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자유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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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사회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부터 여러 종교를 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등이 있는데요. 심리적 안정을 위해 종교생활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오늘은 천주교 신자가 된 탈북여성 박 마리아(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박마리아: 경계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잘해주니까요. 사람 믿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처음 집을 받아서 지역사회에 배정을 받았을 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지 정말 앞이 캄캄해지죠. 뭘 알아야 할 텐데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더 답답해집니다. 그런데 박 씨에게는 하나원에서 천주교를 믿는 분들이 연락을 하라고 전화번호를 준 것이 있어 전화를 했던 겁니다. 도와달라고요. 그런데 너무 잘해주니 오히려 겁이 나더라는 겁니다.

박마리아: 아침에 출근했다가 와서는 같이 운동 나가자고 해주고 버스탈줄 아는가? 해서 모른다고 하니까 저를 위해 다 알려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일주일 있다가 일을 해야 되겠다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1950년도에 피난 나와서 성공한 영양탕집을 소개해준 겁니다. 그래서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했어요. 일하니까 걱정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개고기를 좋아하는데 끼니마다 주는 거예요. 월급은 월급대로 주고요.

이렇게 잘해주지만 경계심을 풀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도와준 분의 집에 가서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자신의 처지보다 나을 것이 없었던 형편에서 도움을 준 것이 오해를 풀게 했던 겁니다.

박마리아: 진짜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이었어요. 뼈에 가죽만 있었어요. 저런 분을 병간호하면서 나를 위해 밤을 세워주고 도와줬구나. 신랑 돌보면서도 절 챙겨준거예요. 너무 깜짝 놀라서 언니 난 이런 가정사가 있는 줄 몰랐어요. 간장, 된장, 이불 다 사줘서 난 언니가 잘 사는 줄 알았어요. 집에 가보니 한심했던 거예요. 내가 너무 놀라서 너무 감동 먹어서 언니 따라 천주교를 꼭 믿어야겠구나.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당장 필요한 것에 손이가게 마련이죠. 천주교를 믿겠다고 했는데 불교 쪽으로 눈이 가게 된 겁니다. 스님이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일하게 된 거죠.

박마리아: 요양원에 가니까 스님이 그날부터 기숙사에 묵으라고 하면서 실습이지만 오늘부터 돈을 지급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직원으로 일하게 된 겁니다. 실습가면 제일 힘든 일만 하는데 한국에 온지 두 달밖에 안됐다고 잘해주라고 해서 거기서 2년을 일한 겁니다.

요양원이란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돌보는 시설입니다. 주로 연세가 든 분들이 많습니다.

박마리아: 자식들이 돌보기 힘드니까 거기 있는데 한 200여명이 됐습니다. 두 명반 당 한 명이 돌봐드리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부터 밥까지 챙겨드리는 겁니다. 저는 주간 일을 했는데 아침 9시에 어르신을 모시러 가서 쭉 차로 돌면서 요양원에 모시고 오는 거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된 건데요. 북한에서는 여맹위원장까지 하면서 큰소리깨나 쳤는데 남한에서는 그게 통하질 않았습니다.

박마리아: 북한 발음 자체가 좀 쎈 말이죠. 소리 나는 데로 쓰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웃는 거예요. 당시에는 제가 북한말로 쓰면 과장님이 고쳐준 것 같아요. 나는 북한식으로 어르신이 몇 시에 똥을 싸서 귀저기를 갈았는데 소자로 갈아줬다 이렇게 하는데 한국은 어르신이 변을 봐서 두시 몇 분에 귀저기를 갈았다 이러는 겁니다. 매일 틀리는 겁니다. 내가 쓰는 게 틀리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웃는 거죠.

안되겠다 싶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워서 알면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요. 우선 컴퓨터 자격증을 땄고 그 다음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취업을 하려 하는데 예전에 일했던 곳에선 사회복지사를 쓰지 않는다니 다른 곳을 찾습니다.

박마리아: 거기 보니까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사람을 찾는 겁니다. 사회복지로 할건가 요양사로 할건가 묻더라고요. 그래서 전 사회복지로 하려고 왔다고 하니까 사회복지 하면서 요양보호사를 겸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원장선생님이 당장 일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그리고 1년을 거기서 일했습니다.

이번에 취업이 된 곳은 기독교에서 하는 요양원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또 변수가 생깁니다. 예비 신랑의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천주교였기 때문입니다.

박마리아: 시집 쪽에서 우리는 대대로 천주교 집안인데 어떻게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일하는가 하냐면서 결혼을 하려면 관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랑하고 합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박 씨는 종교생활을 했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을 옮겨 다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이색경험을 하게 됐던 겁니다.

박마리아: 최근에 와서 이분들은 종교를 대단히 생각하는 구나 알았습니다. 자기 신앙이 최고라고 생각하는걸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천주교 도움을 받고 다음에 불교 요양원에 있었고 그리고 구세군에서 일했고 이제 천주교로 돌아왔는데 이제 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겠습니다. 마음에 여유도 있고요.

그동안 도와준 분들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배신감마저 느꼈을 수도 있지만 박 씨의 마음은 배우고 싶은 열정과 빨리 정착해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을 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뜻은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탈북자 누구나 남한에서 한번쯤 경험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마리아: 알아야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이 한 발짝 갈 때 난 두 발짝 가야해요. 그렇게 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저는 항상 내 뼈가 부서지지 않을 만큼 남보다 앞서라 뒤에 가며 따라가기보다 앞서가며 손잡아 주는 것이 좋다. 그런 얘길 하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박마리아(가명)씨가 경험한 남한의 종교에 대한 사연과 함께 정착을 빨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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