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에서는 어제 방송에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의 목적과 의의에 관해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을 지낸 윤여상 박사의 견해를 소개해드린 데 이어 오늘은 설립 주체를 누구로 해야 할지에 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보내드립니다.
북한의 인권참상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구제, 보상까지를 염두에 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한다면 그 주체는 누가 돼야 할지에 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난 26일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관련 인사와 전문가들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관이 설립하는 방안, 혹은 정부와 민간이 협동해서 운영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이번 토론회에 나오진 않았지만, 서면으로 낸 토론문에서 김동성 한나라당 의원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국가인권위원회 소속으로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남한 내 반대 세력이나 통일부의 북한 눈치 보기, 남북관계에 미칠 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또 민간주도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할 경우 자료수집의 한계와 불충분한 재정에 따른 불안정으로 인해 지속적인 기록보존소의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는 민관 협동체로 설립하는 것이라고 김 의원은 말했습니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김웅기 소장도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민관합동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김 소장은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을 보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두도록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권력과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어 자칫 그 존립이나 역할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웅기: 국가위원회는 언제나 공권력과는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인권위원 회의 특성이고, 그런 특성상 항상 공권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존립과 운영에 대해 비판적이고 기구나 역할의 축소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국가적인 정책의지와 재정적인 지원이 필수적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두는 것은 항시적으로 그 존립이나 역할이 축소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고, 만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공권력과 타협한다면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존립 목적을 저버리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통일부에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김웅기 소장은 말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북한 정권 담당자들의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통일부에 두는 것은 남북한의 대립과 갈등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김 소장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김 소장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주된 기능이 통일시 인권침해 행위를 벌인 북한 정권담당자들을 형사적으로 제재하기 위한 범죄 사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무부에 보존소를 두는 것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웅기: 어차피 법적인 청산이 일정 부분 이뤄지고 난 뒤에는 민간 부분이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으로 과거사를 청산하고 후세들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담당할 필요성이 있다면 처음부터 북한인권침해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해 연구하는 민간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날 토론회에서 법무부 인권정책과 소속의 홍관표 서기관은 공식적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설립 목적이라고 지적하고, 만일 북한에서 이뤄진 반인도적 행위를 기록하고 그 행위자를 처벌하는 게 목적이라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국가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홍관표: 종전에 다수의 연구 자료를 통해 보면 공통적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 목적은 ‘북한에서 이뤄진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정확한 기록 보존을 통해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선 불처벌과 면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이것을 통해서 북한 내부에서 더 이상 반인도적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대개는 논의돼왔다. 만일 이런 점을 전제로 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한다면 국가기관 안에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홍 서기관은 과거 서독 정부가 설립한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의 기록을 토대로 인권침해 혐의자를 형사 소추한 선례를 들어 북한에서 저질러진 반인도적 행위와 이에 대한 증거수집과 보존은 결국 법무부 소관이라고 말했습니다.
홍관표: 알다시피 독일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는 1961년부터 90년까지 약 30년 동안 동독 지역 내에서 행해진 이른바 폭력행위에 관한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을 보존했고,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정치적 폭력행위에 가담한 자를 형사소추하고 동독 내 판검사 재임용을 위한 기초 자료로도 활용했다. 또한, 정치적 박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부당판결에 대한 재심 절차를 진행했다.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형사소추와 이에 대한 증거수집보전이라는 기본적인 업무는 결국 수사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는 검찰을 산하에 두고 있는 법무부의 소관사항이다.
민간 대북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의 이승용 사무국장은 무엇보다도 공신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국가 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승용: 현재 민간단체나 정부기구에서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인권침해를 조사하겠지만, 현재 북한이란 소재 자체가 우리 내부에서도 정치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북한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그런 점에서 북한을 조사하는 것도 조사자의 정치적 주관이 분명히 개입되는 것으로 누구나 보고 있고, 그 사람이 다루고 있는 정보도 심지어 그렇게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게 봤을 때 개인이나 민간이 한다고 하면 당연히 공신력의 문제가 클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공신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기 위해선 국가기관의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국장은 다만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이 현실화되면 북한의 반발도 크겠지만, 오히려 더 우려되는 것은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이라면서 국가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할 경우 그에 앞서 가급적 광범위한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종연구소의 오경섭 연구위원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한다면 무엇보다도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 경우 정부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 연구위원은 정부 기관으로 설립할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정치적인 중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축사에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수렴되고 보완돼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보호를 기여하는 내용으로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 위원장은 특히 북한인권법이 의원 입법으로 제정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두는 근거가 마련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효율적으로 시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