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 수 있는 직업을 원해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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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만큼 어떤 직업을 갖게 되는가는 중요한데요. 오늘은 30대 중반의 남한생활 8년차 윤정희(가명)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윤정희: 노력하는만큼 내가 얻고 내가 가지고 인정받고…솔직히 피땀을 흘려야 되죠. 공짜로 오는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윤 씨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그리고 행복해지려면 가만히 차려지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쟁취하라고 말합니다. 탈북해 중국에서는 텔레비젼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환상을 가졌지만 살아보니 만만치 않았던 겁니다.

윤정희: 좋은 면으로만 봤던 것이고 한국에 오면 그냥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 노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국 생활은 북한과 달라요. 북한에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도 못받고 남는 것이 없잖아요. 중국에서는 그나마 내가 하는만큼 벌 수는 있었겠지만 한국은 정말 내가 노력하는 것만큼 얻어갈 수 있고 배움의 기회도 많고요. 저희는 아무것도 없이 한국에서 빈손으로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공부하고 싶으면 그런 조건이 다 돼있잖아요. 시간만 투자 하고 내가 노력하고 내가 안놀고 덜자고 하면 돈도 공부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 1997년 겨울 탈북했던 윤씨가 남한생활을 시작했던 것은 그의 나이 27살 때 입니다. 하고 실은 것은 많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일부터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단순노동 일만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학력이 필요했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진학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남한생활에서 오는 성취감을 느낄 때 즈음해 탈이 나고 맙니다.

윤정희: 갑자기 막 계속 피곤하고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감기가 오더라고요. 자주 병원에 갔는데 면역이 떨어졌다고 하고 열도 자주 나고요. 여름이면 방학 계속 거의 두 달 내내 감기에 시달리다가 개학하면 공부하고 이런 식으로…내가 적응을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열심히 살면 되겠다 했는데 아프기 시작하더라고요.

대학 진학을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고 대학에 가서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위해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칠 때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무너졌던 겁니다.

윤정희: 솔직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치룰 때면 다른 아이들 보다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나이도 있고 워낙 공부를 안하고 살아왔으니까요. 시험을 치고 나면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심지어 약간 울렁거리는 증세가 있었어요. 주변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 머리 아픈 것까지는 괜찮은데 울렁거리는 증상이 있으면 안좋다고 해서 겁이 나서 병원에 가봤죠. 의사가 일을 스트레스를 많은 일을 하는가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을 하는가 물어서 일은 안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면서 머리 근육통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학점에 너무 신경을 쓴 경향이 있거든요. 점수도 여기서는 60점만 넘으면 되는데 저는 굳이 60점일 것이면 100점을 맞지 왜 60점을 맞냐 이런 것이 있어서 성적에 많이 신경을 쓰다보니까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기자: 머리 근육통이라고요?

윤정희: 저도 처음 들었어요. 머리에도 근육통이 오나요 했더니 우리 몸에는 모든 부위에 근육이 있는데 안쓰던 머리 근육을 쓰니까 근육이 놀라서 통증이 오는데 울렁거릴 정도면 심하게 자극을 줘서 그런 것이니 크게 문제는 없다면서 쉬면서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난생 처음 머리 근육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윤 씨는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는 쉬는 동안 그냥 집에서 휴식을 취한 것은 아닙니다. 전공은 중국어 통역이지만 오빠가 하는 보험일을 했는데요. 자격증 시험을 보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일을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윤정희: 메르츠화재라고 그냥 일반 실손의료비하고 일반질병, 상해 이런 쪽으로 집에 화재보험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고 있어요.

기자: 통번역 관련된 일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윤정희: 복학해서 학업을 마치기 전에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중국도 한번씩 왔다갔다 하면서 그런 쪽으로 경력을 쌓으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시청에 등록을 해놌고 있으면 지역에서 통번역 자원봉사가 필요할 때 연결을 시켜 준다고 알고 있어요. 아직 졸업한 것도 아니니까 앞으로 알아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14년을 살다가 탈북했고 중국에서는 13년 그리고 남한에서 8년을 살았습니다. 북한에선 배가 고팠고 중국에선 불안했고 남한에서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생활환경에 따라 맞춰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윤정희: 중국에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웃었으니까 인상이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국에 왔을 때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을 들었어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까칠하고 싸가지 없고 잘난척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웠구나 불안정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처음에는 돈을 쫓아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 삶을 생각해요. 한국에 왔으니까 공부도 하고 몸이 안좋아 휴학을 했지만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복학할 수도 있고요. 일단 그런 부분이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하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긍정적이고 좀 마음이 느긋해지고 부드러워진 것같아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정하기 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좀더 지켜볼 계획입니다.

윤정희: 솔직히 너는 학교 들어갈 때부터 희망사항이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서 일은 못하겠더라고요. 잠깐 도청에서 일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제 전공이 통번역을 살려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일하는 것이면 좋겠어요. 대학 입학때는 꿈도 크고 했지만 학교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졸업을 했으니 좋은 직업을 얻겠다 이런 생각은 접었어요. 내가 사장이라 해도 젊고 능력있는 아이들을 뽑고 싶지 해서 너무 욕심 부리기 보다는 돼면 좋고 안돼도 실망하지 말자 생각해요. 그래도 노력은 할거예요. 한국에서는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다못해 관광 가이드를 해도 되고 보험일도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좋은 상품을 찾아 도움도 줄 수 있고요. 한국에서는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일단 욕심 안부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윤 씨.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은 출신성분이나 토대가 아니라 내 노력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윤정희: 진짜 내가 돈만 따지지 않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도 중요하지만 돈을 위해 직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윤정희(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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