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 안경-“닫힌사회가 준 혜택은 시력뿐”

안경이 한반도에 첫 선을 보인지도 벌써 4백여 년이 흘렀습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안경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단순한 시력 보정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패션으로 여겨질 정도로 보편화되는 추셉니다. ‘남북 문화기행’ 오늘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창, 안경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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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들이 죄다 안경을 쓰고 있습네까?"

지난해 한국에 간 북한 청소년 축구 선수들은 궁금한 게 무척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개최된 '2007년 세계청소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훈련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나 호텔 숙소에서 '남쪽 나라'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면서 던진 첫 질문은 방금 들으신 것처럼 안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 있는 대한안경사협회의 가장 최근 조사를 보니까요, 만 18세 이상 성인 2명 중 1명이 안경 또는 콘택트렌즈를 사용하고 있네요. '콘택트렌즈'란 눈 각막의 겉면에 붙여서 안경과 같은 구실을 하는 작은 알인데요, 북한에서는 '접촉안경'이라고들 하죠?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5명에서 2명 정도가 안경이나 '접촉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접촉안경'보다는 안경을 사용하고 있죠.

북한 청소년 축구선수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북한 청진에서 8년간 한의사로 있다가 지난 1999년 탈북해 현재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진희씨의 말을 들어보시죠.

김진희: 저도 한국에 금방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특히 어린아이들이 대부분 안경을 쓴데 대해서 너무 너무 놀랐어요. 북한에는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쓰는 어린이들이 거의 없는데요, 한국에 오니까, 어린 아이들이 70-80% 안경을 꼈더라고요.

한국에 안경 사용자들이 많은 이유는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어릴 때부터 수많은 책, 비디오, TV, 컴퓨터, 게임기 등에 자주 접하게 되고, 직장에서도 업무상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어떨까요?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인터넷을 사용한 경험이 1.9%, 컴퓨터 사용 경험이 7.7%로 10명 중 9명은 디지털 문화를 접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 정영 씨의 얘깁니다.

정영: 북한주민들이 남한주민들보다 시력이 좋은 이유는 공부를 적게 하는 데도 있지만, 전자파에 그다지 노출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컴퓨터나 게임. 오락기, 텔레비전 등을 안하고, 안보다 보니까 눈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한의사 김진희 씨는 북한당국이 북한주민들의 삶을 구석구석까지 엄격하게 규율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특히 북한의 학교에서 학령기 이전부터 지속되는 사상교육과 엄격한 학교 규칙 등에 순종하다 생겨난 의외의 좋은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김진희: 북한에서는 교육할 때, 책과 눈 사이를 딱 35cm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우리도 영화 보게 되면, 학교에서 팔 쫙 펴고 책상위에다 책 놓고 읽잖아요. 이게 북한에서는 표준으로 돼있어요. 여기처럼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이걸 무조건 지켜야돼요.

한반도에 존재하는 안경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학봉 김성일 대감이 쓰던 안경입니다. 김성일 대감이 1538년에서 1593년까지 살았으니까, 우리나라 안경 역사의 시작은 임진왜란 이전인 셈입니다. 현재 경상북도 안동에 보관돼있는데요, 안경알은 거북이의 등껍질로 만들어졌고요, 귀에 거는 끈은 밤색 헝겊으로 박아 달아놓았습니다.

임금을 비롯한 일부 계층에만 보급되어 사용되다가, 17세기 말 영조때 가서야 일반주민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정조 때에 이르러서 드디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안경.

일제 식민지 시절, 일제의 패망, 8.15 해방을 거쳐, 안경의 용도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작은 글자를 제대로 보기 위해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쓰는 것이 안경이라는 생각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지적받을 수도 있습니다. 안경은 ‘보는 것보다 보이는 것’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죠. 안경이 그 사람의 개성과 성격을 드러내는 유행 (패션)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서 안경점을 운영해 온 대한안경사협회의 윤효찬 회장입니다.

윤효찬: 요즘은, 2-3년 전부터는 뿔테안경테가 많이 유행하고 있고요, 금속테 중에서도 밑에 테가 없는 ‘반무테’라고 하는 게 유행합니다. 옛날에는 안경하면 다 테두리가 있는 것이 안경이었는데, 요즘은 개성에 맞게, 반무태와 뿔테가 인기입니다.

최근에는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새라 페일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소위 '페일린 안경'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페일린 안경'은 페일린 후보가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 때 썼던 무테안경인데요, 미국 서부의 한인업체가 개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유행을 흉내 내려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평양 안경 상점의 주 고객은 노인들이나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최근 평양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안경을 ‘멋으로’ 끼고 다니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사실, 지난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6자 회담 경제, 에너지, 지원 남북 실무협의에 참가한 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은 북한사람들이 쓰는 커다랗고 두꺼운 안경과는 달리 알이 작은 최신형 무테안경을 쓰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었죠.

청취자 여러분들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북한이나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들을 하죠. 남북한 사람들이 여럿이 함께 있을 경우 안경 크기만 가지고도 구분이 가능하다고요. 북한에서는 안경렌즈가 큰 것이 보통이고, 남한에서 주로 많이 착용하는 렌즈가 작은 안경을 착용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북한 주민들과 자주 전화로 최신 소식을 접하고 있는 탈북자 정영 씨는 현학봉 미국국 부국장의 최신형 무테안경에 대해 이렇게 평합니다.

정영: 현대사회의 모델을 따라가려는 것. 흉내를 내려는 움직임이죠. 그 사람들은 외국에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아. 외국인들은 대체로 이런 안경을 끼고 있고, 외국안경은 대체로 멋있다.’ 그래서 비싼 외화를 들여서 북한에 들어갈 때 안경을 구입해서 들어가고 있어요.

정영 씨의 말처럼, 북한주민들은 해외 출장자들에게 안경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북한의 안경 산업은 다른 경공업과 마찬가지로 낙후돼, 생산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도 높지 않아 눈 나쁜 주민들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안경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라고 하죠? 인쇄술의 발달은 ‘글자’의 대중화를 불러왔고, ‘글’ 과 ‘지식’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설명이죠. 글자를 보기 위해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안경을 찾기 시작하면서 안경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대한 안경사 협회의 윤효찬 회장입니다.

윤효찬: 안경은 자기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우리나라, 그리고 전 세계가 하나가 되고 발전하고 하나가 되는 시대, 정보화시대라고 하죠. 어떤 자기의 정보를 보는 눈을 통해 그 정보를 흡수하지 않습니까? 그게 제일 빠른 것이죠.

북한에도 곧 TV와 컴퓨터 사용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하게 될 날이 오겠지만, 글쎄요, 이와 더불어 눈을 혹사시켜 시력이 저하돼 안경 사용자도 늘 것 같은데요, 아휴, 이건 좀 걱정되네요.

남북 문화 기행, 한국가수 ‘이루’가 부른 <까만 안경> 들으시면서 ‘안경’ 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