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 ③ 헤리티지 재단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0.02.26
heritage_foundation-305.jpg 2008년 6월 18일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워싱턴의 헤리티지 재단에서 북핵문제에 관해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courtesy of Heritage Foundation
주간기획 <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 오늘은 미국의 보수적 성향의 연구소로 이름난 헤리티지 재단은 어떤 기관인지, 또 이 재단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973년에 설립된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 국내외 정책과 관련해 175개 분야에 걸쳐 많은 전문가들을 두고 있는데요. 특히 헤리티지 재단은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소입니다.

실례로 헤리티지 재단은 북한 핵문제나 한미자유협정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관련 전문가가 토론회나 강연회, 혹은 자체 웹사이트나 주요 언론을 통해 적극 의견을 개진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15일엔 헤리티지 재단이 한국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남한과 미국 간의 최대 경제현안인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와 관련해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 토론회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에는 아시아 문제를 전담해 연구하기 위해 설립한 아시아연구센터가 있는데요. 지난 1983년에 설립된 아시아연구센터는 한국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제와 남아시아 문제 전반에 관해 주요 현안을 분석해서 역대 미국 행정부에 건의안을 제시해왔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아시아연구 과제의 일환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해 분석 보고서를 내거나 초청 간담회나 토론회를 가져왔는데요. 특히 북한 핵문제가 전임 부시 행정부 재임 8년 동안 국제적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보수 연구소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에서 한반도 문제를 추적하고 있는 래리 닉시 박사입니다.

Larry Niksch: Some of the think tanks' criticism of the Bush administration resulted in the major shift in the Bush administration's approach toward North Korea at the end of 2006... (부시 행정부에 대한 일부 연구소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지난 2006년 말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방식에도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당시 헤리티지 재단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고립정책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현재 헤리티지 재단에서 한반도 문제를 거의 전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입니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북한이 지난 5월 2차 핵실험을 한 다음날 오전에 무려 13군데의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고,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한반도와 관련한 인터뷰가 3백회를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약 20년 동안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 등 미국 정보기관에서 남북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다 지난 2007년 헤리티지 재단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에 들어온 뒤 북한 핵문제에 관한 각종 분석 보고서를 낸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헤리티지 재단이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선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단적인 실례로 작년 6월 콘돌리사 국무장관이 헤리티지 재단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행한 연설을 꼽았습니다.

Bruce Klingner: Sec. of State Condoleezza Rice came, and gave a speech at Heritage Foundation because she knew she's getting criticism from conservatives on the Bush administration's policy toward North Korea... (당시 라이스 장관이 헤리티지 재단에 온 까닭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협상에 대한 보수파의 비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스 장관은 사적인 자리에서 헤리티지에 가서 보수파의 우려를 불식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결심한 건 크리스 힐 차관보의 대북 협상에 대해 헤리티지 재단 등이 비판한 걸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라이스 장관이 헤리티지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견해를 듣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여기서 당시 핵협상을 잠깐 살펴보지요.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집중적인 양자 협상을 벌여 ‘북한이 연말까지 핵신고서를 제출하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준다’는 합의 사항을 지난해 6월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핵신고 대상에는 부시 행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던 북한의 농축우라늄 생산 여부와 핵물질 확산 여부는 빠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신고서 내용을 검증할 만한 어떠한 장치도 결여된 것으로 알려지자 헤리티지 재단을 비롯한 미국 내 보수적 연구기관들과 보수파 공화당 의원들은 집중적인 비판에 나섰습니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특히 자신이 북한 핵신고서 문제와 관련해 검증체제의 미비점을 집중 부각해 행정부와 의회의 관심을 촉구했다고 주장합니다.

Bruce Klingner: Our discussions on the shortcomings and verification in Chris Hill's approach, given my extensive background in intelligence... (개인적으로 정보와 군축 분야에 대한 폭넓은 경험에 근거해 힐 차관보의 대북접근에 대한 결점과 검증 문제를 논의한 결과 북한과 향후 어떤 핵협상에 있어서도 완전한 검증 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우린 북한 핵신고서의 검증과 관련한 기술적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결과적으로 미국 의회를 통해서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말에 펼친 지나친 대북 화해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 있었다.)

클링너 연구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미국 의회조사국의 닉시 박사도 수긍합니다. 즉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핵협상 결과를 발표한 뒤 이행 단계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데는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보수 기관의 비판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Niksch: After they worked out a deal with North Korea, they're supposed to moving into implementation stage. Why did they bring in this verification issue and lay on the table this sweeping verification proposal that would have allowed Bush administration officials to go anywhere in North Korea...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핵협상을 일단 마무리한 뒤 이행단계로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왜 부시 행정부가 북한 어디든 뒤질 수 있도록 한 검증체제안을 협상 테이블에 꺼냈는가? 북한은 당연히 이런 제안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2008년말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협상을 마무리하고도 이런 일을 벌였을까? 내 생각으론 부시 대통령 자신이 정치적인 압력을 느낀 것 같고, 거기엔 헤리티지 재단 같은 보수적 연구기관의 압력도 있었던 것 같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이처럼 북한 핵문제 말고도 한미 주요 현안과 관련해 헤리티지 재단을 대변해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외군사판매 문제와 관련해 그는 한국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의회에서 관련법을 발의하던 에드 로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 간에 비자, 즉 입국사증을 3개월간 면제하는 협상이 벌어졌을 때 헤리리지 재단은 적극 비자 면제를 찬동하는 입장을 주창했다는 점도 꼽았습니다. 결국 한미 양국 사이에 비자 면제협정이 체결된 데는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한 광범위한 연대도 한 몫 작용했다는 게 클링너 선임 연구원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한반도 주요 현안에 관한 활발한 활동 덕분에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따라서 그런 유명세에 걸 맞는 대접도 받는다고 합니다.

Bruce Klingner: When I go to Korea, I go to the Blue House, I go to the National Assembly and meet directly with policy makers, meet with South Korean ... (내가 한국에 들러 청와대와 국회에 가면 정책 당국자들과 직접 만나기도 하고,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남한 혹은 일본 대표들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내 견해를 묻기도 하고 권고안을 청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을 만나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나도 사적인 회동에서 현안과 관련해 내 견해, 다시 말해 헤티리지 재단의 견해를 외교 정책가들에게 직접 제시한다.)

클링너 연구원은 현재 진보적인 성향의 오바마 행정부에는 보수적인 부시 행정부 때처럼 헤리티지 재단 출신의 인사를 찾아볼 수 없지만 헤리티지 재단은 다른 형태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례로 그는 헤리티지 재단이 단순히 분석 보고서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전역에 50만에 달하는 자발적인 후원자들에게 각종 참고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후원자들은 물론 이들이 사는 지역의 의원들에게 영향을 주고, 이런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의회 전반에도 영향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네, 주간기획 <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연구소인 헤리티지 재단과 이 재단의 한반도와 관련된 업무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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