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 남북 포스터 변천사

200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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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남북한 문화기행 오늘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흔히 볼 수 있는 포스터를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에서는 포스타 라고 불리는 게시물 김일성 주석 시대에는 주체사상을 강조하고 사회주의 강화를 선전하고 경제발전을 독려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남한은 불조심, 보리혼식, 건강, 알뜰한 살림 등 주로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주제가 됐습니다. 남한 포스터와 북한의 포스타, 어떻게 변해 갔는지 알아봤습니다.

대망의 70년대 민족중흥 이룩하자. 불 불조심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불이 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 남한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대한뉴스입니다. 방송에서 뿐만 아니라 겨울철만 되면 거리 곳곳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붉은 색으로 칠해진 불조심 포스터가 벽을 장식합니다. 성냥개비 하나가 건물 전체를 다 태워 버리는 그런 포스터입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포스터는 더욱 우리의 생활에 친근한 포스터들이 많았다고 이화여자대학교 이동원 명예교수는 기억합니다.

이동원 : 해방되고 나서 쥐를 잡자, 하수도를 청소하자, 내 집안 쓸기 이런 것이 있었어요. 포스터란 것이 국가가 뭘 할 때는 플랜카드 헝겊으로 하는 것이 난무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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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포스터 “남녘의 쌍둥이” -RFA PHOTO

농업이란 1차 산업이 주를 이뤘던 시절에는 이렇게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포스터가 주를 이룹니다. 지금 보면 유치할 수 있는 국민계몽 포스터들입니다. 국민 계몽 포스터는 뉴스 시간에는 또 다른 형태로 텔레비전에 나옵니다. 1958년 대한 뉴스입니다.

뚜껑이 없는 물통에는 모기가 자라기 쉬움으로 석유 같은 기름을 부어 놓거나 한주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내는 것이 좋으며 ...

“ 또 하나의 적 모기를 잡자는" 제목의 방송입니다. 아나운서는 모기가 생겨나지 않도록 예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동원 교수는 국민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의 역할은 컷다고 말합니다.

이동원: 그때는 집합적인 사회고 먹혀 들어갔어요. 아들딸 구별말자 그러면 사회 조사를 다녀보면 포스터 구호가 뭐냐에 따라서 그것을 전부 내면화 하고 있더라고 국가가 하는 이슈에 집합적으로 받아들여던 것이 70년대예요. 80년대 들어가면서 집합적인 사고가 잘 안먹혀 들어가는 개별화 사회로 가는 거죠.

북한의 포스터는 10년 지기로 크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데 북한 포스터의 변화는 내부교양과 대외전략에 관계됩니다. 다시 말해 당의 정책을 알리고 선전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탈북자 한민씨는 말합니다.

한민: 1980년도 까지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주의 건설,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이 두 가지를 했어요. 80년대 지나서 부터는 대를 이어 혁명을 계승한다로 전환 되고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선군정치 위주로 포스터가 바뀝니다. 그리고 2000년대부터 조금 더 강환 된 것이 선군정치에다 자폭정신, 우리의 것을 지켜서 목숨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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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포스터-RFA PHOTO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림이란 형식을 빌려 대중을 설득하는 포스터 남한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하고 잘살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내용의 그림을 포스터를 기억하고 있다면 북한 주민들이 이해하는 포스터는 어떤 것일까 탈북자들의 말을 들어봅니다.

포스터요? 그것은 예술적 작품이라기 보다 선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

한민씨는 남한의 포스터르 보고 놀랐다고까지 말합니다.

한민: 우리는 포스터 하면 정치적인 것으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남한에 오니까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포스터였구나 남한은 북한에서 말하는 썩고 병든 사람들이 못살 자본주의 세상, 깡패 천국이 아니라 실지 국민대중을 위해서 사회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인식을 받았어요.

남한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관공서를 빼고는 쉽게 포스터를 볼 수 없게 됩니다. 포스터는 거리의 전광판이나 텔레비전 등 더 빠르고 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할 수 있는 매체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80년대 중반까지 매월 6월이면 그렸던 반공 포스터도 겨울이면 학교에서 그렸던 불조심 포스터도 이젠 옛말이 됐습니다.

포스터와 함께 사라진 것은 영화관 간판도 마찮가집니다. 이제 남한에서는 직접 사람이 손으로 영화 간판을 그리지 않고 영화 사진을 크게 확대 인쇄해서 간판을 대신합니다. 마지막 영화 간판쟁이로 알려진 박태규씨는 변해가는 사회 현상들에 대해 향수마저 느낍니다.

박태규: 포스터 문화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학원안내, 전시안내 그것도 지정된 장소에 옛날에는 홍보를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전봇대나 길가 유리나 다양하게 포스트를 붙였는데 지금은 지정된 장소가 아니면 붙이기도 힘들고 많이 사라졌어요. 사람 냄새가 안나고 영화 간판의 경우도 극장마다 얼굴의 역할을 해줬었는데 ...

북한 주민들은 잘 아실 북한 포스터 “남녘의 쌍둥이” 그림은 북한에서도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한의 쌍둥이가 겨울철 거적떼기를 둘러쓰고 떨고 있는 포스터입니다. 이제 북한 사람들도 어느정도 남한이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하게 왜곡된 포스터는 서서히 북한에서도 사라지고 있다는 탈북자의 설명입니다.

그때 그시절 넌 말괄량이 하지만 이젠 한 아이의 엄마 조금은 뻔뻔스런 모습 조금은 뚱뚱한 모습 그때 그 시절 넌 개구쟁이 하지만 이젠 한 아이의 아빠 조금은 건방져 진듯하고 조금은 배가 나온....

북한에서는 여전히 사랑 받고 있는 포스터 남한에서는 이제 거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남한의 푸른하늘이란 가수가 엣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때 그 시절이란 노래 들으면서 저는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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