고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굳어졌습니다. 이것이 끊임없이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부각시키고 새롭게 조작하여 재생산해야만 하는 이유이고 배경인 것입니다. 하지만 '김일성 항일투쟁신화'는 사상누각과 같아서 곧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양성원: 이번 기사는 김일성이 "혁명의 길에 나선 첫 시기에 벌써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을 개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주체의 심원한 원리"를 밝혔다고 썼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선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에서 주체라는 용어가 처음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입니다.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는 1960년대에 사상과 이론, 방법 면에서 진전되었고 1970년대에 체계화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의 시원을 일제시대로 소급하고 북한 이데올로기들이 외부의 잡다한 사상들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주체사상을 학문적 배경도 없는 김일성이 10대의 나이에 제시했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선전만 난무할 뿐 김일성의 주체사상 창시를 입증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서 주민들은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양성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