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머리모양도 ‘남한식 멋지게’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4.06.03
[여성시대] 머리모양도 ‘남한식 멋지게’ 미용실
/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며칠전 꽤 거리가 먼 곳에 미용하러 다녀왔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시간이나 걸리는 곳으로 말이죠. 남편도 친구들도 그 먼 곳까지 미용하러 다닌다고 놀라지만 다 이유가 있는 걸음입니다.

 

미장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북한에 대해 관심도 많고 또 나와 나이도 같고 친절하고 그래서 친해지는 것도 더 빨랐던 것 같습니다. 늘 이야기를 하면 나라를 위한 걱정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북한주민을 위한 기도도 한다고 하네요. 이젠 그런 딱딱한 대화를 떠나서 수다도 함께 떨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녹취: …괜찮아 나도 이제 나왔는데고속도로에서는 안돼 당겨 봤자 5분이야(천천히 와)…

 

우리나라에서 주는 미용사 자격증 시험을 감독하고 채점할 만큼 유능한 친구는 미용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논문도 씁니다. 나는 미용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아서 전문적인 용어는 들어도 금세 잊어버리지만 한번씩 큰 대회에서 모델들의 머리를 멋있게 해서 세우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나올 뿐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얼굴을 보면서 수다를 떨겸 찾아갔지요. 그리고 능력 있는 미용전문가에게 머리를 맡겨보는 것도 나에게는 평생소원이었답니다. 중국에서 살면서 한국 회사에서 일을 하였는데 그때 어설프게 한국 문화를 접했던 나는 한국에 가면 가정주부를 고용하는 것과 머리를 전문가에게 맡겨서 자연스럽고 세련된 모습을 연출해서 살아보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한국생활이 내가 중국에서 생각했던 만큼 녹녹치 않은 터라 동네 미장원에 가서 대강 머리만 하는 정도였지요. 다행이 머릿결이 좋고 숱이 많아서 자주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래도 혼자 머리모양을 멋스럽게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머릿결이 나쁘다고 미용실에 수 십만원씩 돈을 내고 영양을 하고 두피관리를 받는 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그 돈이 모두 얼마야 하고 계산기를 먼저 두드려 봤지요. 그러다 미용사 친구를 만나서부터는 친구가 내 머릿속 계산을 미리 알아차리고 좋은 가격에 세련미가 넘치는 머리모양으로 만들어주니 이제는 다른 곳을 찾아갈 수도 없게 되었답니다.

 

한국은 좋은 대접을 받으면 그 사람이나 장소를 칭찬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사진 올리고 사장님이 친절하다면서 칭찬을 해주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글을 보고 찾아줍니다. 일명 홍보인데요. 어떤 것을 이용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소감을 이야기하고 평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의 가게를 칭찬해주는 글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구요. 주변에 살고 있는 탈북민 언니도 머릿결이 좋지 않아서 까투리 머리라고 놀리는데 반 곱슬머리에 끝이 푸시시해서 고민인 언니보고 함께 가지고 해서 출발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용을 한다고 파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에서 했던 뽀글이 파마머리도 있지만 머리카락이 안좋고 곱슬머리는 전기로 뜨거운 열을 내게 만든 고데기라는 것으로 머리를 잡아당겨서 펴주는 기술도 있고 나처럼 머리카락이 긴 사람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도다가 밑부분을 약간 구부려주는 세팅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언니는 곱슬머리를 펴주는 매직이라는 것을 하고 나는 긴머리가 굽실굽실하게 나오는 세팅펌이라는 것을 했답니다.

 

이렇게 머리를 맡기고 하다보면 북한에서 봄, 가을이면 마을을 찾아오던 미용사들 생각이 납니다. 동네 살던 언니가 미용기술이 있었는데 시집을 가서도 해마다 두번씩 찾아와서 머리를 해주고 돈 대신 강냉이를 받아갔습니다. 여름이나 날씨가 좋으면 친정집 마당에서 파마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약이 세서 머리가 녹아 까슬까슬해져도 오래가기만 하면 된다고 만족해하면서 돌아갔네요.

 

나는 북한에서도 파마를 하지 않고 길게 길러서 땋고 다녔지요. 어른들은 내 머리를 보고 숱도 많고 윤기가 많고 까맣다고 돈 벌었다면서 부러워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한번 파마를 하는데 몇 킬로씩 내야 되는 강냉이가 아까워서라기보다는 당시는 그런 생각보다는 엄마들처럼 뽀글뽀글한 머리를 하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그때 어머니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부러워하시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한국의 미용실은 파마를 하기 전부터 말고, 약 넣고 하는 매 과정들마다 머리를 맛사지도 해주고 감겨주기도 하는데 늘 내 머리를 부럽다고들 하죠. 그래서 원장님이 함께 간 언니와 내 머리가 극과 극이라고 웃습니다. 어쨌던 나는 흰머리가 나서 매달 염색을 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머릿결이 좋지 않아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다달이 미장원에 갈일이 없으니 어쩌면 돈을 남겼다가 맞는 말이겠죠.

 

한국에서 파마약은 북한에서 파마를 한 것처럼 냄새가 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파마약 냄새가 나면 약간 미간을 찡그리긴 하죠. 아침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머리 높이도 조절하고 굽실굽실하게 예쁜 모습을 연출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나에게는 북한을 탈출하여 강한 말투와 억양 그리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래어에 기가 죽고 자격지심만 가득했던 내가 한국 국민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듯한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들이 행복하고 더 꿈만 같은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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