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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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한 많은 수의 탈북자가 북한에서는 출신성분 즉 토대가 좋지 않아 가지 못한 대학에 진학해 공부합니다. 또 이들 중에는 거의 환갑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4년차인 탈북여성 이설영(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올해 59살인 이설영 씨는 2009년 탈북해 중국을 경유 바로 남한에 갔습니다.

이설영: 우리가 여기 와서 열심히 사는 것밖에 더 있어요?...

이 씨는 2000년대 초 먼저 탈북해 남한에 간 동생을 통해 전화로 남쪽에 대한 소식을 듣고 방조(도움)도 받았지만 자식들 생각에 남한으로 오라는 동생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그때 빨리 결심 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설영: 고난의 행군시절 어머니 아버지 동생 조카 집안에서 4명이 굶어죽은 참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생각 했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것도 그렇지만 사랑하는 남동생이 살려달라고 내게 애원하면서 사망했을 때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자다가도 그때를 생각하면 벌떡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며 원통해합니다. 그 전에라도 깨우쳤다면 동생을 살릴 수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산 것이 억울하고 여기 와서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라고 얘기를 하죠.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까지는 혼자 탈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가족동반이 늘게 되고 먼저 남한으로 간 가족이 선을 대서 중국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남한으로 가는 사람이 늘게 됩니다. 이 씨도 그런 경우입니다.

중국 생활을 거친 탈북자들은 비록 신분이 보장되지 않아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긴 하지만 중국에서는 돈을 벌고 개인 소유가 의미하는 것이 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씨처럼 북한에서 제3국에서의 생활 없이 바로 남한으로 간 사람들은 처음 경험하는 진정한 자유가 뭔지를 실감하고 놀라게 됩니다.

이설영: 한국은 자기가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잖아요.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뭐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북한에 있을 때 여성은 여맹조직, 어린 학생은 소년단 조직, 사로청 조직, 당원은 당조직 등 틀어박힌 조직생활을 하니까 어딜 가려면 조직에 보고를 하고 가야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서울에 가고 싶으면 서울 가고 광주 가고 싶으면 광주에 가고 인간이 누리고 싶어 하는 삶이 있잖아요. 자기 인생을 즐기며 사는 재밌는 생활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하루하루 생계유지를 하면서 살고 생활이 괜찮다고 해도 그 어떤 두려움을 갖고 살았지만 남한에 가서는 아무 근심 걱정이 없기 때문에 매일 웃으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이설영: 저는 첫째 여기 와서 돈을 버는 것과 노력하는 만큼 나에게 차려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내 나이에 대학공부를 한다는 것이 좋죠. 북한에선 토대가 좋아야 대학을 가는데 여기는 돈이 있고 자기 능력이 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공부를 할 수 있잖아요. 내가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이유는 나이를 먹고 앞으로 불쌍한 노인, 장애인들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을 했습니다. 여기서 봉사단도 조직하고 활동을 많이 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제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하겠다 하는 꿈도 생겼고요.

기자: 돈 버는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어떤 일을 해보셨나요?

이설영: 처음에 와서는 병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는 간병인을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돌면서 일을 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아이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서 간병인, 요양보호사, 식당일, 모텔 청소도 해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많이 벌까 해서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돈을 벌고 싶어도 못 벌었는데 여기선 청소를 해도 돈을 벌잖아요. 일감이 많은 겁니다.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이설영 씨는 딸과 함께 탈북해 남한에 갔는데 딸이 남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이설영: 어제 함이 왔습니다.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는데 여긴 함을 보내더군요. 어제 사위랑 왔기에 행복하게 잘 살아라 둘이서 똘똘 뭉쳐서 행복하게 살면서 어머니 아버지 소원을 풀어주어라 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남한에서는 결혼하기 전 신랑 집에서 결혼을 승낙한다는 의미로 신랑의 생년월일을 적어 보내는 사주지와 함께 귀한 따님을 며느리로 보내주셔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신부 집에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 그 것을 받아 신부 측에서 결혼날짜를 택일하는 겁니다. 그 함에는 이런 편지 외에도 신랑 집에서 신부에게 보내는 패물이 들어 있습니다.

이설영: 금반지 쌍가락지, 목걸이 보석반지를 가져왔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서 사부인에게 부족한 딸을 받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좋은 사람 만나 딸을 시집보냈으니 이설영 씨는 자신을 위한 인생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번 자신도 멋지게 살아보자고 계획합니다.

이설영: 나이도 있고 하니까 어디 가서 큰일은 못하지만 웃음치료 레크리에이션, 노인건강지도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또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웃음치료사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사로 일하려고 맘먹고 있습니다. 더 많은 연수를 하고 노력해서 죽을 때까지 웃음치료사로 꿈을 실현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설영(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