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탈북민 돌잔치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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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탈북민 돌잔치 충북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 석문마을에서 21년만에 열린 돌잔치 모습.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느덧 4월의 막바지를 달립니다. 제가 사는 남쪽은 이제는 산과들이 파랗게 옷을 입었고, 북한에서는 5월에야 볼 수 있는 꽃가루들이 날려서 집앞 주차장에 세워진 차 위를 뽀얗게 덮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을 막기 위해 하던 사회적인 거리 두기도 이제 해제가 되어서 활기에 찬 사람들의 모습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손녀딸은 “할머니 학교에서 5월이면 마스크를 벗을 수가 있데요하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네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20년 이후에 태어난 아기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스크를 착용해놔서 이제는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안 쓰면 나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먹을 것을 주면 입안에 넣고는 재빨리 마스크로 입을 가린답니다.

 

얼마 전 30대 탈북민의 아이가 백일이라는 소식을 듣고 지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아기들이 태어나서 백일을 거창하게 쇠는 것보다는 집에서 간단하게 상을 만들어서 가족이 즐기면 되지만 옛날에는 백일상에 정성을 다한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을 넘기기 어려운 옛날에는 악귀가 물러가라고 백일상에 빨간 팥을 올렸답니다.

 

지금은 팥이 들어간 수수팥떡을 놓기도 하고 또 여러가지 예쁜 떡들과 과일 그리고 백일을 잘 살아준 아이를 축하해서 백설기도 놓고요. 북한의 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생화들도 한쪽 자리에서 화사한 빛을 발합니다. 벽에도 백일을 축하한다는 풍선 장식을 하고 천장도 부모들이 힘주어 불어서 만든 풍선들로 형형색색 요란하답니다.  

 

이런 백일상차림은 우리 탈북민의 가정뿐만 아니라 한국 가정의 평범한 모습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백일상을 부모가 며칠을 준비해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하기도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떡도 집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떡집에서 한 것을 가져오고, 과일도 큰 수박이며 열대 과일들로 준비가 다 된 것을 주문해 예쁘게 상을 꾸미기도 합니다.

 

저도 십여 년 전 손녀딸 백일 때 풍선을 불어서 천장에 붙이고 상을 예쁘게 차린다고 애썼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생각을 하면서 부모가 없는 탈북민들에게 위로 차 다녀왔지요. 그리고 다음 날 떡집에서 떡을 사서 이웃에 떡을 돌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옛날에는 아이가 무탈할 수 있도록 백 사람에게 떡을 대접한다는 말이 있었답니다. 꼭 그것을 믿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동네 나가서 넘어져도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아래층에 사는 사람에게 소음으로 민폐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래층, 위층 그리고 옆집들에 떡을 돌리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랍니다.  

 

부모형제가 없이 외롭게 아기 백일을 차릴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생각 외로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와있었네요. 서울이며 인천 그리고 가까이에서도 친구들이 와서 멋진 아기 백일상을 차리고 저는 가져간 축의금을 백일상에 놔주고 사진만 멋있게 찍고 점심을 먹고 나왔답니다.

 

어쩌면 외로운 자기들끼리 서로 다독이면서 잘 살아가는 것 같아서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철없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부모의 가르침도 없이 아이들을 낳아 키우느라 고생인들 오죽하랴 하는 안쓰러운 생각도 듭니다. 그런 아이들이 한 번씩 잘못을 하면 저는 온갖 야단을 다 치지요. 그런데도 언니, 이모라고 하면서 곁에 와서 애교를 부리는 그들이 기특하기도 하답니다.

 

탈북 청년들 중에는 북한에서 공부를 못해서 검정고시라는 절차를 밟아서 학력 인정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자격증도 따고 아이들이 커가는데 엄마가 초등학교 미필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을뿐더러 아이들의 숙제도 봐줘야 하니까 공부를 하는 거죠.

 

많은 탈북 청소년이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보지 못하고 힘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도 졸업하고 북한으로 말하면 준박사 과정인 대학원까지 나와서 목사가 된 탈북민도 있고 의사나 기자 또는 박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북한에서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마땅찮아서 길거리를 헤매면서 의무교육이라는 제도하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못하고 한국으로 왔지만 이제는 부모가 돼서 예쁘게 아이 백일상을 해주는 행복한 아기엄마, 자랑스러운 탈북민이 되어보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이진서 에디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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