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 전업주부인 여맹원들의 고된 노동착취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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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7주년을 기념하는 여맹원들의 무도회가 지난달 30일 개선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7주년을 기념하는 여맹원들의 무도회가 지난달 30일 개선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은 결혼한 여성들은 누구를 막론 하고 모두가 사회주의 여성 동맹에 가입을 하고 있다는데요, 이전 명칭인 북한의 민주여성동맹은 제일 처음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1926년 12월 조직했고 김일성의 부인인 김성애도 위원장 직분을 맡았었죠 그리고 북한은 2년전 여성단체인 '민주여성동맹'의 명칭을'사회주의여성동맹'으로 바꾸고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 투쟁하라"고 지시했다는데요,

: 북한에서는 여맹원들이 일반인들 이잖아요 엄청 힘들어요 여맹은 여성돌격대라는 것도 있어요

북한에서 수산물 무역업을 했던 탈북여성 김경희 씨로 부터 얘기들어봅니다.

음악:

김경희 씨는 이 여성동맹 즉 여맹원들의 노동력을 생산노동으로 전환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기에 여성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 여맹돌격대에 나가서 집 짓기도 하고 일체 시, 군 안에서 제기되는 모든 것을 여성들이 해서 집 건설할때 재료가 필요하잖아요 모래라던가 돌 줍기도 여맹원이 하고 농사 할때 퇴비도 여맹원들이 몇 키로그램 씩 하라고 위에서 부터 지시가 떨어지면 그 일들 다 여맹원들이 해요, 농사철이면 모내기 김메기도 가야되고 이 동원에서 안나가면 안돼요

여맹은 북한 정권이 해방 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사상을 공산주의적으로 계몽, 개조하고 그들을 근로장으로 동원하기 위한 필요성에 따라 여성해방이라는 명분 아래 만들어진 사회단체라고 전문가들의 말인데요, 여맹의 구성원은 당초 18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었지만, 1983년 여맹 제5차 대회 이후로는 비 당원이자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30살 이상의 전업 주부들을 동맹원으로 하고 있다는 군요

: 시집가면 모두가 자동적으로 여맹원인 거에요

집안 살림은 물론 이런 힘든 작업도 하는데 이에 대한 국가에서 지원금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 아무것도 없어요, 나오라고 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되고 또 국가에서 무엇이든 내라고 하는데 그럴때 안내면 안됩니다 월급이나 임금같은 돈은 아예 없어요

그리고 여맹원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는 어느 작업이든 나오라는 날에 한 사람이라도 나가지 못할 경우 자신이 소속된 단체 모두가 제재를 받는다고 하는군요

: 여맹원도 초급단체가 있어요, 만약 제가 어느 한 초급단체에 소속되었있는데 내일 모내기 작업에 나오라고 했는데 나가지 못하면 그 초급단체가 제재를 받아요, 한명이 나가지 않아도 단체에 제재를 주거든요, 그러니까 배길 수가 없이 안나오면 안되게 만들어 놓은겁니다.

북한은 여성들을 여맹원이란 단체에 강제로 가입시켜 그들을 근로장으로 동원하기 위해  필요성에 따라 국가 마음대로 노동을 시키는 셈이라고 지적하는데요

: 여맹원들이 직장에 다닌것 보다 더 힘들어요 특히 시내에 사는 여맹원들은 동원을 더 많이 시켜요 새벽 청소 까지 나가는데 거리청소 대도로는 물론 골목길 같은데, 집 주변 까지도 다 청소를 해야 되요 그런데 농촌에는 이런 청소같은 것은 없어요

몇년전이든가요, 김정일 사망후 김정은 후계자의 생일이 1월8일이었는데 이날이 바로 일요일이었다는 군요 이날은 명절이 아니라고 해도 새해 들어서 북한 주민들속에서는 김정은의 생일에 이틀간 휴식을 준다는 소문까지 돌아 주민들이 이날을 많이 기다렸는데 결국 이날 휴식을 못 했다는 겁니다. 탈북민 문성휘 씨로 부터 들어보죠.

: 특별한 행사는 없었는데 토요일에 진행할 예정이던 간부 강연회와 영화문헌 학습을 바로 이날 오후 2시부터 진행했다는군요 자유아방송과 연계를 가진 소식통은 오히려 여느 노동일 보다 더 피곤했다고 불평을 했다는데 애초에 북한 당국도 김정은의 생일을 맞으며 주민들에게 이틀간 휴식을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한 껏 기다리던 휴식이 날라간 것은 바로 여맹원 때문이었다는 데요,

: 여맹 중앙위원회가 1월6일에 전체 여맹원 들을 대상으로 급작스럽게 긴급 지시문을 배포했기 때문인데 김정은의 생일을 1월8일을 충성의 노력동원의 빛내기 위해 모든 여맹원들이 협동농장들에 거름을 생산해서 보내자는 것 이었다는데요

한사람이 선도자로 나서면 충성경쟁으로 억지로 따라야 하기 때문에 여맹원 뿐 만아니라 주민들의 고생이 많다고 김경희 씨는 지적합니다. 여맹원들 사이에서 이런일에 대한 불평이 왜 없겠느냐고 반문합니다.

: 국가에서 아무것도 주는 것도 없이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막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제로 그것이 막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북한의 실제 상황을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은 말을해야 되는데 하면 안되니까 어떤 분들은 말을 하면 옆에서 말 하지말라고, 걸릴 수 있잖아요 잘못 말하면, 초급단체나 한 개의 인민반 마다 보위부 특파원이 한명씩 다 있어요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던 탈북여성들은 한국에서는 강제 동원이 없어 처음에는 이상할 정도 였다고 하는군요.

: 너무 많이 비교가 되요, 왜냐하면 오기전에 당창건 당7차대회가 북한에서 있었어요 그때 인민반에서 여명원들이 계속 환영모임을 나갔어요 새벽 부터 나가서 환영모임을 하는데 길에 서서 아침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환영 하느라고 춤도추고 꽃을 흔들고 북도 두드리고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까지 북한의 당과 수령은 여성들을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동원해왔기 때문에 매일의 일상에서 북한과 아주 많은 점에서 비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맹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힘드는 고된 작업인데 새벽 까지 동원 시키니까 불만이 컸지만 한국에서는 조그마한 일을 하더라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도 놀랐다는 거죠

: 원래 여맹원들이 힘든데 새벽에 그런일 까지 부담을 주니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국 여기에 오니까 그런 것이 아예 없잖아요 또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만한 보수가 따르잖아요 북한은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안나오면 큰일나고 이에대해 뭐라고 말을해도 국가에서 하라는 것은 예 하고 대답밖에 다른 것을 하면 안되요

한국에 와서 북한에서 여맹원들의 일은 바로 혹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김경희 씨는 북한에서 여맹원인 어머니가 늘 동원되는 일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어머니가 여맹원이다 보니 매사에 동원되다 보니 잘알아요 저는 바빠서 나가 있다 보니 집안 일을 돕지를 못하니까 어머니가 혼자 하시면서 너무 힘드셨을거예요

지금 세계에서 여성의 지위는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데 민주주의역사가 오랜 서방은 물론이고 지난 날  북한보다 남녀불평등이 심했다던  남한에서도 여성들의 지위는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고  김경희 씨는 말합니다.

: 여맹원이고 뭐고 국가에서 내라는 것도 없고 여맹원 생활로 나와서 청소하라는 것도 없고 해서 어머니가 좋다고 하셔요

김경희 씨는 올해 가족들, 그리고 한국에서 만난 친척들과 양력 설을  보냈다고 전합니다.

: 양녘 설은 명절 분위기에 맞게 가족, 친척이 모여서 명절을 쇠고 있어요 이제 두번 설을 맞는 거에요

지난해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미 정착한 사촌 언니네와 함께 설을 보내 든든하고 외롭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친척이 있으니까 많이 도움도 되고 외롭게 사는 것보다 가족도 있고 친척이 있어 많이 위로도 되고 좋아요

명절 외에도 친척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하는군요

: 언니네 가족과 만났어요 생일때도 식당도 가고 명절이 아니라도 자주 모여요

김경희 씨는  온가족이 지금은 모두 일을 하고 있는데 일한 만큼 월급이나 보수를 받고 있어 재미있다고 하네요

: 어머니는 하신지 오래 되셨어요 북한을 나와 도착하시면서 부터 일하셨어요 보수가 있으니까 어머니도 너무 좋아하세요 북한은 아예 보수 같은 것은 없으니까 ….

올 새해에  김경희씨는 어떤 계획과 희망이 있는지 들어보죠

: 모든 일이 되어 그리고 바라는 대로 일이 척척 풀렸으면 합니다. 대학가려고 준비도 하고 대학은 2년후에 예정이에요,한편으로는 돈도 많이 벌고 아빠 엄마도 건강하시고 가족이 모두 건강 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서 했던 해산물  무역업 경험이  한국에서 일하는데도 도움이 되는지요?

: 아직은 모르겠어요 온지 얼마 안되어서 한국에 대해 모르잖아요, 그리고 지금 제가 다른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어차피 앞으로도 장사쪽으로 나가는데 지금 사업하는데 수입은 괜찮아요. 북한에서 했던 경험이 이런 쪽으로는 많이 도움이 되는 같아요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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