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취직하고 결혼식도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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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의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광주 북구의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살면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한걸음 두걸음 그에 다가서는 느낌은 무척 설레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걸어온 뒤를 돌아보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요. 이제 준비를 했으니 취직도 하고 결혼식도 올리고 싶다는 여성이 있습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지윤아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지윤아: 북한에 있을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봄에 제일 힘들었거든요. 먹고 사는 데 신경 쓰느라고요. 그런데 여기는 8년째 그런 것을 못 느끼고 있어서 그냥 좋아요.

남한 광주는 벚꽃이 세상을 물들었고 이맘때 고향마을에는 진한 분홍색의 진달래꽃이 한창일 거라며 남한에서의 8년을 세월을 회상하는 지윤아 씨. 청진에서 태어났지만 1998년 탈북전까지 살았던 곳은 시내가 아니었습니다.

지윤아: 제가 살던 고향은 집문 밖을 나서면 모두 산이었어요. 8년 전에 남한에 왔을 때는 너무 앞이 안보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남한환경도 모르고 남한이 잘산다는 말만 듣고 와서 좋았는데 내 인생을  놓고 보니 막막했죠. 아무리 가족이 여기 있다고 한들 남한에 대해 말만 해주지 먹고 사는 것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한해 두해 살다보니까 남한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처음엔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막연하게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나이가 어렸다면 공부를 했겠지만 나이 31살에 시작한 남한생활 자기 앞가림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죠.

지윤아: 첫발 내딛어서 한 것이 언니를 따라 다닌 겁니다. 언니가 안보강사였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회사나 경찰청 등 언니 가는 곳을 따라 다니면서 제가 느끼고 배웠던 것같아요. 그 시기가 지나고는 컴퓨터 학원을 6개월 다녔어요. 자격증 따고는 알바를 한동안 했어요. 취직도 할 수 있었는데 다음해 3월부터 대학입학을 결심했거든요. 그래서 대학 다니기 전까지 알바를 했는데…

남한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가볍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부딪치는 일이 어디 한두가지겠습니까? 하물며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간 사람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자주 당황하게 됩니다.

지윤아: 예를 들어서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어느날 손님이 저한테 냅킨을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냅킨이 음식인줄 알고 메뉴를 계속 봤는데 냅킨이란 글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손님한테 저희는 냅킨이 없어요 했더니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왜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몰라요? 그런데 그게 솔직히 한국말이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다른 직원을 불러서 냅킨을 달라고 했는데 그 직원이 네, 하고는 화장지를 가져다 주더라고요. 저는 그때 식당에서 쓰는 냅킨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거든요. 솔직히 저는 1998년에 탈북해서 북한에 있을 때 그런 것을 못 봤어요. 그래서 저는 그게 북한말로 그게 뭔지 몰라요.

식당에서 손님이 위생종이를 찾았는데 그것을 남한사람들은 냅킨이라고 부르는 것을 몰라서 혼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윤아 씨는 아무래도 좀 배워야 겠다고 결심하고 중국어 학과에 입학 합니다.

지윤아: 마음이 너무 들떴어요. 나도 대학을 다닐 수 있구나 그런 마음에요. 그런데 입학해서 다녀보니까 다들 나이가 어리더라고요. 그래서 좀 챙피했어요. 학과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내 나이를 말하는 것이 너무 챙피했거든요. 그리고 애들이 나를 보면 너무 어려워 하는 거예요. 제가 그때 32살이었거든요. 나이차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겟지만 자기들끼리만 놀고 하는 것이 나도 그 사이에 끼어 뭐도 물어보고 했으면 좋겠는데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4년을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했을 땐 나이가 37살이었는데요. 졸업후 바로 취업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지윤아: 딱히 중국어로 광주에서 뭘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도 있었거든요. 아이가 엄청 어렸거든요. 내가 물어보니까 서울이나 제주도 가서 통역도 하고 하는데 관광객이 오니까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는데 저한테는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포기하고 1년동안 식당에서 알바를 했어요.  다니면서 계속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을 하려고 신문을 봤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많이 찾는 것이  간호조무사더라고요.

통역일에서 간호조무사가 되기로 하고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는 1년 과정의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녔습니다. 이제 평생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있는데요. 계획한대로 현실에서 잘 되진 않았지만 전혀 불만은 없답니다.

지윤아: 완전히 안정됐다고는 말하기 뭣하지만 100 퍼센트에서 90퍼센트 정도는 된 것 같아요.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갈팡질팡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분들을 보면 나는 많이 적응됐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대학도 졸업하고 간호조무사 학원도 1년 다니면서 한국사람을 대할 때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북한식으로 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북한에서는 나는 이런 것이 마음에 안든다. 막 싫다 바로 거절하고 명령식으로 하고 하는데 금방 온 탈북민을 보면 대화법이 완전히 제가 북한에서 했던 대화법이거든요.

탈북과 중국에서의 강제북송 그리고 재탈북에 이은 남한행. 결코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내일은 더 행복할꺼야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답니다.

지윤아: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은 여기선 먹을 걱정이 없잖아요. 두 번째로는 제가 배우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잖아요. 대학도 여기서는 갈 수 있고 졸업도 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에 진짜 잘왔구나. 북한에서 살던 집은 천장에서 쥐들어 너무 뛰어다니고 밤에 잘 때 구멍으로 쥐가 떨어지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깨끗한 아파트에서 따뜻하게 지낸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아요. 올해 목표는 첫째로 취직이예요. 취직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다 좋은 병원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고 두 번째는 남편이 있지만 아직 결혼식을 못 올렸는데 식을 올리는 것이 목표예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지윤아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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