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①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 행사하는 ‘두뇌집단’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0.02.26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미국에는 미국 정부의 국내 정책은 물론 대외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기관들이 있습니다. 흔히 싱크탱크(think tank)라고 불리는 ‘두뇌집단’이 바로 그런 기관들입니다. 주간 기획 <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에서는 역대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온 연구소들은 물론 이런 연구소들이 미국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관해 살펴봅니다.

주간 기획 <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 오늘 첫 순서에서는 싱크탱크의 이모저모와 싱크탱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에서 유독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며 눈부신 성장을 자랑해온 배경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싱크탱크는 다른 말로 하면 ‘정책 연구소’(policy institute)라고도 하는데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등 한 나라의 각 부문에 걸쳐 정부가 관련 정책을 입안하거나 실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영향을 끼치기 위해 설립된 정책 중심의 연구소를 말합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약 2천개의 싱크탱크가 있지만 그 가운데 약 4백개가 워싱턴에 몰려있습니다. 특히 영향력이 큰 브루킹스 연구소와 헤리티지 재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종종 한반도 문제에 관한 정책 보고서를 내고 각종 토론회를 주최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싱크탱크는 미국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싱크탱크에 관한 연구로 미국에서 정평있는 펜실베니아 대학의 제임스 맥간(James McGann)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170여국에 약 5천5백 곳의 싱크탱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싱크탱크 가운데 약 2천개가 미국에 집중돼 있을 정도로 싱크탱크 하면 제일 먼저 미국을 떠올립니다. 미국에서 싱크탱크 10개 가운데 9개는 1951년 이후 설립됐는데요. 특히 1980년 이후 싱크탱크가 종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왜 유독 미국에서 이처럼 싱크탱크가 많은 점과 관련해 싱크탱크 연구의 권위자인 펜실베니아 대학의 맥간 교수는 그 해답을 미국의 독특한 정치 문화에서 찾습니다.

Prof. James McGann: One of the key factors which foreigners outside the US find hard to understand is what makes the American political system unique... (미국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미국 정치문화의 독특한 특성상 행정부가 정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조언이나 의견을 신뢰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 공무원들의 견해가 더 존중받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이건 독특한 미국 정치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 정치의 다양한 측면에 구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는 입법, 사법, 행정부 간의 3권 분립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연방 정부와 주정부, 지방정부 등으로 권력이 분권화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게다가 공화당이 만든 원칙이라곤 볼 수 없지만, 미국의 정치문화에 뿌리깊이 박힌 원칙이다. 그건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정치 철학이 그것이다. 즉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작은 정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정책 형성과 관련해 정부 바깥에 있는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싱크탱크가 미국에서나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성격과 역할이 생기는 것이다.)

<민주화와 시장개혁: 싱크탱크의 촉진제 역할>을 포함해 싱크탱크에 관한 여러 권의 저서를 낸 맥간 교수는 특히 미국이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이 존재하는 다원주의 사회라는 점도 싱크탱크가 활개를 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미국처럼 다원주의가 활짝 핀 사회에선 각 집답이 공화당이나 민주당, 좌파와 우파, 중도파, 특정이익집단을 대변하는 로비스트, 언론과 학자, 종교인, 나아가 싱크탱크를 상대로 자신들의 견해를 설득하려 안간힘을 쓰는데요. 싱크탱크는 이처럼 끊임없이 이뤄지는 토론 과정에서 하나의 '효모'(yeast)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또한 싱크탱크는 행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단순히 연구 보고서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언론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미국의 주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특정 싱크탱크 소속의 연구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미국 싱크탱크가 다른 나라 싱크탱크에 비해 구별되는 또 다른 점은 인적자원이나 재원이 상당히 크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큰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는 각 분야에 걸쳐 2백 명 이상의 일류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1년 예산이 6천만 달러를 넘습니다. 특히 브루킹스나 헤리티지처럼 유력한 싱크탱크의 경우 돈을 기부하는 층을 보면 각 개인은 물론 기업과 재단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만큼 이런 싱크탱크들이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는 유럽이나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의 싱크탱크가 주로 정부의 보조를 받는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초빙 연구원으로 있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신성호 교수는 한국의 싱크탱크와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성호: 한국도 물론 싱크탱크가 있다. 물론 미국만큼 다양하거나 인력자원이 풍부한 건 아니지만 한계 내에서 한국도 노력은 하고 있는데 한 가지 미국하고의 차이점은 한국의 싱크탱크는 주로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민간에서 운영되는 싱크탱크는 아직 재원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규모가 소규모고 그러다보니 싱크탱크의 기능이 정부에서 생각 못하는, 내지는 정부와는 좀 다른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마련하고 제안하는 싱크탱크의 기본 목적인데 한국같은 경우 주요 싱크탱크가 정부에 의해 운영되다보니 여기서처럼 서로 견제 내지는 건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고 보다는 한국의 경우 아직은 정부 정책을 보조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인 것 같다.

미국의 싱크탱크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정치적으론 좌파와 우파, 중도로 나뉠지 몰라도 특정 정당이나 이해집단, 나아가 정부와 연계되지 않다는 점에서 대부분 독립적(independent)이며, 바로 이 점이 미국 싱크탱크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미국의 싱크탱크만이 가장 독특한 특징은 행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펜실베니아대학의 맥간 교수는 설명합니다.

Prof. McGann: They tend to have a greater influence in that they are able to brief members of government, they're invited into the executive branch... (싱크탱크 사람들은 정부 관리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관리들의 초대를 받아 의견을 개진하는 일도 많으며, 언론에도 자주 나와 특정 정책에 관한 조언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측면은 싱크탱크가 미국 정부의 국내외 정책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실례로 예로 올해 초 미국 하원의원들이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아래 정부의 경기촉진자금을 받는 철강업체들에 대해 미국산 철강의 사용을 의무화한 법안을 도입했는데요, 이런 보호주의 조항이 들어가면 다른 나라와 무역전쟁을 유발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자 워싱턴의 유명한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법안을 발의한 주요 하원의원들의 보좌관들을 만나 해당 조항의 해악을 설명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관리들과도 접촉해 해당 조항의 부당성을 설득했습니다. 결국 피터슨 연구소가 발 벗고 나선지 2주 만에 해당 조항은 무력화됐습니다. 피터슨 연구소가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준 실례입니다.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로 유명한 헤리티지 재단에서 한반도 문제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그런 경험을 일선에서 피부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입니다.

Bruce Klingner:
Yea, I think so. Certainly. Through our writing, media apperances and private meetings with US and foreign government officials... (물론이다. 우리가 내는 저술이나 언론 출현, 나아가 미국 정부와 해외 정부 관리들과 갖는 비공식 회동을 통해서 미국 정부의 정책과 다른 나라의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단적인 실례로 지난해 6월 당시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헤리티지 재단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핵신고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은 그에 상응한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한 점을 꼽았습니다. 라이스 장관의 연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핵협상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헤리티지 재단을 포함한 보수 집단의 강력한 비판에 부응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클링너 선임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싱크탱크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등용되고, 정부가 바뀌면 다시 싱크탱크로 복귀하는 일을 빙글빙글도는 회전문에 빗대어 일컫는 '회전문(revolving door) 체제'도 꼽히데요. 실제로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 일하는 고위 관리들 가운데는 얼마 전까지도 싱크탱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대표적으론 인사를 꼽자면 전직 장군인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 출신입니다. 또한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과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 피터 오즈자그 백악관 예산국장은 모두 브루킹스 연구소 출신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맥간 교수의 설명입니다.

Prof. McGann:
Revolving door is one of the other unique aspects of American system. It occurs in other countries to a certain degree... (회전문 현상은 미국문화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체제 가운데 하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일어나지만 미국에선 회전문 현상은 정치체제의 불가결한 일부이다. 즉, 회전문처럼 싱크탱크 사람들이 연구소에서 한동안 일하다 정부에 들어가고, 정부가 바뀌면 다시 싱크탱크로 돌아와 나중에 재기를 엿보는 것이다.)

맥간 교수는 이런 회전문 체제가 미국의 정치문화상 불가피한 부분이긴 해도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역할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맥간 교수는 미국 행정부의 국내외 정책이 때론 혼돈스럽고 뒤죽박죽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런 상황에서 싱크탱크는 핵심 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 마치 길 잃은 사람을 위한 ‘북극성’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네, 주간기획 <미국의 싱크탱크와 한반도> 오늘 첫 순서에선 싱크탱크의 이모저모와 미국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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