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소박한 새해 소망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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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소박한 새해 소망 새해 첫날인 1일 아침 강원 강릉시 정동진 해변에서 첫해가 뜨고 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늘 새해는 희망찬 새해라고 인사를 하는데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에는 북한에 계시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희망이 가득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북한에서 신년사를 외우고 필기하는 겁니다. 해마다 신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신년사를 적고 핵심을 찾아서 외우던 지긋지긋하던 그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북한에서의 세뇌교육이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는 말이겠죠. 북한이라면 새해에 아이들에게 충성심을 교육시킨다고 김일성의 삼부자가 있는 동상에 가서 청소도 하고, 인사도 하게 하겠죠. 한국은 새해 첫날을 양력설이라 부르고 옛날 조상대대로 내려오면서 보내온 음력 1월1일 구정을 진짜 설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양력설은 크게 쇠지는 않고 그냥 공휴일처럼 보냈답니다. 하지만 탈북민 우리에게 새해가 되면 언제면 고향으로 갈 날이 다가올지 새 달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한숨을 짓곤 한답니다.  

 

그래서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탈북민들은 통일전망대를 찾아서 멀리 고향 땅을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해돋이도 볼 수 없게 모두 통제를 하는 터라 통일전망대를 가볼 엄두도 못 냈답니다. 한국에서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는 데는 3.8선 인근 지역인 파주에 있는 오두산 전망대와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가 있답니다. 탈북민들은 이곳에서 북한에 계시는 부모님을 그리며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하기도 하고, 그리워서 목청껏 불러보기도 합니다.

 

저는 통일전망대에는 못 가지만 해마다 명절이면 찾아가던 지리산 끝자락, 흥부골에 사시는 연로하신 시누님에게도 올해는 찾아갈 수가 없었네요. 해마다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서 떡도 해먹고, 맛있는 반찬과 전도 부치고 또 아이들과 남자들은 카드놀이와 화투장을 치던,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던 그 시절은 온데간데없고 가정마다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느라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먹고 마실 음식과 음료수는 넘쳐나도 함께 나눠먹을 식구들이 없는 조용한 집안을 둘러보니 북한에서 새해 첫날 술 한 병을 들고 어르신들을 찾아오던 동네 아저씨와 오빠들 생각이 납니다.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께 새해면 술잔에 술을 따라드리면서 새해 만수무강하시라고 절하던 그들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동네에서 저의 아버지처럼 절을 받을 나이가 되었겠지 생각해보니 새삼스레 속절없이 먹어가는 나이가 서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었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아직 새파랗게 젊은 것이” 하고 핀잔을 주십니다. 여기서는 60이 한창 나이라고 하는데 이제 50대에 들어서는 제가 어르신들께는 아직도 꼬맹이로만 보인다는 것이죠.

 

한국문화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면 해가 뜨는 장관을 보면서 새해 소원을 빌기도 하는데 그래서 1월1일 새벽이면 해가 뜨는 것이 보이는 동해 바다 쪽은 사람들로 인해서 발 디딜 자리도 없답니다. 그래서 올해는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져서 통제를 하고 국가에서 인터넷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생중계를 해주었답니다. 저 역시 지인을 통해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요.

 

새해 저녁에는 부산의 명물인 광안대교 야경을 구경하려고 갔답니다. 간이식을 해주려고 결심했을 때 남편이 웨딩드레스를 입혀준다고 깜짝 선물로 마련해준 결혼식을 광안대교가 바라보이는 광안리에서 노을 예식으로 했을 때 경황이 없어서 그 아름다움을 모두 만끽하지 못했기에 온 가족이 새해 맞이를 해돋이 대신으로 야경을 즐기러 떠났지요. 온 세상의 불빛을 다 모아놓은 듯, 아니 다 쓸어 담은 듯한 부산의 광안대교는 바다를 가로질러 7키로 미터가 넘는 국내에서 가장 긴 현수교이기도 하답니다.

 

초대형 쓰나미를 다룬 한국의 영화산업을 세계에 알리게 된 유명한 해운대 영화도 이 광안대교에서 찍었지요. 광안대교의 야경을 바라보니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지도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프더군요. 전 세계가 사막과 밀림을 내놓고는 온통 밝은 빛을 띠는데 오직 북한만, 평양과 그 외 주요도시 서너 곳만 내놓고는 캄캄한 어둠 속이었습니다. 언제면 우리가 이 밝은 전깃불을 다 같이 나눠 쓰고 해마다 넘겨가는 달력에도 북한에 있는 그림도 담아볼 날이 올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 민족이 함께 윷놀이도 하고, 화투도 치고, 또 카드놀이의 하나인 사사끼, 오십케이 등도 서로 배워주면서 웃고 떠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새해입니다. 1월 송학, 2월 매조, 3월 사쿠라, 등 어느 것 하나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화투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명절 중에 없어서는 안 될 날들이 모여서 한민족을 만들었기에 남과 북이 조금은 다르지만 함께 명절을 보내면서 이 방송도 함께 할 수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비록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 창궐한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함께 할 수 없는 새해를 보냈지만 그럼에도 서로 연락하고 또 문자 메시지로 새해 인사를 전하며 우리의 마음은 모두 하나가 됐습니다. 오직 가고 싶은 곳이지만 갈 수 없는 곳 북녘 땅에만 우리의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새로운 한해를 또 맞이하는 탈북민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이 방송에서나마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부디 건강하시고 평안 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희망이 가득한 새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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